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인하 성과 속 숨은 비용… 한미 무역 새국면
미국 요구에 열린 시장… 민감 품목, 여전히 불안
수출 살렸지만, 숙제는 여전… '정상회담' 분수령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3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관련 브리핑을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3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최찬우 기자] 한국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고율 관세 부과 위기를 넘기고, 전략 산업 중심의 투자와 시장 개방이라는 조건 속에 합의안을 끌어냈다. 수출 기업들은 한숨을 돌렸지만 미국 중심의 무역 틀에 편입되며 얻은 것과 내준 것 사이의 이해관계는 복잡하다.

3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과 전면적인 무역 합의에 도달했고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1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데 따른 협상 결과다.

이번 합의로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대미 주력 수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담은 피하게 됐다. 관세율 15%는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국과 유사한 수준으로 최소한의 경쟁 조건을 확보한 셈이다.

◆한국, 3500억달러 투자… 주도권은 미국

하지만 협상에서 한국이 약속한 투자 규모는 단순한 경제 협력 수준을 넘는 파격적 조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은 내가 선택하는 프로젝트에 3500억달러(약 487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며 “1000억달러(약 139조원)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제품을 구매한다”고 설명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이 다음 달 1일부터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던 상호관세 25%는 15%로 인하된다”며 “핵심 수출 품목인 자동차에 대한 관세도 1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한 관세 문제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조건에서 추가 협상이 진행될 예정”이라며고 덧붙였다.

농축산물 시장 개방과 관련해서는 “미국 측의 강한 요구가 있었으나, 식량 안보와 농업 민감성을 고려해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분야가 여전히 민감한 만큼 국내 농업계의 경계심과 반발 가능성은 남았다.

이번 합의에 따른 3500억달러(약 48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는 구체적인 투입 계획도 공개됐다. 이 중 1500억달러는 ‘한미 조선협력 펀드’로 조성돼 선박 건조, 유지·보수·정비(MRO),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에 투입될 예정이다.

특히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로 명명된 대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는 대미 투자 펀드의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조선 산업 역량이 대미 관세 협상의 결정적 돌파구 역할을 해 낸 셈이다.

나머지 2000억달러(약 278조원)는 반도체, 원자력, 이차전지, 바이오 등 미래 전략 산업 분야에 집중 투자돼 경쟁력을 갖춘 우리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 기회 확대에 기여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시장 개방 확대… 자동차·농산물 수입은 과제

문제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한국 시장 개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자동차, 트럭,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일부 품목은 제한적이지만 여전히 개방 확대에 따른 우려가 존재한다 특히 농산물 분야는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민감 분야로 분류됐고 추가 개방 여부에 따라 농업계 반발도 예상된다.

관세협상의 직접적 승자는 없었다. 미국은 ‘투자와 수입 확대’라는 명분을, 한국은 ‘관세 리스크 제거’라는 실질적인 이익을 챙겼다. 다만 실제 이행 과정에서 수입 증가, 투자 수익 배분, 통상 주권 이슈 등 후속 논란도 예상된다.

협상 이후의 과제가 적지 않다. 관세 인하의 대가로 약속한 투자와 시장 개방이 구체화되며 국내 산업계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미국 중심의 공급망 전략에 한국이 얼마나 종속될지에 대한 검토와 대응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32회 국무회의를 주재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32회 국무회의를 주재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협상, 끝나지 않았다… 정상이 관건

트럼프 대통령은 2주 내 백악관에서 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다. 협정 실행 방식, 투자 상세 조건, 품목별 시장 개방 범위 등은 정상 간 협의 이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에서 진행된 무역 협상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이뤄졌고 구체적인 실행 내용은 아직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상은 미국의 압박과 한국의 대응이 맞부딪친 결과물이다. 미국은 한국의 대규모 투자를 확보하고 자국산 제품의 시장 진출을 열었다. 한국은 관세라는 외부 충격을 막아내고 수출 경쟁력을 일정 부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협상 이후의 과제가 적지 않다. 관세 인하의 대가로 약속한 투자와 시장 개방이 구체화되면서 국내 산업계에 미칠 영향과 한국이 미국 중심의 공급망 전략에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편입될지에 대한 검토와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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