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불확실성 속 예년보다 한달 가까이 앞당겨
현장형 리더·기술 전문가 중심…'세대교체' 바람
삼성·LG·현대차 등 총수들, 내년 체제 정비 박차
'미래 체제 전환기' 맞춰 조직 효율화·리더십 강화

사진=서울와이어 DB
사진=서울와이어 DB

[서울와이어=최찬우 기자] 국내 주요 그룹들이 올해 정기 인사 시기를 예년보다 한 달 가까이 앞당긴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내년 실적 반등과 미래 산업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뉴 리더십’ 구성이 본격화되고 있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SK그룹이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며 포문을 연 데 이어 삼성·LG·현대차그룹도 이달 중 조기 인사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번 인사 흐름은 각 그룹이 구조적 전환기에 놓인 산업 환경 속에서 리더십 구조를 새로 짜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증시 부진과 고금리, 미중 갈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복합 리스크에 더해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부상한 인공지능(AI)·클린테크 산업 패러다임이 경영 전략 전반을 흔들고 있다.

재계는 이를 ‘미래 체제 전환기’로 규정하고 올해 인사 키워드를 ▲기술 인재 ▲세대교체 ▲현장 중심 리더십으로 압축한다.

◆'미래 성장축 재편' 인사 기류 확산

SK그룹은 지난달 30일 예년보다 한 달 앞서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2021년 이후 4년 만에 부회장단이 보강됐다. 이번 인사로 SK그룹 부회장단은 최재원 수석부회장을 중심으로 장동현·유정준·서진우·이형희 등 5인 체제로 재편됐다.

그룹 내 핵심 사업인 반도체와 배터리, AI 부문에 기술 중심 리더를 대거 배치한 것도 특징이다. SK온 사장에는 소재·제조 전문가인 이용욱 SK실트론 대표가 발탁됐고 SK텔레콤 신임 최고경영자(CEO)로는 법조인 출신 정재헌 최고거버넌스책임자(CGO)가 선임됐다. 해킹 사고 이후 고객 신뢰 회복과 준법경영 강화를 위한 포석이다.

재계는 이번 SK 인사를 “위기 속 실행력 강화와 세대교체를 동시에 겨냥한 전략적 조치”로 내다봤다. 그룹 내부에서는 AI 서밋과 CEO 세미나 일정을 연계하며 ‘AI 중심 리더십 전환’을 공식화했다는 평가다.

◆삼성, 이달 중순 사장단 인사 유력… '뉴삼성' 신호탄 주목

삼성은 이르면 이달 중순 사장단 인사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1월27일 인사를 발표했던 만큼 올해는 시점이 열흘가량 더 앞당겨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난 뒤 시행하는 첫 인사라는 점에서 ‘뉴삼성’ 체제의 방향성을 가늠할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특히 노태문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직무대행의 부회장 승진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노 사장이 승진하면 정현호·전영현·노태문 3부회장 체제가 복원되며 삼성전자 조직의 안정화와 기술 중심 경영 강화가 동시에 이뤄진다. DS(반도체) 부문은 전영현 부회장 유임이 유력하고 차세대 HBM·시스템반도체 사업의 조직 강화가 예상된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그룹 컨트롤타워의 재정비 여부다. 2016년 해체된 ‘미래전략실’을 대체할 사업지원TF의 위상 강화가 거론되고 있으며, 경영진단실·글로벌리서치 조직을 묶은 전략 컨트롤센터 신설 가능성도 흘러나온다.

삼성전기·SDI·디스플레이·바이오 계열사 대표들은 대체로 유임 기류가 강하다. 실적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어 대폭적인 교체보다는 핵심 사업군 내 기술 인재 포상과 조직 효율화가 인사의 핵심 축이 될 전망이다.

◆LG·현대차도 '조기 정비' 유력… AI·모빌리티 신사업 대응

LG그룹은 지난달 말부터 구광모 회장 주재로 주요 계열사 사업보고회를 진행 중이다. 보고회 종료 후 이달 말 조직 개편 및 임원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

구 회장이 지난 9월 “구조적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고 밝힌 만큼 예년보다 빠른 조기 인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LG는 지난해 소폭 인사로 안정 기조를 유지했지만 올해는 부회장단 보강과 기술 중심 인재 발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는다.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이 부회장 승진 후보로 거론된다.

조 사장은 B2B·HVAC 신사업 확장으로 외형 성장을 견인했고 정 사장은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으로 4년 만의 흑자 전환을 이끌었다.

현대차그룹은 예년처럼 다음 달 인사가 유력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일정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미국 관세 협상 타결 이후 글로벌 사업 재정비가 필요해졌고 소프트웨어 중심차(SDV)·로봇·AAM 등 신사업 부문에서 경영진 교체설이 돌고 있다.

앞서 그룹은 광고대행사 이노션의 김정아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첫 여성 CEO를 배출, 변화 신호를 이미 예고했다.

재계는 올해 인사를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속도전”으로 본다. SK의 기술 인재 등용, 삼성의 조직 안정화, LG의 부회장단 보강, 현대차의 신사업 리더십 교체 등 모든 흐름이 ‘AI와 혁신 중심 경영’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효율성과 실행력을 갖춘 현장형 리더가 주목받는 시기”라며 “이번 조기 인사는 단기 실적보다 2026년 이후 중장기 성장 체제 구축을 위한 포석”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