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윤 기자.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미국 이민 당국이 실탄으로 중무장한 요원을 출동시켜 한국인들을 대규모로 적발한 충격적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는다. 우리 기업들은 비자 문제라는 최소한의 행정 절차에서 미 정부와 극한 충돌이 발생한 만큼 앞으로 투자 진행에서 결정적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번 구금사건이 벌어지자 한국 국민과 산업계는 분개했다. 약 500조원에 육박하는 대미 투자 약속 대가가 어떻게 이렇냐는 것이다. 범죄 집단이 아닌 평범한 한국인 기술자들이 마치 마약 소탕 작전을 방불케 하는 급습으로 체포돼, 몸이 쇠사슬에 묶여 뒤돌아선 채 일렬로 늘어선 장면은 우리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굴욕이었다. 일반적 이민 단속보다 과격했다는 점에서 통상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게다가 이 사태를 촉발한 몇몇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이 열성적인 트럼프 지지자였고, 그들이 권력에게 잘 보이기 위한 어떤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했다는 정황들도 드러났다. 우리 국민이 그들의 충성 경쟁에 마치 ‘장기말’ 같이 사용됐다는 불쾌감을 지울 수 없다. 구금사건에 대한 한국의 분노가 심상치 않자 미국 고위 외교관이 “재입국에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며 유감을 표명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외국투자 위축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사태를 진정시키려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비자 문제는 단순 실리의 영역을 넘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감정적 문제로 비화됐다. 벌써 산업계 일각에서는 아예 투자를 철회하고 관세를 물며 버티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또 최근 미 연방 항소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상호관세를 무효로 판단한 것도 ‘서두를 것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대법원이 항소법원의 판단을 유지하게 되면 트럼프가 부과한 관세 정책은 폐기 수순을 밟는다. 그렇기에 일본처럼 ‘백기투항’식으로 타결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다.

이번 사태가 진정한 의미로 수습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미국에 확실한 후속 대책을 받아내야 한다. 비자 쿼터(할당량)를 받아내는 것이 가장 좋지만, 적어도 핵심 인력에 대한 비자 발급 절차 간소화를 미국으로부터 약속 받아야 한다. 

현재 미국 비자 쿼터 1만5000명 확대 법안은 영 김(Young Kim) 미 공화당 하원의원 외 2인의 발의로 미국 하원에 계류 중인데, 이 법안이 12년째 통과가 안 되고 있다. 비자 쿼터는 의회의 권한이라 트럼프 대통령도 어찌할 수 없어 정부 간 협상에서 요구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하지만 대미 투자 법인의 핵심 인원에 대한 비자 심사 절차 간소화는 행정명령으로 가능해 우리로서 확실히 요구할 수 있다. 당장 비자 쿼터를 마련할 수 없다면 이런 부분이라도 한미 협상에 반드시 반영해 적어도 ‘쇠사슬’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판은 깔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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