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게 감동 줄 수 있는 회사가 진정한 1등"
증권가 최초이자 KB 그룹 내 두 번째 여성 CEO
라임 이후 운용감시체계 구축, 리스크관리 강화

국내 증권업계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박정림 사장은 한 대학 강연에서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꾸준히 던지면서 나만의 경쟁력을 키워라.”고 조언했다.  사진=KB증권 제공
국내 증권업계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박정림 사장은 한 대학 강연에서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꾸준히 던지면서 나만의 경쟁력을 키워라.”고 조언했다.  사진=KB증권 제공

[서울와이어 김민수 기자] “여성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근무시간에 얼마나 집중해서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해진 상황이다.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꾸준히 던지면서 나만의 경쟁력을 키워라. 원하는 성과를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

국내 증권업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박정림 KB증권 사장은 2019년 이화여대에서 열린 특강에서 이같이 말했다. 유독 ‘유리천장’이 견고한 금융권에서 박 사장의 CEO 등극은 많은 화재를 모았고, 그만큼 지켜보는 눈도 많았다.

세간의 시선과 사회적 잣대를 박 사장은 실력으로 입증하고 이겨냈다. 그는 “일을 시켰을 때 안 되는 이유는 열 가지도 넘게 들 수 있다. 지시하는 입장에서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하는 직원을 만나면 진이 빠질 수밖에 없다”며 “반대로 ‘한번 해보겠습니다’라며 되든 안 되든 해보려는 사람이 조직에선 가장 아름답다.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조언을 드린다”고 말했다.

‘도전에 있어 스스로의 벽을 허물고 달려드는 긍정적 마인드.’ 최초의 여성 증권 CEO 타이틀을 거머쥔 박 사장을 가장 잘 대변한 문구가 아닌가 싶다.

◆최초의 여성 증권사 CEO 탄생

박 사장은 2019년 1월 KB증권 대표이사로 취임해 김성현 사장과 함께 각자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1986년 체이스맨해튼에 입사해 조흥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삼성화재 자산리스크관리부 부장을 역임했다. 

2004년 시장운영리스크 부장으로 KB국민은행에 합류해 자산관리, 리스크, 여신에 걸쳐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2014년 8월, 신대옥 부행장(2006년) 이후 8년 만에 여성 부행장에 오르면서 시장의 큰 관심을 받았다. 

박 사장은 KB은행 부행장 시절부터 꼼꼼하고 철저한 일처리로 유명했다. 당시에 ‘하늘이 아닌 땅에 기반한 리스크 관리’를 철칙으로 삼았고 은행의 영업정책에 실질적으로 녹아 들어갈 수 있는 리스크 관리를 추구했다고 알려졌다. 

무엇보다 2014년 말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취임한 뒤 실시한 첫 인사에서 절반 이상의 부행장들이 퇴진했을 때에도 자리를 지켰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KB증권 대표이사로 선임된 박 사장은 자산관리(WM), 세일즈앤트레이딩(S&T), 경영관리를 맡아 이끌었다. 일각에선 증권사 근무 경험이 짧다는 점을 약점으로 지적하기도 했지만, KB금융그룹 내에서 이미 자산관리부문을 총괄해왔던 터라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박 사장은 증권가 최초의 여성 CEO며 KB금융그룹에서 김해경 KB신용정보 대표 이후 두 번째 계열사 여성 CEO다. KB증권이 KB금융그룹에서 KB국민은행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큰 계열사이자 업계 5위권의 대형 증권사라는 점에서 당시에도 파격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고객 중심 서비스 집중, 1등 증권사로 나아가자”

WM과 리스크관리 분야에서 전문가로 꼽히는 박 사장은 KB증권 대표이사를 맡고 가장 먼저 기존 PB고객본부와 고객지원본부를 통합해 WM사업본부를 신설했다. WM사업 관련 기획과 지원체계를 일원화해 업무 효율성을 올린다는 전략이다. 

또 디지털 마케팅과 서비스를 담당하던 ‘마블랜드트라이브’(M-able Land Tribe)를 대표이사 직속 조직에서 WM부문 소속으로 바꿔 온·오프라인 채널에서 통합적으로 고객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올해 1월 KB증권 ‘경영전략 공감 콘서트’에 함께한 박 사장은 “고객에게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있는 회사가 진정한 1등 회사라고 생각한다. 우리 고객에게 집착할 정도로 고객중심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1등 증권사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결국, 앞서 진행한 WM의 개편은 고객을 최우선하는 것이 기업을 바로 세우는 길이라는 그의 경영 마인드가 녹아든 행보로 볼 수 있다.

박 사장의 노력은 결과로도 나타났다. 2016년 기준 2.4%에 머물던 WM 부문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9월 나이스신용평가 조사 기준 4.8%로 두 배 성장했다. 

