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슈미 여신의 축복이냐, 기술적 조정이냐”…폭락 뒤에 드러난 인도인의 금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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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바.사진=pixabay
골드바.사진=pixabay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오던 국제 금값이 하루 만에 급락했다. 21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4109.1달러로 마감하며 하루 낙폭만 5.74%에 달했다. 현물 가격도 온스당 4115.26달러로 5.5% 하락했고, 장중 한때 6.3%까지 떨어져 2013년 이후 최대 일간 하락률을 보였다. 최고가 4381달러를 찍은 지 하루 만의 급락이었다. 

전문가들은 과열된 시장의 기술적 조정과 달러 강세, 위험자산 선호 확산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수키 쿠퍼는 “단기 기술적 조정 국면”으로 판단했고, 삭소뱅크의 올레 한센은 “기저 매수세가 살아 있어 조정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키트코 메탈의 짐 위코프는 “위험선호 심리 개선이 안전자산 약세를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단기적인 매도 요인 외에도 독특한 구조적 변수가 겹쳤다. 바로 세계 최대 실물 금 수요국인 인도의 ‘신앙의 수요’다. 블룸버그 통신은 힌두교 최대 명절 ‘디왈리(Diwali)’로 실물 금 거래가 중단되며 시장 유동성이 급격히 줄었다고 지적했다.

인도는 중국과 함께 전 세계 금 소비의 80%를 차지하는 양대 축이다. 부와 번영의 여신 락슈미(Lakshmi)가 금을 상징하는 만큼, 금은 인도인에게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다. 디왈리 기간 금을 사면 행운이 깃든다는 믿음은 수백 년간 인도 사회의 소비 패턴을 지배해왔다.

올해 디왈리는 10월 18일부터 23일까지 이어졌다. 락슈미 여신에게 부를 기원하는 이 시기에 인도는 대량의 금괴를 수입하고 장신구 제작에 돌입한다. 그러나 축제가 시작되면 거래소와 관공서가 휴무에 들어가 공식 거래가 사실상 멈춘다. 수입·가공은 마친 상태에서 판매만 중단돼, 유동성이 얇아진 가운데 매도세가 집중됐다.

이미지=GPT생성
이미지=GPT생성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인도는 연간 약 800톤의 금을 수입한다. 이는 전 세계 생산량의 4분의 1에 달한다. 인도의 계절적 수요 패턴은 글로벌 금값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디왈리 직후에는 결혼 시즌(11월~1월 초)이 이어지며, 매년 약 1000만 건의 결혼식 중 절반 이상이 이 시기에 열린다. 결혼 지참금 문화와 금 장신구 선호가 여전히 강해, 이 시기 금 소비가 전체 수요의 절반을 차지한다. 결혼 시즌을 앞둔 9월 인도의 금 수입액은 전월 대비 77% 급증했다.

하지만 축제가 끝나면 소비 중심의 수요는 줄고, 장신구 제작·가공 단계로 전환되며 실물 거래는 일시적으로 감소한다. 높은 금값이 소비자들의 구매를 미루게 만들고, 대신 금 ETF·파생상품 등 투자형 수요가 늘어난다. 귀금속전문거래소 BullionVault는 “고금 시세가 실물 구매를 억제하고 투자 거래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계절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이 맞물리며 금값이 크게 출렁인 셈이다.

인도의 금 사랑은 단순한 경제 현상을 넘어 신앙의 영역에 있다. 2016년 모디 총리가 고액권 화폐개혁을 단행했을 때 인도인들은 금을 통해 부를 지켜냈다. 불법 자금 규제를 피해 자산을 금으로 옮긴 경험은 락슈미 여신에 대한 신뢰를 더욱 굳게 만들었다. 이후 금은 인도 가정의 ‘신앙이자 자산’이 됐다. 인도 가정이 보유한 금은 약 2만5000톤으로, 미국 정부(8100톤)의 세 배이며 주요 9개국의 금 보유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금값 변동이 인도 가계 심리와 직결되는 이유다.

이처럼 인도인의 신앙적 금 수요는 세계 금시장의 실물 기반을 떠받치는 한 축이다. 각국 중앙은행의 매입과 인도·중국의 견조한 실물 수요, 화폐가치 불안에 대한 경계심이 금값의 하방을 지탱한다. 단기 폭락에도 인도인들은 금을 놓지 않는다. 금값이 오르면 락슈미 여신의 축복이라 믿고, 내리면 다시 살 기회가 왔다고 여긴다.

결국 인도의 금 수요는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세계 시장의 흐름을 움직이는 실질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시적 조정 속에서도 금에 대한 인도인의 신뢰는 여전히 세계 금값을 떠받치는 힘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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