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반납 대가 약속·7억5000만 달러 계약 불이행 의혹
법원 “계약 위반·사기 의혹 다툼 여지…본안 심리로 판단”
[편집자주] 서울와이어는 비즈앤로(Biz&Law) 코너를 통해 한국 기업이 전 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각종 비즈니스 소송을 심도 깊은 취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생소한 해외 법적 용어와 재판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내 국내 산업계가 마주한 글로벌 법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향후 전망까지 예측하고자 합니다.

[서울와이어=박동인 기자] 신한투자증권이 미국 자산운용사로부터 제기된 소송에 휘말렸다. 법원은 자산운용사 측이 신한투자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약 1억4700만 달러(약 2050억원) 규모의 조기반납 대가 약정과 7억5000만 달러(약 1조원) 규모 증권대차 계약 불이행 주장 등에 대해 본안 심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현지시간 7월 31일 미국 뉴욕주(州) 뉴욕카운티 대법원은 미국 자산운용사 알아이에이 알스퀘어드(RIA R Squared)가 신한투자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피고 신한투자증권이 낸 소송 각하(Motion to Dismiss) 신청을 일부만 인용하고 나머지는 기각했다.
신한투자증권은 RIA 측이 법원에 제기한 ▲계약 위반 ▲사기적 기망 ▲신의성실의무 위반 ▲확인 판결 청구를 전부 기각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법원은 계약 위반과 사기적 기망 주장은 본안 심리에서 다루기로 하고 신의성실의무 위반과 확인 판결 청구만 기각했다. 이에 따라 사건의 핵심인 증권대차 계약 불이행 및 허위 진술 여부는 본격적인 재판 절차에서 다뤄지게 됐다.
분쟁의 발단은 2019년 양측이 체결한 글로벌 마스터 증권대차계약(GMSLA)과 보충계약(SLA)에서 비롯됐다 신한투자증권은 당시 원고인 RIA에 총 2억5000만 달러(약 3500억원) 규모의 증권을 빌려줬다. 그러나 2020년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내부 유동성이 악화되자 신한투자증권은 조기 반납을 요청했고, RIA는 약 4700만 달러(약 654억원) 규모의 증권을 돌려줬다.
문제는 RIA 측이 조기 반납의 대가로 신한투자증권이 추가 약정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발생했다. 소장에 따르면 RIA 측은 신한투자증권이 ▲같은 금액인 4700만 달러를 다시 대여해 주고 ▲추가로 1억 달러(약 1392억원)를 빌려주며 ▲일부 수수료를 유예·감면하기로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RIA 측은 이를 ‘증권 인도 약정(Securities Delivery Agreement·SDA)’이라고 명명하고 신한투자증권 이 계약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2023년경 논의된 총 7억5000만 달러 규모의 추가 증권대차 계약 초안 역시 신한투자증권이 정식으로 합의해 놓고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RIA 측은 신한투자증권이 이메일과 서명을 통해 동의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이는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소장에 따르면 당시 협상에는 신한투자증권 고위 임원과 RIA 최고경영자(CEO)인 데이비드 강(David Kang)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RIA 측은 신한투자증권이 SDA 불이행에 이어 또다시 대규모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서 반복적으로 계약 의무를 저버렸다고 강조했다.
신한투자증권 측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답변서에서 신한투자증권은 “RIA 측이 언급하는 SDA는 단순한 협의 과정일 뿐 정식 계약으로 체결된 사실이 없다”며 “RIA가 주장하는 SDA는 법적으로 인정된 문서도 아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계약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맞섰다.
또 7억5000만 달러 규모 증권대차 계약 초안과 관련해서도 “일부 이메일 회신이나 서명 정황은 내부 검토 과정에서 발생한 것에 불과하다”며 “정식으로 계약이 체결된 사실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허위 진술 의혹에 대해서도 “원고가 제시한 이메일·통화 기록은 맥락이 왜곡된 것이며, 당시 재무 상황 설명 역시 정상적인 협의 절차의 일환이었다”고 강조했다.
신한투자증권은 RIA 측이 제기한 모든 청구를 기각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가 제출한 문서와 정황만으로도 계약 위반 및 사기적 기망 주장은 충분히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이 부분은 본안 심리에서 사실관계를 가려야 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조기반납 대가 약정(SDA)과 7억5000만 달러 규모 증권대차 계약 초안의 효력 여부, 신한투자증권이 투자자들을 기망했는지 여부는 서류 단계에서 판단할 수 없는 쟁점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신의성실의무 위반과 확인 판결 청구에 대해서는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지 않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들 청구가 계약 위반 주장과 사실상 중복되거나 독립된 권리 구제를 인정하기에는 구체성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계약 위반 및 사기적 기망 주장은 본안에서 다투되 부수적으로 제기된 청구는 정리한 셈이다. 이에 따라 사건은 원고 측의 핵심 청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재판 절차로 넘어가게 됐다.
이번 판결에 대해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RIA의 청구가 주장 자체로 성립이 안되므로 본안에서 다투어 볼 필요 없이 각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항변했다”며 “하지만 법원은 본안 소송에서 한번 판단해 볼 필요 있다는 취지로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