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뜨겁다. 글로벌 금융 질서가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도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정작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조차 “필요성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와 달리 글로벌 시장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의 테더·서클이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한 이유는 단순하다. 기축통화인 달러와 연동돼 있기 때문이다. 1코인은 1달러의 가치를 지닌 ‘디지털 달러’로서 국제 송금과 결제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반면 원화는 글로벌 결제 시장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넷플릭스나 챗GPT 결제가 달러로 이뤄지고, 글로벌 기업 대부분이 원화 결제를 지원하지 않는 현실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국제 지급·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시장만 놓고 보더라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더라도 신용카드를 대체하는 ‘내수용 결제 수단’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다. ‘통화주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국제 금융 질서가 달러 중심으로 흘러가는 현실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해외는 속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7월 지니어스법(GENIUS Act)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며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통화 유사 자산으로 법제화했다. 유럽연합도 암호자산시장법(MiCA)으로 제도화 작업을 마쳤고, 일본 역시 관련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디지털 달러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반면, 국내는 법과 제도, 기술 준비 모두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내 준비 부진의 원인은 뚜렷하다. 첫째, 필요성과 활용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 할지, 비은행에도 허용할지 논의만 이어지고 있다. 둘째, 제도 설계가 미비하다. 발행 자격 요건, 준비금 관리, 자금세탁 방지 등 기본적인 안전장치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셋째, 시장 수요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 어디에 쓰이고,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준비를 늦출 수는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지급결제 인프라로 자리 잡아가는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미래 금융 시스템의 한 축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속도전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먼저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한 이유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내수 결제 효율화를 목표로 할지, 해외 송금 경쟁력을 높일지, 아니면 금융혁신을 위한 플랫폼을 구축할지 명확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그 위에서 법·제도 정비와 기술개발, 시장 참여자 간 협력이 맞물릴 때 비로소 ‘활성화’ 논의가 의미를 가질 것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히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왜 만들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이유와 방향이 뚜렷할 때만 준비의 진정한 가치가 발휘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