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금슬금’은 슬기로운 금융생활의 줄임말로, 어려운 경제 용어나 금융 상식을 독자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 전달하는 코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금융 정보와 똑똑한 경제 습관을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주]

임베디드 금융이란 우리가 매일 쓰는 앱 안에 결제·대출·보험 같은 금융 서비스가 숨어 들어오는 걸 말한다. 사진=GPT생성
임베디드 금융이란 우리가 매일 쓰는 앱 안에 결제·대출·보험 같은 금융 서비스가 숨어 들어오는 걸 말한다. 사진=GPT생성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은행을 새로 만들 수 없다면 금융은 어디로 가야 할까. 최근 금융당국이 제4 인터넷전문은행(4인뱅) 인가를 모두 불허하자 신한금융은 방향을 바꿨다. 은행업 대신 기업용 ERP(자원관리) 시스템 속으로 금융을 녹여 넣는 ‘ERP 뱅킹’을 택한 것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어렵게 느껴지지만 결국은 ‘고객이 있는 곳으로 금융이 따라가는’ 흐름이다.

ERP 뱅킹은 ‘임베디드 금융(Embedded Finance)’의 한 형태로 금융을 별도 앱이 아닌 고객이 실제 사용하는 서비스 안으로 녹여 넣는 전략이다. 쉽게 우리가 매일 쓰는 앱 안에 결제·대출·보험 같은 금융 서비스가 숨어 들어오는 걸 말한다.

예전에는 은행 앱을 따로 켜야 했다면 이제는 네이버페이나 토스에서 쇼핑하다가 곧바로 할부를 신청하거나 카카오페이에서 보험에 가입하는 식이다. 금융이 생활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인 셈이다.

이런 흐름은 이미 시장에서 입증되고 있다. 2024년 한국 임베디드 금융시장 규모는 약 1조4000억원. 5년 뒤에는 7조원대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로 눈을 돌리면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단순히 결제를 넘어 보험, 투자, 기업 대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이득이 크다. 고객이 결제 정보를 일일이 입력할 필요가 없으니 편하고, 앱 안에서 후불결제 같은 옵션을 고르면 구매 확률도 쑥 올라간다. 데이터가 쌓이면 개인 맞춤형 금융상품을 추천하기도 쉽다. 스타벅스 앱의 선불카드, 현대차의 차량 내 결제, 테슬라의 자체 보험까지.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서 이미 임베디드 금융을 만나고 있는 셈이다.

임베디드금융은  생활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인 셈이다. 네이버페이나 토스에서 쇼핑하다가 곧바로 할부를 신청하거나 카카오페이에서 보험에 가입하는 식이다. 사진=서울와이어DB

국내 금융사들도 속도를 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삼성 ‘모니모’와 전용 통장을 내놓고, 우리은행은 네이버페이와 제휴상품을 준비 중이다. 신한은 ERP 뱅킹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더존비즈온·제주은행과 손잡았다. 하나은행은 쿠팡·네이버페이와 협업을 넓히고 있다. “이자 장사만 한다”는 비판을 넘어서 비이자이익과 새 고객을 잡기 위한 해법으로 본 것이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은 입점 업체에 대출을, 차량공유업체 리프트는 기사들에게 앱 속 계좌와 직불카드를 준다. 테슬라는 운전 습관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지는 자동차 보험을 도입했다. 보험료가 20~30% 싸지고, 안전운전 유도 효과도 낸다.

물론 과제도 있다. 국내 핀테크는 여신전문금융업법 등 규제를 받기 때문에 비금융 회사가 바로 대출업을 할 수 없다. 카드사의 후불결제 독점은 소비자 선택권을 막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무경험 기업에 대출을 허용하는 것도 위험하다. 제도 설계가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이유다.

게다가 이제는 AI 시대다. 생성형 AI가 임베디드 금융과 결합하면 단순히 ‘간편한 결제’를 넘어 더 정교한 맞춤 서비스, 빠른 리스크 관리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 편향된 판단 같은 부작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단순하다. 은행이 고객을 기다리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는 고객이 있는 자리(쇼핑 앱, 차량, ERP 시스템) 속으로 금융이 찾아간다. 규제의 균형과 데이터·AI의 안전한 활용만 담보된다면 임베디드 금융은 ‘편리함’을 넘어 한국 금융의 새 성장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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