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강경파 수위 조정, 추석 민심 전략 반영
국민의힘, 민주당 '이중 잣대' 공세 지속
협치 난항, 민생 법안 처리 영향 가능성
사법·검찰개혁 갈등 속 '경제 카드'는 민심 변수
4박5일 동안 이어진 국회 본회의 무제한 토론은 지난 29일 '국회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처리로 막을 내렸다. 국민의힘이 요청해 진행된 필리버스터 대상 법안 4건은 모두 본회의를 통과했다. 필리버스터 정국은 일단락됐지만, 여야는 국회 곳곳에서 충돌 중이다. 당장 야권은 최근 벌어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태에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며, 맹공을 퍼붓는 등 여야간의 강대강 대치는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이달 이재명 정부의 첫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는 만큼 여야간 대치 국면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편집자주]
[서울와이어=정현호 기자] 여야의 정국 대치가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국회의 팽팽한 긴장감은 추석연휴 후 열리는 국정감사에서 폭발 임계점에 다다를 것으로 관측된다.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청산', '개혁', '산재'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내란 청산을 기치에 내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은 강한 입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3대 개혁(사법, 검찰, 언론)'의 필요성을 부각할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거대 정권 견제론'을 토대로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국감 앞두고 여야 전면전 돌입… 청문회·입법·민생 모두 충돌
8일 정치권에 따르면 당장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공개적 압박을 강화하면서도 탄핵 소추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있고 여권 내에서도 강경론 대신 신중론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마련한 조 대법원장 긴급현안 청문회는 불출석으로 무위에 그치자, 민주당은 곧바로 현장 국정감사 추진을 결의하고 전면전에 돌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를 정치보복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표결에서는 결국 밀렸다. 여야의 공방 속 조 대법원장 탄핵을 둘러싼 기류는 급속히 조정되는 모양새다.
여당 지도부가 속도 조절을 택한 배경에는 추석 민심을 의식한 정치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장 탄핵은 중도층 반감을 불러올 수 있는 민감한 카드인 데다, 김현지 총무비서관 인사 논란과 맞물려 오히려 ‘이중 잣대’라는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이석연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도 공개적으로 “무리한 탄핵 주장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결국 여야 모두가 정국 주도권을 쥐려는 셈법 속에서 강온 양면 전략을 병행하는 모습이다.
내란종식, 사법·언론 개혁, 국가부채 문제 등 굵직한 의제가 대기 중인 만큼 국감과 예산 정국에서의 전략적 행보가 향후 정치지형을 좌우할 전망이다.

◆여야 모두 추석 민심 의식, 민생 법안은 ‘뒷전’
이런 상황 속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대치가 정국 긴장을 또다시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쟁점 법안뿐 아니라 민생 법안까지 통째로 필리버스터 대상으로 묶으며 초강수를 뒀다.
이에 민주당은 국회법을 고쳐 필리버스터 자체를 제한하겠다고 맞섰다. 다수 의석을 앞세운 민주당의 기류가 강경하게 흐르자, 야권은 ‘입법 독주’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여권 내부에서도 “소수당의 발언권까지 틀어막아선 안 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시급한 민생 법안을 정쟁의 볼모로 잡는 데 대한 자성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원내 지도부는 “필리버스터 전면 투입은 확고한 방침”이라고 고수하는 중이다. 여야 모두 정치적 명분과 실리를 저울질하며, 강경 대응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연말 예산 정국까지 이어질 충돌의 파장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여야 간 국회 경색 국면이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합의 없는 법안 처리로 이미 남은 감정의 골은 깊고 민주당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법 등 추가 쟁점 법안 처리까지 예고하고 있어 긴장감은 지속된다.

◆여야 공방 가열… 정치 대립 속 경제 카드 맞불
여야는 정국 대치 속에서 추석 민심을 겨냥한 경제 카드로 맞불을 놓고 있다. 민주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입법을, 국민의힘은 배당소득세 대폭 인하를 제시하며 1400만 개인투자자, 이른바 ‘개미 투자자’의 표심을 잡기 위한 경쟁에 나섰다.
민주당은 한국거래소를 찾아 자본시장 활성화 구상을 직접 설명하며, 주주 권리 강화 방안을 강조했다. 핵심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돼 온 자사주 매입 관행을 바꾸기 위한 소각 의무화다. 자사주를 줄여 주당 가치를 높이고 소액주주 이익을 제고하겠다는 계산이다.
특히 민주당은 원칙적 소각을 추진하되, 임직원 보상 등 예외만 허용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정청래 대표는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며 당 차원의 강력한 지원을 약속했다.

