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고법, ‘경제 샤리아’ 분쟁으로 일반법원 관할 부정
선급·이행보증 청구 소송 각하…보증금 지급 의무 무효화

[편집자주] 서울와이어는 비즈앤로(Biz&Law) 코너를 통해 한국 기업이 전 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각종 비즈니스 소송을 심도 깊은 취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생소한 해외 법적 용어와 재판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내 국내 산업계가 마주한 글로벌 법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향후 전망까지 예측하고자 합니다.

사진=KB뱅크샤리아 홈페이지 발췌.

[서울와이어=박동인 기자] KB국민은행의 인도네시아 법인인 KB뱅크샤리아(이하 국민은행)가 현지 대형 건설사와의 보증금 분쟁에서 1심의 패배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법원은 국민은행의 지급 의무와 손해배상 책임이 ‘절대적 관할 위반’ 판단에 따라 전면 무효화됐다고 판결했다.

현지시간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고등법원은 국민은행의 패소 판결을 내린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타타물리아 누샨타라 인다(Tatamulia Nusantara Indah, 이하 타타물리아)의 소송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 이슬람 율법에 따른 ‘경제 샤리아’ 관련 분쟁이므로 일반 민사법원이 아닌 종교법원이 심리해야 한다”며 1심 법원의 재판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의 발단은 2022년 2월 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타타물리아는 ‘주노 메인 빌딩스–치카랑(Juno Main Buildings–Cikarang)’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하도급사 인도테크 카르야 만디리(IKM)와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총액은 693억 루피아(약 58억원) 규모였으며, 계약 조건에 따라 IKM은 계약금의 10%에 해당하는 선급금 보증과 5%에 해당하는 이행보증을 은행을 통해 발급해야 했다.

사건은 2022년 2월 타타물리아가 ‘주노 메인 빌딩스–치카랑’ 프로젝트를 발주하면서 시작됐다. 원·하도급 계약(총 693억 루피아·약 58억원)에 따라 하도급사 인도테크 카르야 만디리(IKM)는 국민은행을 통해 선급금 보증과 이행보증을 발급해야 했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은 2022년 3월 22일 두 건의 은행보증을 발급했다. 하나는 선급금 보증 69억3000만 루피아(약 5억8000만원), 다른 하나는 이행보증 34억6500만 루피아(약 3억원)였다. 총 보증 규모는 103억 9500만 루피아였다.

하지만 IKM 측이 자재 조달과 시공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지연을 일으켰고, 이에 타타물리아는 2022년 6월부터 10월까지 세 차례 공식 경고장을 발송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같은 기간 동안 수차례 독촉 공문을 보냈으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2023년 3월 1일 타타물리아는 ‘위반 확인서(Surat Pernyataan Wanprestasi)’를 발송해 IKM의 계약 불이행을 공식화했으며 계약 해지도 통보했다.

IKM과의 계약을 해지한 타타물리아는 국민은행을 상대로 은행보증금을 청구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2023년 6월 12일 선급금 보증 전액 지급을 요구하는 청구서를 제출했으며 은행의 요청에 따라 6월 14일 경고장, 계약 해지 통보서, 위반 확인서 등 보완 서류도 제출했다.

소장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지급을 미루며 추가 자료를 요구했고, 이에 타타물리아는 같은 해 6월 20일과 23일, 9월 6일에도 관련 서류를 재차 제출하며 지급을 촉구했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지급을 이행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고등법원 판결문 1면. 자료=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고등법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고등법원 판결문 1면. 자료=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고등법원

이에 타타물리아는 국민은행뿐 아니라 은행장을 포함한 임원진 전원, 인도네시아 보증기관 잼크린도(Jamkrindo Syariah), 인도네시아 금융감독원(OJK)까지 피고로 지정해 2024년 11월 25일 자카르타 중앙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은행 측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국민은행은 소장에서 “은행은 보증기관에 클레임을 전달했으나 IKM이 이를 승인하지 않은 데다, 원·하도급 간 체결된 계약이 추가 합의를 통해 여러 차례 수정됐다. 이 과정에서 계약 금액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증의 기초가 되는 계약금액이 변경된 이상 청구된 보증금 규모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은행이 일방적으로 보증금을 지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며 “국민은행이 내부 계약 관계상 독자적으로 지급을 결정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강조했다.

8월 27일 1심 법원은 국민은행과 현지 보증기관이 공모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고 타타물리아 측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은행보증은 무조건적 지급 의무를 전제로 하는 계약”이라며 “하도급사의 계약 불이행이 명확히 확인된 상황에서 국민은행이 지급을 거절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국민은행이 103억9500만 루피아(약 8억8000만원)의 은행보증 원금과 연 6%의 지연이자, 비재산적 손해 2억5000만 루피아(약 2100만원)를 타타물리아에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국민은행은 즉각 항소에 나섰다. 국민은행 측은 항소장에서 “이 사건의 은행보증은 샤리아 경제 원리에 기반한 상품이므로, 관련 법률에 따라 일반 법원이 아닌 종교법원의 전속 관할에 속한다”며 “1심 법원이 관할권이 없음에도 재판을 강행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고등법원은 국민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 재판부는 “종교사법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슬람 교도 간의 ‘경제 샤리아’ 분야 사건은 종교법원의 권한”이라며 “샤리아 은행법과 관련된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르면 설령 계약 당사자가 일반 법원에서 분쟁을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하더라도 이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또 “이 사건은 국민은행과 잠크린도라는 샤리아 금융기관이 발행한 보증 업무와 관련된 것이므로 경제 샤리아 사건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자카르타 중앙지방법원은 이 사건을 심리하고 판결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전부 파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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