석화·철강, 연간 수천억 추가 부담… 전기화 전환계획 줄줄이 흔들
반도체·디스플레이 전력 리스크 확대… PPA 전환 검토 기업 급증
정부, CCfD·세액공제 준비하지만… 감축효과 10~15% 한계 지적

인천 서구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천 서구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최찬우 기자] 정부가 발전 부문의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비율을 현행 10%에서 50%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산업계의 전기요금 부담이 연간 최대 3조원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발전사가 사들여야 하는 탄소배출권 비용이 전력 도매가격(Pool)에 반영되면 산업용 전기요금이 자연스럽게 상승하기 때문이다. 업계 안팎에선 “온실가스 감축 취지는 공감하지만 결국 제조기업에 비용을 전가하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이미 긴장 상태다. 나프타분해시설(NCC)의 열원을 전기로 전환하는 ‘전기화’ 준비가 진행 중이지만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투자가 다시 고심 단계로 돌아갔다. 

석화업계는 에너지 비용 비중이 제조원가의 20%에 달하고, 전기요금만 해도 연간 1700억원 수준의 부담이 있고 유상할당이 확대되면 3500억원 안팎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철강업계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수소환원제철 등 탄소 감축 공정을 도입할수록 전기 사용이 급증하는 특성 때문이다. 업계는 배출권 가격이 톤당 3만 원대로 상승한다는 보수적 가정만 적용해도 전기요금이 kWh당 약 9.41원 오르고 포스코·현대제철 등 주요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추가 비용이 연간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두 회사 지난해 영업이익의 약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기·전자 산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24시간 공장이 가동되는 반도체는 전기요금 변동에 민감한 업종으로 꼽히며 디스플레이 역시 품질 테스트 과정에서 대량의 전력을 소모한다. 

업계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 구축 수요와 용인 클러스터 완공이 맞물린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까지 더해지면 기업 입장에서 전력 리스크는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SGI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력 공급망을 제때 확충하지 못할 경우 전력 수요가 2% 늘 때마다 전력가격이 일반 물가 상승률보다 0.8%포인트 더 오르고 국내총생산(GDP)도 0.01% 감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디스플레이처럼 전력 대체가 어려운 업종은 생산 축소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자동차 업계도 비용 압박은 마찬가지다. 완성차 생산 공정 중 ‘도장’ 단계는 최대 180도의 고온을 약 한 시간 유지해야 해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현대차는 이 과정에서만 연간 340억원의 에너지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내년부터 저온 도장 기술 도입을 준비 중이지만, 전기요금 인상폭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전기요금 부담이 가중되면 산업계의 전력시장 이탈 움직임도 확대될 전망이다. 최근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 제조업까지 한국전력 대신 발전사와 직접 계약하는 전력구매계약(PPA) 검토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산업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탄소감축차액계약(CCfD), 녹색설비 투자 세액공제, 산업용 전기요금 안정화 대책 등 보완책을 병행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규모와 도입 시점은 아직 미정이다. 

기업들은 우선 공정 최적화와 효율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 조치로 감축할 수 있는 배출량은 전체의 10~15%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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