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로 자율주행·로보틱스 진출
'엔비디아 생태계'… 독점 딜레마도
주요국 반독점 규제 검토는 리스크

인공지능(AI) 산업이 개화하자 영원할 것 같았던 ‘CPU 시대’를 끝내버린 기업이 등장했다. 미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엔비디아(NVIDIA)가 그 주인공으로, 주력 제품인 그래픽 처리장치(GPU)가 AI 컴퓨팅에서 각광 받으며 매년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마저 탈환한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 엔비디아는 이제 AI 시대 판도를 흔드는 주역이다. [편집자주]

엔비디아 미국 캘리포니아 본사. 사진=엔비디아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현재 엔비디아는 AI용 GPU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지만, 사업을 보다 다각화해 자율주행과 로보틱스로 영향력을 확장한다. 

이를 통해 종합 AI 플랫폼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엔비디아의 야심은 차질없이 진행 중이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독점 전략이 앞으로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술력 십분 활용… 자율주행·로보틱스 진출

엔비디아의 핵심 정체성은 팹리스로 통용된다. 하지만 회사의 궁극적 목표는 AI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며 ‘엔비디아 AI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엔비디아는 GPU 판매뿐만 아닌, 이것을 구동하기 위한 데이터센터 시스템 구축, AI 개발용 소프트웨어 배포, AI 서비스 및 프로그램 판매도 주력하고 있다. 사실상 AI 생태계에 필요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수직 계열화 방식으로 모두 조달하는 것이다. 

또 회사가 가진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여러 응용처로 신사업을 펼친다. 과거 GPU의 최고 효용 가치는 그래픽 렌더링 구현에 한정됐지만, 이제 GPU는 자율주행차의 두뇌와 산업용 로봇의 학습 장치로 진화했다. 

특히 자율주행은 엔비디아가 역점을 두는 미래 먹거리다. 이들은 ‘엔비디아 드라이브’라는 플랫폼을 만들고 차량용 AI 시장을 선점했다. 이 플랫폼은 자사의 차량 전용 고성능 칩인 ‘드라이브 오린’과 올해 출시 예정인 ‘드라이브 토르’와 결합해 고도의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 2 플러스’를 구현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도요타, 제너럴모터스(GM), 메르세데스-벤츠, 재규어·랜드로버, 볼보, 리비안, BYD 등이 채택해 안정성을 입증받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휴머노이드 로봇과 함께 'CES 2025' 연단에 섰다. 사진=엔비디아

‘물리 AI’로 불리는 로보틱스 분야에도 진격한다. 로봇은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직접적으로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사업이다.

황 CEO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 기조연설 무대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14종과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 자리에서 “로봇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개발자나 전문가들이 로봇 개발에 필요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건 아니다”며 “로봇·자율차의 개발은 통상적으로 시간이 많이 들고, 돈도 많이 드는데, 그런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CEO의 공언대로 올해 엔비디아는 새 로봇 개발용 오픈소스 플랫폼 ‘코스모스’를 출시했다. 코스모스는 엔비디아의 GPU를 이용해 생성된 3D 가상 세계에서 로봇을 훈련 시키는 프로그램이다. 로봇이 현실 세계에서 마주할 다양한 상황과 현실의 물리 법칙을 미리 학습시켜 학습에 필요한 시간과 자본을 크게 줄일수 있다는 것이 엔비디아의 설명이다. 

엔비디아 관계자는 “AI가 도입된 로봇은 효율성 증진, 인력 부족 해결, 작업 최적화, 위험 작업에서 솔루션이 될 것”이라며 “엔비디아 로보틱스 플랫폼을 통해 로봇 시스템·소프트웨어를 개발, 훈련,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자동차·로보틱스 부문은 실적에서도 눈에 띄게 상승하며 미래 주력 사업으로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올 2분기 자동차·로보틱스 합산 매출은 5억6700만달러(약 78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72% 급증했다. 

◆강력한 생태계 구축… 독점 딜레마는 과제

엔비디아는 사업 확장 과정에서 공고한 생태계를 조성했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생태계 삼중에 걸쳐 형성된 ‘엔비디아 망’은 기업·개인·엔지니어에게 표준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번 종속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단점도 공존한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가 만든 ‘CUDA’ 프로그램이 없이는 GPU를 활용한 AI 연산·병렬 처리 컴퓨팅을 진행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엔비디아는 CUDA를 2006년 개발 당시 무료로 배포했다. 이에 많은 컴퓨터 엔지니어들은 CUDA에 정착할 수 있었고 곧 업계 표준이 됐다. 

하지만 CUDA는 엔비디아 GPU 외 다른 제품에서 작동하지 않아 사실상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고객사들은 엔비디아 칩을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 이 GPU들을 연결할 때도 엔비디아가 직접 만든 고속 연결 기술인 ‘NVLink’를 활용해야 최적의 효율을 발휘하도록 설계됐다.

이에 AI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쿠다 없이 딥러닝을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의 경쟁사인 AMD와 인텔, ARM 등도 CUDA와 같은 개발 플랫폼을 내놨지만 코딩 난이도가 높고 호환성과 범용성이 떨어져 사용자는 엔비디아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챗GPT(오픈AI), LLaMA(메타), 제미나이(구글) 등 일상에서 사용되는 주요 거대 언어모델(LLM)의 훈련·추론도 엔비디아 GPU에서 실행된다. AI 스타트업들조차 GPU 접근을 위해 클라우드 기업을 통한 엔비디아 의존도가 높다.

엔비디아 데이터센터. 사진=엔비디아

주요국 정부 차원에서도 이같은 엔비디아의 사업 전략을 예의주시 한다. 유럽연합(EU)내 독점 감시기구인 집행위원회는 “엔비디아의 AI 칩 공급망에 엄청난 병목 현상이 있다”고 밝히는 등 지속적으로 엔비디아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2023년에도 독점 혐의를 제기하며 조사를 진행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프랑스 당국은 지난해 하반기 엔비디아가 반독점법을 위반하고 시장을 교란했다며 “만약 사실이라면 전 세계 연 매출의 최대 10%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자국인 미국 법무부도 엔비디아가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반독점 조사에 들어갔다.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 업체에 자사 AI칩을 구매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AMD·인텔 등 경쟁사 AI칩을 구매하는 기업에 서비스 가격을 더 높게 불렀다는 등의 민원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정거래연구센터로부터 제출받은 ‘반도체 산업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공정거래법 위반 여지가 있는지 모니터링을 진행 중이다. 

보고서에선 “AMD, 인텔 등의 신규 진입으로 경쟁 체제가 형성되고 있지만 엔비디아의 우월적 지위와 시장 집중화는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PC 운영체제(OS) 시장에서 냉철한 독점 전략으로 성장한 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엔비디아도 비슷하다”며 “MS가 결국 독점 문제로 미국 법무부와 초대형 소송을 겪은 것처럼 각국 정부가 엔비디아에 규제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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