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엔지니어 영업기밀 들고 오포로 이직 의혹

애플의 스마트워치 ‘애플워치’. 사진=애플
애플의 스마트워치 ‘애플워치’. 사진=애플

[서울와이어=황대영 기자] 애플이 애플워치 핵심 건강센서(광용적맥파·PPG 등) 및 제품 로드맵 관련 영업기밀 유출을 이유로 전직 고위 엔지니어와 중국 오포(OPPO), 실리콘밸리 연구조직 이노피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20년 애플워치와 디자인이 흡사한 오포워치를 출시한 오포가 지속적으로 애플 기술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더했다.

현지시간 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북부 지방법원에 따르면 애플은 전 직원인 첸 시(Chen Shi) 박사가 오포·이노피크의 US 리서치센터로 이직하면서 대량의 기밀자료를 몰래 가지고 나갔다며, 영업비밀 침해와 계약 위반으로 소송장을 냈다. 첸 시 박사가 퇴직 직전 회사 내부 공유드라이브에서 수십 건의 자료를 내려받고, 이를 ‘苹果相关(Apple Related)’이라는 폴더 구조 그대로 외장하드로 복제한 뒤 흔적 삭제를 시도했다는 것이 애플의 핵심 주장이다.

소장에서 애플은 건강·피트니스·안전 기능을 위해 “수백만 시간의 엔지니어링과 수억 달러 투자”가 이루어졌음을 강조하고, 그 중 광학센서(PPG) 관련 연구개발이 건강정보 모니터링의 토대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관련 설계문서·내부사양·로드맵은 고도의 영업비밀로 관리돼 왔고, 직원들과 비밀유지·지식재산(IPA)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애플이 추적한 첸 시 박사 퇴사 일지

애플이 제출한 소송장에서 첸 시 박사와 오포 측이 나눈 대화가 증거로 제출됐다. 사진=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
애플이 제출한 소송장에서 첸 시 박사와 오포 측이 나눈 대화가 증거로 제출됐다. 사진=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

이번 소송의 핵심 인물인 첸 시 박사는 2020년 1월부터 올해 6월 26일까지 애플워치 팀의 ‘센서 시스템 아키텍트’로 근무했다. 애플에 따르면 그는 산타클라라 카운티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오포의 미국 오피스에서 센싱기술 개발팀을 이끈다고 적었다. 입사 시점에 비밀유지·IP 계약(IPA)을 체결하고, 정기적으로 보안 의무 안내를 받았다는 점도 애플은 명확히 했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시점과 행위’다. 애플 포렌식 검토에 따르면 지난 6월 23일 밤 9시51분부터 24일 새벽 0시37분 사이 내부 Box 공유드라이브에서 약 63개 파일을 내려받고, 일부를 ‘苹果相关(Apple Related)’ 폴더에 보관했다는 주장이다. 6월 한 달 동안 다운로드 분량이 1~5월 전체와 맞먹는 수준으로 ‘비정상적 증가’가 포착됐다.

애플은 하루 뒤인 6월 25일 새벽 1시09분 경, 첸 시 박사가 ‘Apple Related’ 폴더를 외장 USB 하드로 복제했고, USB 내 폴더 구조가 맥북 내 폴더 구조와 동일해 ‘통째 복제’ 정황이 확인됐다고 적시했다. 복제 파일 경로에는 중국어로 ‘苹果相关’이 그대로 쓰였고, 하위 폴더에는 애플워치의 핵심 기밀 문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첸 시 박사가 복제 뒤에는 흔적 삭제를 시도했다고 애플은 주장했다. 6월 16일 ‘맥북 초기화 방법’, 6월 23일 ‘공유드라이브 파일 열람 흔적을 남기는가’ 같은 검색기록이 확인됐으며, 첸 시 박사가 회사 맥북에서 ‘Apple Related’ 폴더를 삭제했다는 것이다.

애플 측이 주장한 유출된 문건은 PPG 센서 연구개발(R&D) 문서, 올해 2월 사내 올핸즈 발표자료(센서·로드맵 포함), 애플 실리콘 엔지니어링 그룹(SEG) 등 칩 관련 기술자료, 각종 모델링 기법 관련 학술·내부자료 등이다. 이는 ‘미래 제품 로드맵’과 ‘알고리즘·설계·아키텍처’가 결합된 극비자료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구성이며, 향후 ‘비밀성·가치성·합리적 보호조치’ 요건 입증에 바로 연결된다.

