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강한 의지를 밝힌 상법 개정안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강한 의지를 밝힌 상법 개정안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 김민수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강한 의지를 밝힌 상법 개정안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특히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등 주요 조항에 대해 배임 리스크와 경영권 방어 약화를 우려하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주주 충실의무 확대에 반발…경영권 위협 우려

상법 개정안은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강화와 소액주주 보호, 디지털 시대에 맞는 기업 운영 환경 조성을 핵심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에 포함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에 대해 재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는 주주의 이익까지 이사의 법적 책무로 명문화함으로써 소송 리스크가 크게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주요 경제단체들은 상법 개정안이 무분별한 주주 소송을 야기하고, 외국계 헤지펀드 등 행동주의 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2019년 엘리엇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반대 사례나, 2003년 소버린의 SK㈜ 의결권 공격 사례는 재계의 우려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경제 8단체는 “해당 개정안은 주주가치 제고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보다는 기업의 신산업 진출과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보다 정밀한 접근이 가능한 자본시장법 개정이 일반주주 보호에 더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도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만 한정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상법 개정안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며 공정경제 실현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강조해 왔다. 공약집에서는 ‘회복·성장·행복’이라는 3대 비전과 함께 공정한 시장질서 구축,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일반주주 권익 보호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중 “상법 개정은 소수 이기적인 저항을 이겨내는 일”이라며 법안 처리를 직접 천명하기도 했다.

지난 4월 국회에서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며 상법 개정안이 부결된 전례가 있지만, 정권 교체 이후에는 입법 추진 동력이 더욱 강해진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서 "(취임 후) 2~3주 내 처리할 것"이라며 "국회에서 이미 한 번 통과된 바 있으니, 보완해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발언했다.

이재명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자사주 소각·전자 주총 등 후속 과제도 본격화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외에도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 ▲집중투표제 활성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자사주 소각 제도화 검토 ▲소액주주 보호 장치 강화 등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조항들은 모두 일반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고 이사회를 보다 견제 가능한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출할 때 주주가 가진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소수주주의 의견 반영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재계는 이 제도가 외국계 투기자본에 의해 경영권 개입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외국계 지분율이 높다는 점도 불안 요인으로 지목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역시 논란거리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에 대해 감사위원 중 1명을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도록 한 기존 제도를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재계는 감사위원이 경영 정보에 접근하는 권한이 크기 때문에, 행동주의 펀드가 이를 장악할 경우 내부 정보 유출과 경영 위협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고 있다.

자사주 소각 제도화 역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로, 기업의 부당한 지배력 강화를 막고 주주환원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미국처럼 자사주 매입이 자동 소각으로 이어지는 구조와 달리, 국내는 소각 없이 보유하다가 매물로 재출회되는 경우가 많아 주주 가치 훼손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 밖에도 ▲기업 분할·합병 시 일반주주 보호장치 마련 ▲모회사 일반주주에 대한 신주 배정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회계기본법 제정 등도 추진 대상이다. 상장사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회계기본법은 비영리 회계까지 포함해 외부감사법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려는 목적이다.

재계는 법안 통과를 전제로 한 구체적 대응은 아직 유보 중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법안이 아직 통과되지 않은 데다, 보완 내용이 구체화되지 않아 당장은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며 “다만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와 관련한 우려는 여전히 가장 크며, 기업들도 다양한 대응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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