국민의힘은 세제 완화 카드를 꺼냈다. 현행 최대 49.5%까지 부과되는 배당소득세율을 각각 9%, 25%로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정부의 세법 개정 이후 투자자 불만이 커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개인투자자 친화적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의도다.
민주당도 배당 확대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했지만 세율 조정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여야 모두 정치적 공방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개미 투자자 민심’이라는 경제 카드를 활용하며 명분 쌓기에 나선 셈이다.
당장은 정기국회 핵심 쟁점이 사법·검찰개혁, 배임죄 폐지 등 갈등적 현안에 집중되는 만큼 자본시장과 투자자 친화 정책은 민생 행보의 상징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추석 연휴 후 국감정국 스타트… 주요 이슈는?
추석 연휴 직후 막이 오르는 2025년 국감에서는 주요 유통·건설·플랫폼 기업 대표들이 대거 증인석에 앉게 된다. 소비자 안전, 공정거래, 산업재해, 노동 문제까지 현안이 겹치면서 기업 수장들의 국회 소환이 어느 해보다 잦아질 전망이다.
우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는 오는 13일부터 29일까지 17일간 국감을 진행한다.
산자위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박대준 쿠팡 대표, 조만호 무신사 대표, 김기호 아성다이소 대표, 이주철 W컨셉 대표 등을 증인으로 불러 세운다.
쿠팡은 정산·수수료 구조를 비롯해 광고 정책 등을 집중 검증받고 무신사·W컨셉은 플랫폼-판매자 간 거래 공정성 문제, 다이소는 납품업체 제품 모방 의혹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신세계는 최근 알리바바와의 기업결합 건을 계기로 소비자 정보 보호 관리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정무위원회 국감에도 유통업계 수장이 대거 출석한다.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김광일·조주연 대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증인 명단에 포함됐다. CJ올리브영, 쿠팡, 교촌치킨, 명륜당, 배달의민족 등도 각종 갑질·수수료·가맹점 갈등 이슈로 국감장에 불려 나온다.
국토교통위원회는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대우건설·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현대엔지니어링·포스코이앤씨·GS건설·DL그룹 등 주요 건설사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올해 들어서만 대형 건설 현장에서 수차례 붕괴·추락사고가 이어지면서, 국회가 경영진에게 직접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국토위는 건설안전특별법 개정안 심사와 병행해 경영진의 안전관리 소홀을 집중적으로 따져 물을 계획이다.
이외 박현철 롯데건설 대표는 유동성 위기 대책, 박세창 금호건설 부회장은 오송지하차도 참사 관련 질의를 받을 예정이다. 철도·항공업계에서도 현대로템, 다원시스, 제주항공 등의 대표가 증인으로 채택된 상태다.
국토위는 이들에게 ▲납품 지연 안전사고 ▲관리 부실 문제 등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신설된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는 14일부터 30일까지 첫 국감을 연다. 에너지 공기업들이 감독 부처 변경에 따라 산자위와 환노위 양쪽에서 중복 감사를 받게 됐다.
환노위는 한국전력·한수원·발전 5사·지역난방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을 소환하고, 중대재해·노동 문제와 관련 SPC, 쿠팡, 영풍그룹 등 민간 기업 대표도 증인으로 불러 세운다. 김병주 MBK 회장은 홈플러스 기업회생 과정에 이어 산업재해 관련 질의에도 출석한다.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은 조 대법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 정면 충돌이 불가피하다. 현재 국민의힘은 “사법부 독립성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는 만큼 헌정사상 초유의 ‘대법원장 청문회’가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청 폐지 이후 특검 검사들의 집단 복귀 선언, ‘관봉권 증거 분실’ 사건 등 검찰개혁을 둘러싼 공방도 법사위 국감의 뇌관으로 지목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감의 최대 쟁점은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와 금융·통신사 해킹 사건이다. 사상 초유의 행정망 중단으로 대국민 서비스가 마비된 데다, 역대급 해킹 피해가 잇따르면서 여야 모두 예의주시하고 있다.
방송 관련 국감 일정은 14일 방송통신위원회를 시작으로 20일 MBC 업무현황보고(비공개), 23일 공영방송 KBS·EBS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국감이 이어진다.
오는 14일 방통위 국감은 ‘기관장 공백 사태’ 속 진행돼 이목이 집중된다. 이달 1일부터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방미통위법)’이 시행되면서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임기는 자동 종료됐다.
법 부칙에 정무직 공무원 면직 조항이 포함되면서, 국감 당일 기준 방미통위는 기관장도, 차관급 이상 대행도 없는 상태가 된다. 과방위는 이 위원장을 민간인 신분으로 증인 채택하기로 했다.
23일 예정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국감도 비슷한 상황이다. 류희림 전 위원장은 이미 사퇴했고 김정수 위원이 대행을 맡고 있으나 비상임이어서 권한이 제한적이다.
여기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촉한 일부 현직 위원들의 신분도 방미통위법 시행 이후 불확실하다. 과방위는 일단 류 전 위원장을 ‘불법 민원사주’ 논란 관련 증인으로 부른다는 방침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과방위 국감이 “사상 초유의 정보통신기술(ICT) 위기 대응과 방송·통신 정책 공백을 동시에 점검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본다.
한편 올해 국감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져 국민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특히 유통·건설·에너지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분야의 기업 수장이 대거 줄소환이 불가피하게 됨에 따라 재계는 추석 연휴에도 대응책 마련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올해 국감은 기업 총수와 CEO가 대거 증인으로 채택된 이례적 사례”라며 “안전·공정·소비자 보호 문제에 대해 여야가 직접 경영진 책임을 묻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치 국면이 길어질수록 양당 모두 중도층 이탈을 우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제 민심 확보는 필수 과제”라며 “입법 대립과 민생 카드가 동시에 전개되는 것은 향후 국감과 예산 정국의 성격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