또 다른 소송 핵심 축은 ‘대인관계 경로’다. 첸 시 박사가 아직 논의가 본격화된 시점부터 동료 엔지니어들과 1대1 미팅을 대거 잡아 정보를 모으고 “나중에 공유하겠다”고 메시지로 밝힌 정황도 드러났다.

애플은 실제 첸 시 박사가 6월 한 달에만 33건의 1대1 미팅을 예약해, 그해 월 평균 7건 수준 대비 급증했다는 수치를 제시했다. 애플은 이 미팅들이 첸  박사의 기존 직무범위를 벗어난 ‘미래기술’ 주제였고, 전보(轉補)·협업 탐색 등을 명분으로 ‘실제 목적은 정보 취득’이었다고 규정했다.

공동 피고 오포·이노피크…“브랜드 혼용·실리콘밸리 R&D 거점”

애플이 오포와 이노피크의 운영 실체가 동일하다고 주장하며 제출한 증거. 사진=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
애플이 오포와 이노피크의 운영 실체가 동일하다고 주장하며 제출한 증거. 사진=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

오포는 중국 둥관시(동관)에 본사를 둔 회사다. 애플은 오포가 미국 연구센터를 ‘OPPO’와 ‘InnoPeak’ 브랜드를 혼용해 운영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건물 간판과 출입문 표식, 사내 로고, 직원 복장 등에서 ‘OPPO’ 표식이 두드러지며, 대외 홍보·채용 콘텐츠에서도 두 브랜드를 혼용한다는 서술을 덧붙였다.

이는 오포와 이노피크의 ‘법인격은 달라도 운영 실체는 동일’하다는 구도 설정으로, 공동불법행위·대리책임 연결고리를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관할권과 관련해 애플은 오포가 이 지구 내에서 의도적으로 영업활동을 했고, 그에 비추어 특별관할(specific jurisdiction)도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애플 측은 오포 측 핵심 인사(젠 저우명)와 첸 시 박사 사이 메시지를 상세히 인용했다. 오포 측이 “PPG에 익숙한가, 광학 센싱도 중요하다”는 취지로 운을 떼자, 첸 시 박사가 “PPG 원리와 광학 지식은 알고, 우리(애플 내) 대그룹이 PPG를 담당한다. 최대한 많이 공부하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어 오포 측이 ‘아주 좋아요(awesome)’ 이모지로 화답했고, 이후 HR 공유까지 이어졌다는 서술이다.

또 다른 메시지 대화에서는 첸 시 박사가 내부 자료 수집과 1대1 미팅 계획을 밝히자, 오포 측이 ‘네(alright)’와 ‘OK’ 이모지로 응답한 정황도 적시돼 있다. 이 대목은 ‘오포가 최소한 묵시적으로 승인했다’는 논지에 힘을 보탠다. 특히 애플은 첸 시 박사가 이직 과정의 타임라인이 오퍼 수락(6/7)→대량 다운로드(6/23~24)→USB 복제(6/25)→퇴사(6/26)→합류 예정(6/30)으로 사실상 기밀유출로 바라봤다.

이번 소송의 1차 쟁점은 DTSA(연방 영업비밀보호법) 및 캘리포니아 주법 기반 계약 위반 성립 요건 등이다. 애플은 소장에 ‘어떤 파일이 영업비밀인지’ 경로·내용·내부 접근통제(Box 권한)·문서 성격(알고리즘·로드맵·SEG 기술자료)·미공개 프로젝트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특정성’을 높였다. 또한 복제 경로(맥북→USB), 폴더 구조 동일성, 삭제 시도 및 검색기록까지 제시해 ‘부정취득·사용 우려’의 퍼즐을 맞췄다.

향후 소송은 증거보전명령·예비금지명령(PI) 공방이 가열될 공산이 크다. 애플은 이메일·로그·메타데이터 등 전 범위 증거보전을 요구했고, 내부자료 사용권 부존재 확인, 이익환수 및 징벌배상까지 청구했다. 이어 포렌식 감정(다운로드 로그·USB 해시·삭제 시점)과 메시지 증거의 맥락(번역, 이모지의 의미·의사표시성), 오포-이노피크 운영실체(상표·간판·채용·홍보의 혼용) 입증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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