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안전자산으로, 대출은 더 까다롭게, 배당은 보수적으로
국제 규제 바젤Ⅲ, 중앙은행·가계·은행 모두의 게임 규칙을 바꾸다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금값이 오르고, 가계대출 문턱(DSR)이 높아지고, 은행 배당 여력이 꺾일 수 있다는 신호가 이어진다. 얼핏 별개의 현상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규칙집으로 수렴한다.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만든 ‘바젤III’다. 이 규제의 철학은 간단하다. ‘위기 때 버틸 자본을 두껍게 쌓고, 위험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이 한 문장이 금·대출·배당을 동시에 흔든다.
BIS는 1930년 헤이그 협정에서 태어난, 중앙은행들의 협의체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금융기구다. 1차대전 배상금 정산을 맡으며 출발했고, 지금은 중앙은행 간 정책 공조의 허브 역할을 한다. ‘바젤’이라는 이름은 스위스 바젤에 있는 BIS 회의관에서 따왔다.
1974년 독일의 헤르슈타트 은행이 결제 시점 불일치로 파산하자(이른바 ‘헤르슈타트 리스크’) 각국 감독당국은 ‘국경을 넘는 은행 위험은 함께 다뤄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고, 그해 말 G10 중앙은행 총재들이 바젤위원회를 세웠다. 은행의 최소자본 규제를 국제적으로 통일하자는 시도는 이렇게 시작됐다.
첫 번째 규칙집은 1988년의 ‘바젤Ⅰ’ 핵심은 위험가중자산(RWA) 대비 8%의 총자본을 요구했다. 2004년 ‘바젤Ⅱ’는 차주의 신용등급을 반영해 위험가중치를 차등화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2010년 공개된 ‘바젤Ⅲ’는 보통주자본(CET1)을 중심으로 자본의 질을 더 엄격하게 보도록 했고, 이후 ‘최종안(일명 바젤3.1)’에서는 내부모형이 산출한 위험값이 지나치게 낮아지는 일을 막기 위해 ‘아웃풋 플로어(최저하한 72.5%)’까지 도입했다.
국가마다 단계와 속도는 다르지만 완전 시행 시점인 2028년에 이르면 은행이 계산한 RWA가 최소 72.5% 아래로 내려갈 수 없다는 뜻이다. 분모(RWA)가 커지는 만큼 같은 자본으로는 비율이 낮아져, 배당보다 이익 유보에 무게가 실린다.

다음은 금이다. ‘바젤Ⅲ가 실물 금을 티어1(0% 위험가중치)로 승격했다’는 말이 온라인에서 자주 보이지만, 일부는 과장·오해다. 유럽연합의 CRR(자본규제 규정)과 영국의 동일 규정, 그리고 미국의 표준방법 규정만 봐도 ‘자체 금고에 보관하거나(allocated) 특정 금괴로 지정된 실물 금’에 대해 0% 위험가중치를 허용해왔다.
핵심은 ‘할당 보관된 실물 금’만 신용위험 측면에서 현금에 가깝게 다루고, 파생·비할당(unallocated) 형태는 동일하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유동성 규제(LCR)에서 요구하는 고유동성자산(HQLA) 분류에는 금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 흐름 자체는 분명하다. 이는 바젤Ⅲ의 직접 결과라기보다, ‘위기 내구성’이라는 규제 철학과 맞물린 간접 효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신용위험을 거의 주지 않는 실물 금 보유의 명분이 강화된 데다 지정학·제재·달러 집중 리스크가 겹치면서 수요가 받쳐진 것이다. 최근 금값 랠리는 이런 구조적 수요(중앙은행)와 심리적 수요(민간 안전자산 선호)가 포개진 결과로 읽힌다.
가계대출 규제도 같은 철학의 연장선이다. DSR은 연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능력을 묻는 기준이고, 한국은 금리 급등의 후유증을 겪으며 ‘스트레스 DSR’(앞으로 금리가 올라가도 버틸 수 있는지 따져 계산)에 들어갔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7월1일부터 3단계 스트레스 DSR을 예정대로 시행했다. 감독 기준이 ‘지금 괜찮다’에서 ‘미래에도 괜찮을 것인가’로 바뀌면서 대출의 총량·구성이 조정됐고 차주 문턱은 높아졌다. 위험이 큰 대출은 줄고, 상환능력이 확실한 대출이 늘어나는 쪽으로 은행의 포트폴리오가 재편되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배당은 왜 줄어들까. 답은 다시 RWA와 CET1에 있다. 바젤Ⅲ 최종안의 아웃풋 플로어가 올라갈수록 은행의 ‘위험측정 결과’는 감독당국이 정한 하한선에 의해 끌어올려진다. 위험가중자산(분모)이 커진 만큼 같은 보통주자본(분자)으로는 비율이 낮아지므로 은행은 자본을 더 쌓아야 한다.
방법은 간단치 않다. 유상증자·후순위채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비용과 시그널을 감안하면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이익 유보 확대’다. 당기순이익을 배당으로 내보내기보다 내부에 쌓아 CET1을 두툼하게 만드는 것이다. 각종 사회적 비용(피싱 배상, 상생 출연, 배드뱅크 분담 등)이 더해지면 보수적 자본 정책을 택할 유인은 더 커진다.
결론적으로 금값 급등의 배경에는 중앙은행의 꾸준한 매입이 있고, 그것은 바젤Ⅲ가 상징하는 ‘위기 내구성’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다. 가계대출에선 스트레스 테스트가 일상 규범이 되며 문턱이 높아졌고, 배당에선 아웃풋 플로어와 자본의 질 규제가 이익 유보를 부른다.
규제의 목적은 ‘은행을 더 안정적으로 만들어 시스템을 덜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로 움직이는 듯한 금·대출·배당이 한 장의 규칙집으로 연결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