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최대 7500달러 세제 혜택 사라져
현대차·기아, 하이브리드 생산 늘리는 전략
트럼프 정책에 완성차 업체 전기차 '뒷걸음'

미국 버지니아주의 현대차 매장. 사진=현대차 
미국 버지니아주의 현대차 매장. 사진=현대차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미국 정부가 올해 9월을 끝으로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전기차 세액 공제를 종료하기로 결정하자 완성차 업계가 술렁인다. 정책 변경으로 전기차 판매량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기차를 주력 상품으로 선보이는 현대차·기아의 대책 마련이 시급해질 것으로 보인다.

19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전기차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세액 공제 혜택을 이달 말 종료한다. 소비자들은 전기차를 구입한 해에 세금 신고 시 연방 소득세에서 최대 7500달러(약 1050만원)를 공제받아 왔다.

당초 이 혜택은 2032년 말까지 유지될 계획이었지만, 친환경 정책을 축소하고 전통 내연기관 산업의 부흥을 원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며 폐지를 밀어 붙였다. 이후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이 폐지 시한을 7년 이상 앞당겼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전기차 세액 공제가 종료되면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이 최대 37%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로 실적 하방 압력이 커진 현대차·기아는 이번 혜택 폐지로 현지 시장에서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관세로 인해 가격 인상도 염두하는 상황에서 전기차 혜택이 줄어들면 소비심리는 더욱 얼어붙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州)에 대규모 친환경차 전용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건설해 지난해 말부터 가동하는 등 전기차에 막대한 투자를 해 왔기에 혜택 폐지는 대형 악재다. 한국경제인협회는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판매량이 연간 최대 4만5000대가 줄고, 매출액도 19억5508만달러(약 2조700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차·기아의 현지 전기차 판매량이 올 들어 급감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책 변경의 충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 업체 워즈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올 상반기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4만4555대로 전년 동기보다 28% 줄었다. 지난달 1만6102대로 전년 동월 대비 38.5% 반짝 상승했지만, 전기차 세액 공제 종료를 앞두고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EPA/연합뉴스

다만 현대차·기아는 당장 전기차 생산량을 큰 폭으로 줄이거나 개발 계획을 취소하는 등의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차를 망설이는 소비자가 하이브리드차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하이브리드 모델 생산량을 늘리고 신차를 내놓는 등 전략 변경으로 대처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HMGMA의 생산 설비를 기존 전기차 중심에서 하이브리드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여론 추이에 따라 정책을 유지하거나 부활시킬 가능성도 존재해 일단 상황을 지켜보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전기차 구매 혜택을 종료하면 수요는 급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존 세제 혜택 만큼 차 가격을 할인하는 방법도 있으나 이마저도 관세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한 상황이라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완성차 업체는 트럼프의 기조에 맞춰 전기차를 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제너럴모터스(GM)는 2010년대 중반부터 호주 등 여러 해외 사업장을 정리하고 전기차 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입해 왔다. 하지만 지난 6월 미국 내 내연기관차 생산과 엔진 개발에 40억달러(약 5조60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히며 전기차 전환 계획을 미루고 내연기관 투자 부활을 예고했다.

포드도 올 들어 신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개발을 취소하고 전기차 투자 비중도 대폭 하향했다. 미국 브랜드는 아니나 현지 판매 비중이 전체 생산량의 16%에 달하는 메르세데스-벤츠도 2030년까지 모든 모델을 전기차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하며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에 다시 힘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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