김 사장과 함께 지난해 KB증권 역대 최대실적을 이끌며 연임에 성공한 박 사장은 지난해 말 자산관리 경쟁력 제고를 위한 WM 투자솔루션 제공 강화, 디지털 대응 강화 등에 역점을 둔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기존 WM총괄본부를 고객·채널 전략 중심의 WM영업총괄본부와 WM 투자전략과 상품·서비스 제공 중심의 ‘WM솔루션총괄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이번 개편에서 박 사장은 WM영업총괄본부를 통해 지역본부 중심의 영업채널을 고객군별로 세분화하고 고액자산가 중심의 새로운 영업채널을 압구정 플래그십과 연계해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위기에 더욱 강해지는 ‘슈퍼우먼’

사모펀드 사태 이후 박정림 사장은 운용감시체계를 구축하면서 리스크 관리 강화에 힘썼다. 박 사장은 전사의 선제적 내부통제를 위한 내부 통제혁신부를 신설하고, 리스크심사부를 리스크심사본부로 확대개편하면서 기능을 강화했다. 사진=KB증권 제공
사모펀드 사태 이후 박정림 사장은 운용감시체계를 구축하면서 리스크 관리 강화에 힘썼다. 박 사장은 전사의 선제적 내부통제를 위한 내부 통제혁신부를 신설하고, 리스크심사부를 리스크심사본부로 확대개편하면서 기능을 강화했다. 사진=KB증권 제공

다부진 성격과 꼼꼼한 일처리로 회사 성장을 이끈 박 사장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KB증권을 비롯한 라임펀드 판매사들이 라임자산운용 펀드의 부실을 아는 상태에서 펀드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세 차례에 걸친 논의 끝에 라임펀드를 판매한 전·현직 증권사 대표들을 대상으로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제재안에서 박 사장은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받았다. 당시 유일한 현직 대표인 박 사장은 사전에 통보받은 ‘직무정지’보다 한 단계 낮은 수위가 내려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KB증권이 라임펀드 부실을 알면서도 상품을 판매한 시기가 박 사장의 임기 초반으로 파악되는 점, 피해자 보상 등 사후 조치에 노력을 기울인 점 등을 고려해 징계 수위를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낮지만 확정될 경우 3년 동안 금융권 취업이 제한되는 만큼 연임을 앞둔 박 사장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라임펀드 판매 증권사 CEO에 대한 징계 결정을 유보하면서 최고경영자 제재가 사실상 2022년으로 연기됐고, 이에 박 사장은 지난해 말 연임에 성공했다.

당시 주변의 우려 속에 박 사장은 되레 초연한 분위기로 회사 경영에 집중했다. 금융당국 처분을 기다리면서도 CEO로서 본분에 충실하며 회사를 이끌어 가는 것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 판단한 것이다.

박 사장은 사모펀드 운용감시체계를 구축하면서 리스크 관리 강화에 힘썼다. ‘제2의 라임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발빠르게 나선 것이다. 그는 지난해 전사의 선제적 내부통제를 위한 내부 통제혁신부를 신설하고, 리스크심사부를 리스크심사본부로 확대개편하면서 기능을 강화했다.

◆‘제2의 도약’ 위한 전략 마련 나서

올해 들어 부진한 흐름을 지속하는 증시로 증권사들의 실적은 악화했다. 이에 증권가는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한 사업 다각화 추진에 분주한 모습이다. 박 사장 역시 신성장 동력 마련을 위해 나섰다.

박 사장이 주목한 신수익원은 퇴직연금 사업이다. 퇴직연금시장은 계속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증시 부진의 돌파구가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올해 KB증권 1분기 퇴직금 적립액을 살펴보면 3조4752억원으로 전체 퇴직연금 사업자 가운데 19위, 퇴직연금사업을 하고 있는 증권사들 가운데 7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 가입자가 직접 운용할 수 있는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 퇴직연금의 경우 각각 6000억원대로 규모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박 사장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연금 서비스 제공에 나서며 MZ세대의 연금고객을 끌어모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연금 관련 정보를 비대면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이루다투자일임과 업무 협약을 맺고 이루다투자일임의 ‘든든(DNDN)’ 앱을 통해 연금 제휴 서비스를 오픈했다. 

그는 제휴 서비스를 내며 “비대면 채널을 선호하는 2030세대들이 연금 관련 정보를 편하게 접하면서 스스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며 “앞으로도 연금 서비스가 필요한 다양한 연령대와의 고객 접점 확대를 위해 외부 플랫폼과의 제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산 및 고도화 추진에도 나섰다. 박 사장은 FICC운용본부 내 탄소·에너지금융팀을 신설해 탄소배출권 분야 비즈니스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회사 자체적으로 2030년까지 내부 탄소배출량 42% 감축(2020년 대비)을 목표로 다양한 사내 친환경 캠페인을 추진해 기업문화 내재화를 통한 에너지 절감도 노력하고 있다. 

박 사장은 “KB증권은 사회책임투자 확산과 기업지배구조 투명성·효율성 제고를 통해 ESG 경영 내재화에 힘쓰고 있다”며 “ESG를 선도하는 금융투자회사로서, 투자를 통한 ESG 생태계 확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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