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박동인 기자] “연체는 줄었다”는 업계 브리핑과 현장의 체감은 자꾸 어긋난다. 통계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실제 창구에는 ‘이번 달만 유예해 달라’는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카드사·캐피탈사·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얘기다.
이는 평균이 세대 차이를 덮었기 때문이다. 세대별로 쪼개 들여다보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확실히 20·40대는 진정됐지만, 50·60대에서 연체가 늘고 있다.
올해 5월말 기준 저축은행 신용대출의 60세 이상 차주 연체율은 7.65%다. 2021년 4.64%에서 3.01%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카드론 연체율은 같은 기간 2.10%에서 3.07%로 늘었으며, 캐피탈 신용대출 연체율 역시 3.52%에서 5.46%로 상승했다.
20·40대의 연체율은 2023년 최고치를 찍은 뒤 뚜렷한 안정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저축은행만 보더라도 20대 연체율은 2023년 5월 말 8.12%에서 올해 5.27%까지 내려왔고, 캐피탈 신용대출 역시 30대 차주 기준 같은 기간 6.6%에서 4.72%로 떨어졌다.
이같은 50·60대의 연체율 상승엔 중금리·간편대출의 설계와 영업 관행에 있다. ‘중금리’라는 명칭은 위험을 낮게 인식하게 만든다. 고령층은 소득·의료비·자영업 변수로 신용점수 변동성이 커 점수 한 단계만 내려가도 적용 금리가 급격히 높아진다.
그런데도 영업 메시지는 한도와 승인 속도에 맞춰져 있고 대출 앱 화면에는 혜택·한도가 먼저 보인다. 연체 시 비용·무이자 종료 후 월 납입액 같은 핵심 정보는 뒤로 밀려있는 것이다. 대출 실행은 빨라지지만 상환 계획은 늦어지는 구조다. 이 조합이 50·60대 연체를 키우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상품 정보의 배열도 문제다. 혜택과 한도는 큰 글씨로 보이지만 연체 시 비용·절차·종료 후 월 상환액은 작은 글씨나 하단에 위치한다. 화면 설계가 소비를 먼저, 상환을 나중으로 유도한다. 정보는 존재하지만 우선순위가 바뀐 정보다. 취약 차주일수록 오인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납입일 분산이나 이자만 납입 기간, 조기상환 옵션, 잔액 알림 같은 기본 기능은 메뉴 깊숙이 숨어 있거나 접근성이 낮다. 상시 무이자·부분무이자 판촉은 소비를 자극하지만 무이자 종료 이후 부담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화면은 드물다.
상담·권유 관행도 방향이 비슷하다. 신규 취급액 위주의 KPI(핵심성과지표)는 ‘설명’보다 ‘승인’에 무게를 둔다. 유지율·연체 전환율·상환 전환율이 인센티브에서 비중이 낮으면, 쉽게 팔리는 대출이 ‘좋은 대출’로 평가된다. 이 인센티브 구조는 고령층으로 대출이 이동하는 국면에서 연체 위험을 키운다.
업계는 “대출은 선택이고, 약관에 다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약관은 고령층이 이해가 쉽지 않다. 실제로 필요한 건 ‘상환 경로’의 선(先)제시다.
선택한 금리의 월 납입 변화, 연체 30일 전후의 비용·절차, 공적 대환 채널로 연결되는 방법이 첫 화면에서 확인돼야 소비자 판단이 완성된다. 현재는 순서가 거꾸로된 셈이다.
이 괴리는 통계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상품 설계와 영업 방식의 문제다. 정보 비대칭, 화면 배치, 인센티브 구조가 한 방향으로 작동하면서 고령층의 상환 실패 확률을 높이고 있다.
50·60대 연체 확대를 개인의 도덕성이나 무리한 소비로 돌리기 어렵다. 2금융권의 화면·용어·판촉·KPI가 만든 구조적 결과에 가깝다. ‘중금리’라는 간판, ‘간편’이라는 수사, ‘무이자’라는 배너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한 위험은 같은 방향으로 축적된다.
개선의 방향은 분명하다. 위험·비용·상환 경로를 혜택·한도와 같은 크기와 같은 위치에서 제시하는 화면 설계가 필요하다. 무이자·부분무이자 종료 이후의 월 상환액과 연체 전환 시 비용·절차를 즉시 계산해 보여주는 표시 방식이 전제돼야 한다.
영업의 평가는 신규 취급액에 더해 유지율·연체 전환율·상환 전환율을 포함하는 지표로 재구성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책임 주체를 바꾸자는 얘기가 아니라, 설계의 균형을 되돌리자는 취지다. 설계가 바뀌면 결과가 바뀐다. 지금의 구조가 유지되는 한 “연체는 줄었다”는 문장과 창구의 전화는 계속 엇갈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