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박동인 기자] “실손보험 있으시죠. 이번에 들어온 줄기세포 주사가 있는데, 이게 회복에 직방입니다. 본인 부담금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지난주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어깨 통증으로 찾은 서울 모 정형외과 진료실에 앉자마자 병원은 환자의 통증 부위보단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가입 여부부터 확인했다고 한다.
지인에 따르면 병원에서 권한 것은 1회당 200만원을 호가하는 ‘비급여 줄기세포 주사’였다. “도수치료는 횟수 제한도 있고 심사가 까다로워서, 요즘은 이걸로 다들 갈아타는 추세”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들었다는 것.
이 같은 현상은 대한민국 의료 현장의 씁쓸한 단면이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도수치료와 백내장 수술 등 기존의 과잉 진료 항목을 옥죄자 일각에서는 수익성이 높은 비급여 주사와 최신의료기술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는 ‘첨단재생의료’라는 선진 기술처럼 포장되지만 본질은 풍선효과에 따른 또 다른 비급여 확대인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행태가 실손보험 재정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이달 손해보험업계가 집계한 올해 상반기 실손보험 손해율은 119%다. 보험사가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보다 내준 보험금이 더 많아 적자 구간에 진입했다는 뜻이다. 통상 손해율이 100%를 넘기면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
11월은 보험료 인상률을 결정하기 위한 보험사와 당국의 눈치 싸움이 벌어지는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 120%에 육박하는 손해율 수치는 병원 문턱을 한 번도 밟지 않은 선량한 가입자에게 인상 부담이 돌아올 수 있음을 말한다.
문제는 이 패턴이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는 우리의 현실이다. 과거 도수치료가 실손 빼먹기의 주범으로 지목되자 당국은 가이드라인을 강화했다. 그러자 의료계 일부는 법적 테두리가 모호하고 단가가 높은 비급여 주사제로 눈을 돌렸다. 특히 최근 규제가 완화된 세포·유전자 치료 등 첨단재생의료 분야는 실손보험의 새로운 구멍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은 ‘보험사가 내준다’며 환자를 부추기고, 환자는 ‘내 돈 내고 가입한 보험 안 타먹으면 손해’라는 심리로 이에 동조한다. 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 속에 실손보험의 공공성은 무너지고 있다. 첨단 의술이 일부 병원의 매출 증대 수단이자 멀쩡한 보험 가입자들의 지갑을 터는 도구로 전락한 꼴이다.
당국은 늘 한발 늦다. 비급여 항목이 우후죽순 생겨난 뒤에야 실태 조사에 나서고 뒤늦게 심사 기준을 강화한다. 그 사이 이미 수천억원의 보험금이 줄줄 샌다. 비급여 관리에 대한 근본적인 통제 장치 없이 항목별로 두더지 잡기 식 규제만 반복해서는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모호한 비급여 기준을 정비하고 의학적 필요성이 입증되지 않은 고가 시술에 대해서는 실손 보장 범위를 과감히 재설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내년, 내후년에도 이름만 바뀐 제3, 제4의 도수치료를 목격하는 씁쓸함을 겪을 소지가 없지 않다.
모두가 조금씩 나눠 내서 위험에 대비한다는 보험의 본질이 소수의 의료 쇼핑 비용을 대납해주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늪으로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내년 1월 갱신된 보험료 고지서를 받아들고 분통을 터뜨릴 대다수 국민의 박탈감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정부와 의료계, 보험사의 뼈아픈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