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 감축안 제시에 산업계 일제 반발
속도 조절 불가피… 업종별 맞춤 전략 시급
철강·석화업계, 감축 설비 전환 불가능 호소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사진=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사진=기후에너지환경부

[서울와이어=최찬우 기자] 정부가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최소 50% 이상 감축하는 방안을 제시하자 산업계가 일제히 반발에 나섰다. 현실적 감축 여력을 넘어선 ‘과속 정책’이라는 비판이 잇따르며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와 대규모 구조조정 우려가 커진다.

◆철강·석화 '한계 직면'… 감축 설비 투자 여력도 바닥

7일 관련부처에 따르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6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50~60%’ 또는 ‘53~60%’로 감축하는 두 가지 안을 공개했다. 정부는 이 안을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하고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산업계는 “현실성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감축 기술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배출권거래제 부담이 커지고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결국 수익성이 맞지 않으면 공장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감축 목표(7~10%)와 비교할 때 “한국만 과도하게 높은 목표를 설정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부담은 더 크다. 철강업계는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시점이 2037년 이후로 예상되는 만큼 2035년 목표 달성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재 공급 과잉으로 구조조정도 시작 못했는데 감축 설비를 새로 지으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결국 생산 감축 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 역시 같은 입장이다. 석유화학업업계 관계자는 “탄소 감축 설비 투자, 배출권 구매 비용이 추가되면 수익성이 더 악화한다”며 “고부가가치 전환 투자 여력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동차 업계도 정부가 제시한 2035년 무공해차 보급 목표가 지나치게 높다고 비판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2030년 NDC(40% 감축)도 버겁다. 추가 상향은 부품업계에 치명적”이라며 “인센티브나 전환 지원책 없이 감축만 요구하는 건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감축 목표만 높이면 글로벌 경쟁력이 무너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 사진=연합뉴스
대한상공회의소. 사진=연합뉴스

◆산업 현실 외면한 '속도전'… 맞춤형 감축 전략 시급

대한석유협회와 한국철강협회, 한국시멘트협회, 한국화학섬유협회 등 7개 협회는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해 "48% 감축안도 달성을 위해서라면 탄소 저감 투자를 위한 정부의 재정 지원, 저탄소 시장 창출, 무탄소 에너지 인프라 구축이 선결될 필요가 있다"며 합리적 수준의 목표치를 설정해 달라고 지난 4일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업계는 일괄적 감축이 아닌 업종별 맞춤형 목표 설정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무리한 목표 설정은 배출권거래제 부담을 키워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을 것”이라며 “산업별 감축 여력과 기술 수준을 반영한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산업 현실을 감안한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한국자원경제학회장)는 “철강·석유화학 등 국가 기간산업은 기술적 한계와 투자 제약 속에 있어 감축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우리 산업의 80%가 감축이 어려운 구조”라며 “단순한 의지나 선언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1t의 조강을 생산해도 6만원의 탄소배출권을 사야 하는 구조”라며 “수소 가격이 현 수준(㎏당 1만원)에서는 감축 설비 전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발표로 산업계는 ‘기술·비용·시간’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했다. 산업계는 지원 없는 감축은 곧 산업 축소로 받아들이며 실질적 보완책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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