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DO 해체 수순 불구, 유럽원자력공동체 협정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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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이 KEDO와 협정을 재 연장했다. 사진=브뤼셀 유럽위원회
유럽연합이 KEDO와 협정을 재 연장했다. 사진=브뤼셀 유럽위원회

[서울와이어=황대영 기자] 북한 경수로 건설 사업의 핵심 축이었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유럽연합과 공식 협력을 연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협정은 단순한 외교 형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간 경수로 사업 중단 이후에도 KEDO를 ‘빈 껍데기 조직’으로 유지해온 유럽과 주요 3개국(미국·일본·한국)이 대북 재정적 청구권과 법적 방어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로 해석된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브뤼셀 유럽위원회에 따르면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는 지난해 5월로 종료된 KEDO와의 기존 협정을 갱신하고, 2027년 5월까지 자동 연장 가능한 새 협정을 체결하기로 했다.

KEDO는 1995년 3월 9일 한국·미국·일본 3국이 북한의 핵개발 중단을 유도하기 위해 설립한 국제기구다. 주요 임무는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는 대가로 핵확산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비확산 의무 불이행과 2002~2005년 사이의 정치·군사적 갈등으로 인해 경수로 프로젝트는 결국 중단됐다.

유럽원자력공동체는 1997년부터 KEDO에 정회원으로 참여해왔다. 그러나 2007년 5월 KEDO 사무국이 폐쇄되고, 이후 17년 가까이 KEDO는 ‘기능 없는 조직(skeleton entity)’으로 유지돼왔다. 이는 명목상 조직일 뿐이며, 사무국도 임시 직원과 최소 시설로 운영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KEDO를 공식적으로 종료하지 않은 배경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다. 회원국들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약 18억9000만 달러에 이르는 프로젝트 손해를 청구할 권리, 그리고 향후 제3자 또는 북한 측으로부터 제기될 수 있는 법적 책임으로부터의 보호막을 유지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다.

유럽위원회는 설명자료에서 “최초 예상으로는 2024년 5월까지 모든 법적·재정적 정산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봤으나, 현시점에서도 미해결 사안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24년 12월 16일, 유럽연합(EU) 이사회는 유럽집행위원회에 KEDO와의 협정을 소급 적용으로 재협상할 권한을 부여했다.

이번 협정은 2024년 6월 1일부터 소급 적용되며, 최초 종료일은 올해 5월 31일이다. 자동 갱신 조항을 통해 양측 중 어느 한쪽이 만료 1개월 전까지 종료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1년 단위로 자동 연장된다. 다만 2027년 5월 31일을 넘길 순 없다. 또 유럽원자력공동체는 KEDO에 어떠한 재정 기여도 하지 않고, 특별히 명시되지 않는 한 2024년 5월 종료된 기존 협정의 조항 대부분을 유효하게 유지한다.

KEDO가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조직임에도 회원국들이 존속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국제법에서 ‘법인격이 유지되는 국제기구’를 통해서만 가능한 자산 방어 및 손실청구의 근거 확보가 있다.

특히 유럽연합은 이번 협정 갱신의 정당성을 설명하면서 “현재 단계에서 KEDO를 종료할 경우, 북한 내 인프라 자산 소유권과 재정 청구권을 상실하거나 방어 논리에서 약점을 갖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 내에 남겨진 장비, 부지, 계약 문서 등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유지하는 데에도 KEDO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의미다.

또한 현재까지도 미국, 일본, 한국과 함께 KEDO 이사회에 참여 중인 유럽은 “단일 회원국 차원의 법적 방어력보다 KEDO라는 국제기구를 통한 공동 대응 체계가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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