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반도체, 자율주행차 등장과 함께 수요 폭발
SK하이닉스, 구글 등에 車용 HBM 납품 시작
유럽과 접촉면 넓혀가며 기술 협력·시장 확보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 개막하자 SK하이닉스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AI 컴퓨팅에 필요한 고대역폭 메모리(HBM)에서 최상위 실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기세를 몰아 인텔의 낸드(NAND) 부문을 인수해 HBM 이외 경쟁력을 강화하고, 차량용 HBM 시장도 뛰어들며 AI 시대의 ‘키 플레이어’로 활약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편집자주]

'플래시 메모리 서밋 2023'에 전시된 SK하이닉스의 차량용 반도체 솔루션. 사진=SK하이닉스

[서울와이어 천성윤 기자] SK하이닉스는 미래 먹거리로 차량용 HBM을 낙점하고 시장 선점을 위해 연구 개발에 나섰다. 

자율주행차 시장이 확장됨에 따라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SK하이닉스는 고성능 메모리인 HBM이 미래차 컴퓨팅에도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HBM 필요한 자율주행차…SK하이닉스 바빠진다

지난달 SK하이닉스는 메모리 업계 최초로 글로벌 자동차 산업 정보 보안 인증인 ‘TISAX’를 획득했다. 

TISAX는 유럽자동차제조·공급협회(ENX)가 운영하는 글로벌 정보 보안 인증 체계다. 자동차 산업 공급망 내 기업 간 정보 보안 표준화를 목표로 한다. 

SK하이닉스는 경기 이천, 성남, 충북 청주에 위치한 국내 모든 사업장이 TISAX 인증을 받았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이번 인증 획득을 통해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요구하는 국제적 수준의 보안 역량을 갖췄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됐다”며 “이를 계기로 인공지능(AI) 기반의 미래 자동차 기술 구현에 필수적인 고성능 메모리 솔루션 개발을 가속화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자동차 산업과 접점을 늘려가고 있는 것에 대해 대당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들어가는 자율주행차 시대 준비 과정으로 해석한다.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전기차 추세와 함께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3년 762억 달러(약 111조원)에 달했던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오는 2028년 1152억 달러(약 162조원)로, 51.2% 확대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가 주목하는 분야는 차량용 HBM, 즉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다. 현재 자율주행 레벨 3 이상의 기술이 적용된 차량에는 고성능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이 시장을 주도하는 제품은 대표적으로 엔비디아의 ‘드라이브 오린’, 테슬라의 ‘FSD칩’, 퀄컴의 ‘스냅드래곤 라이드’ 등의 SoC(시스템온칩)가 대표적이다. 

특히 레벨 4 이상의 준 완전 자율주행차는 1초당 50조회 연산을 필요로 하는데, 기존 차량용 LPDDR 메모리는 이 같은 연산을 감당할 수 없다. 게다가 생성형 AI 기술도 접목된 차량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HBM은 자동차 업체에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전망이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차량용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진출하며 시장 선점에 나선다. 이미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8월 구글 자회사 웨이모에 차량용 HBM2E를 납품하는 데 성공하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구글 웨이모가 적용된 자율주행차. 사진=현대차
구글 웨이모가 적용된 자율주행차. 사진=현대차

강욱성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웨이모에 HBM을 공급하는 것을 알리며 “3세대 HBM인 ‘HBM2E’를 차량용으로 따로 설계해 웨이모에 공급했다”며 “차량용 HBM을 공급한 사례는 SK하이닉스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차량용 반도체에 꾸준한 투자를 집행해 왔다. 2016년 차량용 전장 사업 TF(테스크포스)를 ‘오토모티브 전략팀’이라는 공식 팀으로 격상시키고 2019년부터는 개발제조총괄 산하에 담당 임원을 배치하고 세 자릿수 인력으로 조직을 구성했다. 

이후 2021년 차량용 메모리 반도체 국제 표준인 ‘ISO 26262: 2018 FSM’ 획득, 2023년 차량용 낸드 제품 솔루션 필수 인증인 ‘오토모티브 스파이스 레벨2’ 인증 등을 획득하며 개발 성과를 인정받고 노하우를 축적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는 극한의 온도, 진동, 습기 등을 견뎌야 하고 수명도 차량과 동일한 10~20년 이상을 이상 없이 버텨줘야 한다”며 “또 생명과 직결됐기 때문에 오류, 악성코드, 해킹 등을 허용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일반 반도체와는 다른 설계와 패키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자사의 차량용 HBM을 공급하기 위해 유럽 완성차 업계의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해 여름 유럽을 방문해 차량용 메모리반도체 시장 개척을 위한 연구 개발 협력과 고객사 공급을 논의했다. 벨기에 루벤에 위치한 세계 최대 반도체 연구소 아이맥(IMEC)을 방문해 ‘차량용 칩셋 프로그램(ACP)’ 가입 등의 말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맥은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차량용 칩셋 포럼 2024’에서 BMW, 지멘스, ARM 등과 ACP를 함께 하기로 했는데 이 그룹에 SK하이닉스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이를 통해 차량용 메모리 개발·공급에서 협력과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AI 서밋'에서 오토모티브 솔루션 칩을 전시했다.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AI 서밋'에서 오토모티브 솔루션 칩을 전시했다. 사진=SK하이닉스

곽 사장은 이와 관련해 “유럽 반도체 시장은 중국이나 미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오토모티브(차량용 메모리)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면서 고객을 발굴하고 있다”며 “아이맥과 개발 프로그램을 같이 진행하는 것을 논의하고, 향후 추가로 새로운 프로그램 가입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는 이제 하나의 정보기술(IT) 기기로 볼 수 있으며, 그만큼 소프트웨어의 품질이 중요하다”며 “이를 구현할 반도체 업체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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