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DDR4 생산축소에 오히려 가격 급증
최신 DDR5보다 가격 비싸지는 현상 발생
데이터센터 투자 급증도 DDR4 수요 견인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점진적으로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던 더블데이터레이트(DDR)4를 계속해서 생산할 방침이다. 업계는 출시 12년이 넘은 DDR4가 최신 세대인 DDR5에 밀려 올해 완전히 대체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글로벌 반도체기업이 DDR4를 포기할 분위기가 형성되자 오히려 희소성이 증가해 수요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과 SK하이닉스는 DDR4의 가격이 높아짐에 따라 내년까지 생산을 연장한다. 양사는 당초 올해까지만 DDR4를 제조할 예정이었지만, 방향을 틀었다. 고객사에게는 이미 이 같은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레거시(구형) D램을 담당하는 중국 우시 공장에 DDR4 생산량을 더 늘리기로 했다.
여기서 DDR이란 D램 규격 중 하나로, PC와 서버에 가장 범용적으로 많이 쓰이며 뒤에 붙는 숫자는 세대를 뜻한다. DDR4는 2013년 출시돼 2022년 DDR5가 등장하기 전까지 전 세계 D램 시장에서 주력으로 쓰였다.
하지만 DDR5의 성능이 월등하고 가격도 점차 안정되자 올해를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반도체 업이 DDR4의 생산을 줄일 것으로 예상됐다. 메모리 ‘빅3’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모두 올 들어 DDR4 생산 축소 계획을 알리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D램 매출에서 DDR4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했으나 올해 그 비중을 10% 미만으로 줄이고 DDR5, 고대역폭 메모리(HBM), 저전력(LP)DDR5X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주력한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DDR4는 중국 메모리 후발주자들이 저가 경쟁력을 앞세워 대량 생산에 돌입해 경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메모리 빅3가 전부 HBM에 총력을 기울이자 D램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하며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HBM은 통상 D램의 3배 정도 웨이퍼를 사용하기 때문에 생산 계획이 커질수록 D램 공급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 최대 메모리사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정부의 첨단 반도체 제조 보조금을 받기 위해 DDR5 전환을 가속화하고 DDR4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히자, 공급 절벽에 몰린 DDR4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DDR4 수요처가 기업의 예상보다 많았던 것이다.
결국 최근 DDR4 가격이 DDR5보다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DDR4 ‘16GB 2Gx8’ 가격은 지난 6월 DDR5 ‘16GB 2GxB’ 가격을 넘어선 후 3개월째 가격 역전 현상을 이어가고 있다.
6월 각각 7.01달러(DDR4)와 5.85달러(DDR5)였던 것이 8월에는 8.59달러(DDR4)와 6.17달러(DDR5)로 가격 차이가 더 벌어졌다. DDR5가 DDR4보다 전송 속도가 약 2배 빠르고 전력효율도 30%가 높음에도 DDR4 가격이 더 비싼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반도체업체들이 DDR4를 재개해 수익성을 유지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특히 구형 D램의 경우 설비 투자 비용이 회계상 끝났기 때문에 원가가 낮아져 신형보다 수익성이 높다. 반면 신형을 생산하는 라인은 아직 감가상각이 진행 중이라 매출이 발생할 때마다 설비비용 일부가 원가에 포함된다.
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급증하면서 서버용 DDR4 수요가 남아 있는 것도 원인이다. 데이터센터에는 첨단 그래픽 처리장치(GPU) 뿐만 아니라 컴퓨터 구동에 필요한 일반적인 서버용 D램도 필요한데 AI 수요 폭증에 힘입어 함께 상승한 것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DDR4는 오랜 기간 쓰인 만큼 호환성이 좋고 불량률이 낮다”며 “실사용 환경에서는 DDR4 고클럭 메모리가 오히려 DDR5보다 유리할 때가 있어 수요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는 이러한 현상이 오래 가진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 DDR2도 DDR3 전환 과정에서 비슷한 현상이 있었지만 결국 1년 내 가격이 제자리를 찾았다. SK하이닉스도 지난 7월 진행한 콘퍼런스콜에서 “최근의 DDR4 가격 급등은 공급 부족 우려에 따른 일시적 수요 쏠림”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