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생산능력 등 기업 핵심정보 포함된 자료 제출요구
보조금 미끼로 도넘은 행위, 삼성·SK 기술력 유출 우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7일(현지시간)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생산 시설 투자 보조금 신청 절차를 안내하면서 기업들의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수율, 재무·영업 정보까지 요구해 논란이 한창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제공
미국 상무부는 지난 27일(현지시간)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생산 시설 투자 보조금 신청 절차를 안내하면서 기업들의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수율, 재무·영업 정보까지 요구해 논란이 한창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와이어 정현호 기자] 미국 정부가 반도체법 지원금 신청 기업에 핵심 재무와 영업 정보가 담긴 엑셀 파일을 요구해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중국 내 사업장 생산능력 확대를 제한하는 가드레일(안전 장치) 조항에 이어 영업기밀까지 공유하라는 도 넘은 요구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멘붕상태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지난 27일(현지시간)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생산 시설 투자 보조금 신청 절차를 안내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안내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영업기밀인 수율 제공까지 강요했다. 

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립·증설 등에 나선 기업들을 보조금을 미끼로 직접 통제하겠다는 조치로 해석된다. 실제 보조금 신청 기업들은 생산시설의 예상 현금흐름과 이익 등 대차대조표까지 제출해야 한다.

상무부는 이와 관련 제출 예시 모델로 반도체 공장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 가동률, 예상 웨이퍼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 생산 첫 해 판매 가격, 연도별 생산량과 판매 가격 증감 등의 자료를 입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내 업계는 미국 정부가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내라는 건 무리한 요구라고 반발하고 있다. 기업 경영상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특히 수율은 반도체 기업의 기술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로 여겨진다. 

당장 업계에선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분야 첨단 공정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자칫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세부적인 기술력은 물론 사업전략의 유출에 따른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우려한다. 

미 정부는 이와 함께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소재, 소모품, 화학품과 공장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와 공공요금, 연구개발 비용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받는 지원금이나 대출 등도 요구 조건에 포함시켰다. 

반도체법으로 인한 초과이익 환수 등 중국 내 사업 확장 제한 등의 독소조항과 영업기밀 요구가 더해지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의 고심도 깊어졌다. 미국의 대중 견제가 심화하는 등 지원금 신청 자체가 기업들 입장에선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투자를 이어갈 수 있을지가 현재 가장 큰 관심사다.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위주로 재편하려는 미국에 끌려다니면서 최악의 경우 중국시장 포기라는 선택을 해야 할 수 있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자 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오는 31일부터 보조금 신청서를 접수받을 계획이다. 이외 반도체 공장·시설을 지으려는 기업에겐 신청서 접수 시점을 오는 6월26일부터로 정했다. 

반도체 기업들은 우리정부의 협상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앞으로 투자 진행 여부 등의 결정이 달린 만큼 정부는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을 적극 활용해 과도한 요구에 대해서 일부 완화될 수 있도록 협상에 총력을 다할 방침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반도체 공장 건립에 보조금 지원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미 정부의 반도체산업 주도권 확보 등 이해관계가 얽혀 국내 기업들은 쉽지 않은 상황에 처했다”며 “시기도 그렇고 정부 협상력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으며, 조건 완화가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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