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저자.
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저자.

거시경제현상 변화와 어긋나게 시장금리가 형성되다 보면 경제 각 부문에 불확실성이 잉태되고, 충격이 가해지면 위기로 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책목표에 따라 금리를 억누르거나 끌어올리면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이 불균형 상태에 빠져 대내외 충격을 시장이 흡수하지 못해 결국 재앙으로 변해가기 마련이다.

1929년 세계대공황(실물경제와 주가의 괴리), 1997년 아시아외환금융위기(실물경제와 환율의 괴리), 2008년 국제금융위기(실물경제와 금리의 괴리)는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이 동떨어져 움직이다 국가경제를 혼란에 빠트린 대재앙이었다. 금융과 실물이 균형을 이뤄야 비로소 시장은 물론 가계와 기업도 위험과 불확실성에 스스로 대비하게 만들 수 있다.

한때 경제 대통령이란 이름을 떨친 그린스펀 미 연준 의장의 출근길 가방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전 세계가 주시했다. 그는 닷컴버블 붕괴 이후 저금리정책을 펼쳐도 물가가 안정되자 경기부양 욕심을 내고 기준금리를 1.0%까지 급격하게 내렸다. 2004년부터 물가와 부동산거품이 꿈틀거리자 고금리정책으로 급선회해 기준금리를 5.25%까지 수직 상승시켰는데도 국채금리가 따라 오르지 않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른바 ‘그린스펀 수수께끼(Greenspan’s conundrum)‘다. 기준금리를 따라 시장금리가 오르지 못한 까닭은 이전의 저금리정책으로 유동성이 크게 풀려 돈이 갈 곳이 없는 데다 그 뒤의 세계금융위기 전조증상으로 불거진 안전자산 선호현상 때문이었다.

2023년 벽두에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3.50%로 상향조정했지만, 시장금리인 국고채(3년) 금리는 반대로 3.3% 내외로 하락하는 금리 엇박자가 벌어졌다. 기준금리를 상승시켜 시장금리를 올리겠다는 금융당국의 의도와 달리 시장이 거꾸로 반응한 까닭은 가까운 미래에 경기침체 우려와 함께 물가상승이 멈칫할 것으로 판단한다는 신호다.

거시경제현상을 반영해 시장에서 시장에 의해 금리·주가·환율이 선제적으로 조율되지 않는다면, 시차를 두고서라도 경제적 위험과 불확실성이 잉태될 가능성이 자라난다. 더구나 오늘날 같은 예민한 시기에는 자칫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위험도 있다.

기준금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정책변수를 감안해 인위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거시경제현상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장금리는 금리경로를 통해 기준금리의 직간접 영향을 받지만 궁극적으로 거시경제상황을 반영해 시장에서 정해진다. 시장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해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경제현상을 보다 충실하게 반영해 간다.

간혹 군집행동으로 비롯된 쏠림현상이나 해외요인으로 시장금리가 균형을 이탈하더라도, 자금 수요·공급 참여자들의 책임과 계산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자동조절기능에 따라 시장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금융부문이 실물부문을 충실히 반영하면서 금융과 실물이 균형을 이뤄야 외부로부터의 위험을 시장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 그 원인이 정부실패든 시장실패를 막론하고 시장금리가 거시경제현상과 동떨어져 움직인다면 크고 작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역내 모든 경제활동의 평균적 기회비용 기능을 하는 금리는 저축과 투자, 소비와 생산뿐만 아니라 대내외 자금흐름에 직간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금리조율은 신중하면서도 결단력이 필요하다. 해외투자자금 이동을 지나치게 경계해 상대국과의 기준금리 차이만을 보고 금리를 조율하려다가는 결국 금융과 실물이 균형을 잃게 돼 대내외 충격에 대하여 무방비 상태가 된다.

경기침체나 경기과열 같은 어려움이 발생한 후에 시장에서 형성된 금리·주가·환율을 조정하려 들다가는 후유증이 확대돼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물론 선제적 대응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중앙은행 책임자는 단테가 묘사한 지옥문을 지키며 고뇌하는 ‘생각하는 사람’에 비유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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