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박동인 기자] 고금리 장기화 속에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억제 정책이 오히려 서민을 '카드론 덫'으로 내몰고 있다. 총량 관리에만 매몰된 대출 규제가 은행 문턱을 높이자 갈 곳 잃은 서민들이 고금리 카드론으로 몰리는 ‘풍선효과’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규제가 빚을 줄인 것이 아니라 빚의 질(質)을 악화시킨 결과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 위한 규제가 오히려 서민들이 합리적인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통로를 막아버렸다. ‘금융 접근성’이 좁혀진 틈새를 카드론이 파고들면서 시장 왜곡을 심화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최근 지표가 이 위험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금융당국과 카드업계 자료를 보면 카드론 연체율은 2021년 말 1.7%에서 올해 2분기 2.4%까지 치솟았다. 카드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며 잔액을 줄였음에도 연체율이 오르고 있다는 건, 기존 대출자들의 ‘빚 돌려막기’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방증이다.
이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카드사와 서민 모두 패자가 되고 있다. 카드사는 은행과 달리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에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본업인 가맹점 수수료 수익이 악화된 상황에서 수익 보전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카드론 영업에 나서지만, 연체율 급등으로 대손비용이 폭증하고 있다.
결국 이 악순환의 최종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에게 전가된다. 은행 대출이 막힌 저신용자들은 더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 카드론을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지만, 이는 일시적 숨통일 뿐 장기적으로는 감당 못할 부채의 늪으로 빠지는 지름길이 된다.
이는 가계부채를 하나의 거대한 숫자로만 취급한 ‘탁상행정’의 전형적인 실패라고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은 7%의 은행 대출을 막으면 가계부채가 줄어들 것이라 믿었지만 벼랑 끝에 선 서민에게 선택지는 ‘대출 포기’가 아니라 ‘17%의 카드론’뿐이라는 현실을 외면했다. 병의 원인이 아닌 증상만 억지로 누르려다 환자를 더 깊은 병으로 밀어 넣은 셈이다.
누가 이 덫을 놓았는가. 표면적으로는 금융사와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정책 실패가 자리한다. 위험하다고 다리를 끊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지금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은 서민들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갖춘 다리를 건널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을 재설계하는 것이다. 취약차주를 위한 정책금융을 확대하고 채무 재조정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등 연착륙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카드론이라는 시한폭탄의 초침은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금융당국이 낡은 매뉴얼만 뒤적이는 사이 부실의 뇌관은 조용히 타들어간다. 이 폭탄이 터졌을 때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모든 책임을 덮을 수 있을까. 금융 정책의 진정한 역할은 숫자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