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천연가스 무기화… EU 내 원전 확대 가속화
원전 건설 계획 구체화 영국·프랑스, 독일과 상반돼
탄소중립 목표, 안정적 에너지원 원전 역할에 '주목'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로 외면받았던 원전의 가치가 재평가된다. 국내에서는 새 정부 출범 이후 기존 탈원전 정책이 힘을 잃을 전망이다. 세계 주요국도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 원전을 적극 이용한다. 한국의 원전정책이 어떻게 갈 것인지 살펴보고 해외 원전 활용 사례도 짚어본다. [편집자주]
[서울와이어 정현호 기자]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이 다시 주목받는다. 이는 탄소중립 목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에서 비롯됐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공급에 큰 혼란을 겪었다.

◆원전 확대 영국·프랑스 vs 탈원전 고수 독일
유럽 내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다. 러시아는 지리적 근접성과 연결성을 활용해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해 왔고, 유럽은 천연가스 40% 이상을 러시아 수입에 의존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면서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발생했다. 러시아는 이 과정에서 천연가스를 무기화했다. 이는 유럽 국가들의 목줄을 움켜쥐는 결과로 작용했다. 이에 주요 국가들은 대체 에너지로서 원전의 역할에 주목했다.
유럽 상당수 국가는 에너지 위기 속 국내와 마찬가지로 원전의 활용도를 늘리겠다고 밝힌 가운데 여전히 탈원전을 고수하는 국가들도 있어 분위기는 다소 엇갈린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국내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달 21일 자국 원전업계와 만나 “영국의 전체 발전량 중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을 최소 25%까지 올리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영국 전력 수요에서 원전의 비중은 약 15%다.
가동 중인 원전의 노후화로 2030년까지 1기를 제외한 상당수가 폐기를 앞둔 상태다. 존슨 총리가 7일 공개할 예정인 에너지안보전략에 소형모듈원전(SMR)과 함께 최소 2기의 대형 원전 건설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
존슨 총리는 “새로운 원전 건설 과정에서 관료 행정을 건너뛸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프랑스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했다.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50년까지 신규 원자로 6기 건설과 이후 8기를 추가로 짓는 계획을 밝혔다.
프랑스는 56기의 원전을 가동 중으로 2050년까지 최대 14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할 방침이다. 벨기에는 자국 내 모든 원전 가동중단 시점을 기존 2025년에서 2035년으로 연장했다. 유럽 내 원전 회귀 속도는 점차 빨라지는 모양새다.
이들 국가는 원전을 통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독일의 경우 이들과 다르게 여전히 탈원전을 고수한다.
독일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11년부터 원자로 17기 가운데 노후 원전 8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지난해 6기의 원전을 추가로 중단시켰다. 남은 원전 3기도 올해 가동 중단을 앞뒀다. 현재로서 탈원전 정책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탄소중립’ 달성 목표, 미국·중국 원전 비중↑
이처럼 독일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원전 확대로 방향을 틀었다. 글로벌 패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미국과 중국에서도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원전을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동시에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탄소배출이 없는 전력원으로 만들어진 전기’로 규정했다. 미국은 탄소중립 달성에 원전을 주력 발전원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정부는 차세대 원자로 기술과 SMR 개발을 본격화했다. 앞으로 7년간 32억달러(약 3조7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 아이다호주에는 600㎿급 중소형 원전 12기가 추가로 건설될 예정이다.
중국도 정부 주도로 2035년까지 4400억달러(약 518조원)를 투입해 최대 150기 원자로 건설 계획을 밝혔다. 2060년 ‘탄소배출 제로’를 위해 석탄화력발전소 2990기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이나 원전으로 대체한다는 목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세운 친환경에너지 정책에 따른 것이다. 이 가운데 원전의 비중을 높였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를 계기로 탈원전이 국제 흐름이었지만, 최근 상황은 180도 반전됐다.
원전 폭발의 참사를 겪었던 당사국인 일본 내 분위기도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안전이 보장된다면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응답은 53%로 원전 사고 이후 가장 높았다.
일본은 사고 이후 안전점검 등을 위해 사용이 중단됐던 원전의 재가동이 지연되면서 전력 수급 위기를 맞았다. 일본 내 원전 33기 중 10기만 상업가동을 재개 중으로 전력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글로벌 에너지 위기와 탄소중립 달성에 있어 친원전 정책을 채택하는 국가들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와 서방 진영 간의 대립도 지속됨에 따라 글로벌 원전 확대 흐름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 조치에 맞서 유럽은 에너지 자립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대안으로 원전이 떠올랐다”며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는 국가들도 유가와 천연가스 상승세 속 결국 원전 확대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중립 실현에 있어 원전의 역할도 점차 증대되는 모습”이라며 “실제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나라일수록 탄소중립 달성에 원전이 비용 대비 효율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