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김익태 기자] 내수 진작과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야심차게 추진한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엉뚱한 곳에서 소모되고 있다.
담배 사재기, 고급 주류, 미용 시술까지 취지와는 동떨어진 소비 풍경이 펼쳐지는 중이다.
편의점에선 ‘담배 사재기’가 낯설지 않다. ‘흡연지원금’이라는 농담이 돌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보루 단위 구매 인증 사진이 줄줄이 올라온다. 유통기한이 없는 담배는 ‘담배깡’으로 현금화가 가능해 정책 악용 우려도 크다.
실제 소비쿠폰 지급 첫 주 편의점 4사(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 맥주 매출이 전월 같은 주 대비 20~31% 급증했고 소주 매출도 10% 이상 늘었다. 담배는 구체적인 매출 수치가 공개되지 않았으나 현장에서 “민생쿠폰으로 담배 살 수 있냐”는 문의가 빗발쳤다는 증언이 나온다.
과거 사례도 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5~8월 담배 판매량은 12억5000만갑으로 전년 동기 대비 4% 증가했다.
이번 소비쿠폰 지급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반복되는 셈이다. 문제는 담배의 마진율이 5%에 불과해 정작 편의점주 실익도 미미하다는 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톡스·필러 등 미용 시술을 소비쿠폰으로 결제할 수 있는 병원이 등장했고 대기업 계열 매장 중 일부 가맹점에서도 화장품·패션 등 비필수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당초 ‘세금으로 국가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정책 명분을 고려한다면 사업장만 제한해서는 안 된다. 품목도 제한해야 한다.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13조원 규모 예산이 실질적 민생 회복보다 사치성 소비로 빠져나간다면 정책 신뢰도는 금세 무너진다. 미국의 식량쿠폰처럼 담배·주류 등 기호품을 제한하는 장치가 필요한 이유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소비쿠폰의 사용처와 품목을 재점검하고 제도의 목적과 혜택이 국민 다수에게 고르게 돌아가도록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책이 빛을 발하려면 ‘취지’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