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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열린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일 열린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정부가 국민성장펀드를 당초 100조원에서 150조원으로 키웠다. 이재명 대통령은 “핵심 산업 프로젝트에 대규모·장기 자금을 투자하겠다”며 담보·예대마진 중심 관행을 넘어 “생산적 금융으로의 대전환”을 예고했다. 금융위원회는 관계부처·산업계·금융권이 총출동한 국민보고대회에서 비전과 운용 전략을 공개했고, 연내 ‘첨단전략산업기금’ 출범과 내년 상반기 본격 가동을 알렸다.

구조는 단순하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마련하는 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원에 연기금·금융회사·국민자금 75조원을 매칭해 총 150조원을 조성한다. 민간 참여를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 재정은 후순위로 위험을 먼저 부담하고, 은행·증권·보험·연기금의 건전성·운용 규제는 합리적으로 손본다. 산업은행은 기금채 이자 등을 감당할 수 있도록 별도 재원을 출연하고, 재정과 기금이 함께 위험을 나누는 구조를 전제로 금융권·연기금 참여가 이어진다.

돈의 방향도 분명하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백신, 모빌리티, 2차전지, 로봇, 수소, 디스플레이, 방산 등 10대 첨단전략산업과 그 밸류체인 전반이 대상이다. 분야별로는 AI 약 30조원, 반도체 20조9000억원, 모빌리티 15조4000억원, 바이오·백신 11조6000억원, 2차전지 7조9000억원 등 굵직한 배분이 제시됐다. 

사진=금융위원회
사진=금융위원회

필요 법령을 정비해 게임·콘텐츠 등으로 투자 저변을 넓히는 방안도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AI 데이터센터, 에너지 고속도로, 전력망·용수 등 인프라 같은 메가프로젝트에 우선순위를 두되, 수도권 편중을 피하려 지역 프로젝트에도 자금을 충분히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지원 방식은 기업의 생애주기에 맞춰 설계됐다. 신설 법인·공장 설립이나 기업 인수합병에는 ‘직접 지분투자’로 들어가고, 민간과 함께 대형 펀드를 만들어 초장기 기술투자에 나서는 ‘간접투자’를 병행한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산단 인프라에는 투·융자를 섞어 지원하고, 대규모 설비투자·R&D에는 국고채 수준(연 2%대)의 초저리 대출을 제공한다. 원칙은 “여신보다 투자 비중을 키우되, 지역 프로젝트를 두텁게”다. 정책 설계상 직·간접 지분투자 규모는 총 50조원 이상으로 설정됐다.

기대효과는 숫자로도 제시됐다. 한국은행의 부가가치 유발계수(0.83)를 적용하면 최대 125조원의 부가가치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벤처·기술기업의 스케일업, 일자리 창출, 지역 성장까지 잇는 선순환을 목표로, 정부는 “한국형 엔비디아” 육성 의지도 공개적으로 밝혔다.

보고대회에는 SK·현대차·한화에어로스페이스·네이버·LG유플러스·셀트리온·두산·퓨리오사AI 등 산업계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등 금융권, 벤처·창업계·대학 창업동아리까지 총출동해 ‘돈의 방향’을 두고 의견을 쏟아냈다. “벤처·기술기업에 대한 초장기 자금이 더 필요하다”는 현장의 주문도 이어졌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백신, 모빌리티, 2차전지, 로봇, 수소, 디스플레이, 방산 등 10대 첨단전략산업과 그 밸류체인 전반이 대상이다.  이미지=GPT생성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백신, 모빌리티, 2차전지, 로봇, 수소, 디스플레이, 방산 등 10대 첨단전략산업과 그 밸류체인 전반이 대상이다.  이미지=GPT생성

참여 경로도 열려 있다. 국민참여형 공모 펀드가 마련되고, 정부가 발행하는 기금채를 매수해 이자수익을 받는 방법도 가능하다. 두 상품의 성격은 다르다. 공모 펀드는 시장형 투자상품이어서 수익과 손실 가능성을 모두 안고, 기금채는 채권 성격에 가까워 이자수익을 노리는 대신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정부가 후순위로 위험을 떠안지만, 민간 투자에는 어디까지나 시장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이 명확히 제시됐다.

해외와의 비교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 국부펀드연구소(SWIFT)에 따르면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1조7388억달러, 중국은 중국투자공사 1조3321억달러와 국가외환관리국투자회사 1조0900억달러, 중동의 아부다비투자청 1조0575억달러·쿠웨이트투자청 1조0290억달러·사우디 공공투자펀드 9250억달러, 싱가포르투자청 8008억달러, 인도네시아 단안타라 6000억달러, 카타르투자청 5261억달러, 홍콩금융관리국 투자포트폴리오 5143억달러 규모를 운용한다. 

이들 다수는 해외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노리는 성격이 강한 반면, 국민성장펀드는 국내 10대 첨단산업 밸류체인에 직접 돈을 넣는 산업 육성형 플랫폼에 가깝다. 이름은 비슷해도 용도와 목표가 다르다.

시간표는 정해졌다. 첨단전략산업기금은 12월 초 출범한다. 정부·산업은행·관계부처는 ‘30대 선도프로젝트’를 포함해 상징성 큰 사업을 골라 내년 상반기부터 속도를 낼 계획이다. 성패는 집행의 속도와 품질에 달렸다. 정부는 재정으로 위험을 분담하며 방향을 제시했고, 민간은 규제 유연화와 명확한 위험·수익 구조를 전제로 참여 의향을 확인했다. 150조원짜리 방향 전환이 말잔치로 끝날지, 산업 지형을 실제로 바꿀지, 이제부터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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