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정부, 자료 제출 미흡으로 불필요한 소송 불러
美 법원 "전력 사용량만으로 특정성 입증 안 돼"
산업부는 "2차 승소" 강조…판결문은 온도 차
기업 불확실성 지속, 부담은 여전히 현대제철 몫

[편집자주] 서울와이어는 비즈앤로(Biz&Law) 코너를 통해 한국 기업이 전 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각종 비즈니스 소송을 심도 깊은 취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생소한 해외 법적 용어와 재판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내 국내 산업계가 마주한 글로벌 법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향후 전망까지 예측하고자 합니다.

현대제철 포항공장. 사진=현대제철
현대제철 포항공장. 사진=현대제철

[서울와이어=최찬우 기자] 정부가 현대제철의 미국 상계관세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자평했지만, 판결문을 들여다보면 그 해석엔 오차가 존재한다. 핵심 쟁점이었던 상계관세 철회는 아직도 불확실하고, 이번 소송의 발단 역시 한국 정부의 미흡한 대응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 정부의 부실 대응이 불러온 국제 소송

지난 2022년 미국 상무부는 현대제철의 수출 제품에 대한 상계관세를 검토하며 한국 정부에 ‘전력 보조금 프로그램(Electricity Program)’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핵심은 2021년 한국전력공사의 비용 구조였다. 상무부는 총 세 차례에 걸쳐 자료 제출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20년 자료만 제출했고, 나머지에 대해선 확답도 주지 못했다.

이에 미국 상무부는 ‘다른 가용 사실(facts otherwise available)’ 조항을 적용해 현대제철에 최대 1.08%의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이 결정 직후 현대제철은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에 소송을 제기했고, 뒤늦게 한국 정부도 제3자 원고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정부가 요청받은 자료만 성실히 제출했더라면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라는 비판이 산업계에서 나온다.

◆ 1심 판결은 환송…결론은 아니다

판결문 1면. 사진=미국 국제무역법원
판결문 1면. 사진=미국 국제무역법원

2023년 12월 20일, 미국 국제무역법원은 현대제철의 소송에 대해 상무부의 상계관세 부과 논리에 충분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철강산업을 포함한 일부 산업이 전력 보조금을 과도하게 받았다고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상무부의 결정을 환송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국 정부가 세 차례에 걸친 자료 제출 요청을 이행하지 않은 사실도 명확히 언급했다. 상무부가 네 번째 요청 없이 판단을 내린 것도 정당하다고 판시하며, 정부의 책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1심 판결은 정부나 현대제철이 실질적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상무부의 설명이 불충분해 재검토를 요구한 ‘절차적 환송’에 그쳤다.

◆ 2차 판결도 “설명 불충분” 반복

현지시간 지난 12일 내려진 2차 판결에서도 미국 법원은 상무부의 보완 설명이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상무부는 환송 이후 철강과 석유화학 등 일부 산업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전력 보조금의 특정성을 입증하려 했지만, 법원은 해당 그룹핑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켈리 판사는 “보조금 프로그램이 사용량에 비례해 혜택을 주도록 설계돼 있다면, 대규모 전력 사용 산업이 더 많은 보조금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지 특정성의 증거가 아니다”고 판시했다. 다시 말해 상무부는 산업 간 혜택의 불균형이 ‘공정한 비율’을 넘었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한 것이다. 법원은 이에 상무부에 다시 설명을 요구하며 환송을 반복했다.

◆ 정부 발표와 실제 판결 간의 간극

산업통상자원부가 배포한 보도참고자료.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산업통상자원부가 배포한 보도참고자료.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이처럼 법원이 두 차례에 걸쳐 상무부의 논리 부족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일 2차 판결을 두고 “한(韓) 정부, 일반후판 특정성 관련 美 국제무역법원에서 2차 승소하다”는 제목의 보도참고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에선 “한국 정부의 논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사례”로 해석하며, 한국의 입장이 강화됐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판결문 어디에도 한국 정부에 면책적 판단이 내려졌다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법원은 한국 정부의 미제출 사실을 명확히 인정하고, 상무부가 가용 사실을 적용한 조치를 정당하다고 평가했다. 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상무부의 특정성 입증 논리일 뿐, 한국 정부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의 해석은 왜곡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 기업이 떠안은 소송의 대가

이번 사건은 한국 정부의 미흡한 행정 대응이 글로벌 기업을 국제 소송에 내몰고, 그 부담을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를 드러낸다. 현대제철은 미국 수출에 대한 상계관세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2년 넘게 소송을 이어왔고, 여전히 판결의 최종 종착지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특히 상무부가 재차 보완 자료를 제출하면서도 특정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현대제철은 관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반대로 입증에 성공한다면 상계관세는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불확실성이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에도, 정부는 이번 판결을 성과로 포장하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1차 판결 후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세 차례에 걸친 상무부 요청에도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당시 자료 미제출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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