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시장 지위 바탕 가격 인상 단행
빅테크, TSMC 없이는 AI 칩 생산 불가
삼성·SK에 메모리 값 인하 압박 가능성

TSMC 미국 애리조나 공장. 사진=TSMC
TSMC 미국 애리조나 공장. 사진=TSMC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슈퍼을’ TSMC가 첨단 공정에 대해 최대 10%에 달하는 대대적인 가격 인상에 나선다. 엔비디아, 애플, AMD 등 TSMC 주요 고객사는 수익 방어를 위해 공급망을 대상으로 가격 인하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돼 국내 반도체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대만 TSMC는 최근 주요 고객사들에 내년부터 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첨단 미세 공정의 가격을 인상한다고 통보했다. 인상 폭은 5%에서 최대 10% 수준으로 알려졌다. 반면 생산비 증가 부담이 덜한 구형 공정은 가격을 인하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TSMC는 막강한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고가 정책을 펼치고 있다. TSMC의 2㎚ 최첨단 공정은 웨이퍼(반도체 원판) 한 장당 3만달러(약 4200만원)에 달하는데, 다른 파운드리가 통상 2만달러선인 것에 비하면 비싼 가격이다. 이번 가격 인상이 실행되면 이보다 더 뛰는 셈이다. 

TSMC가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은 미국 등지 신공장 건설 및 운영비 증가, 관세에 따른 지정학적 불안정성 확대가 주된 이유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총 650억달러(약 90조원)를 투자해 짓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주(州) 사업장 구축 비용이 거대한 압박으로 작용했다. 

이에 대해 TSMC는 지난 7월 실적 발표에서 “올해부터 해외 공장으로 인해 전체 총이익률이 2~3% 희석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3~4%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매출에서 원가를 뺀 이익률(매출총이익률)을 53% 이상으로 유지해온 TSMC로서는 수익성 방어를 위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전 세계 빅테크들의 발주가 TSMC에 몰리며 가격 협상력이 막강한 점도 가격 인상을 단행할 수 있는 배경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TSMC의 올 2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70.2%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위 삼성전자(7.3%)와의 격차를 62.9%포인트로 벌리며 강력한 지위를 재확인했다. TSMC는 인공지능(AI)칩 생산의 필수 공정인 첨단 패키징(후공정) 기술에서 강점을 갖고 있어 빅테크의 신뢰도가 높아 당장 대체할 수 있는 업체가 없다.

TSMC의 첨단 공정 가격이 오르면 엔비디아, 애플, 구글 등 주요 빅테크들의 AI칩 생산 비용도 함께 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빅테크들이 원가 절감 차원에서 패키징에 필요한 각종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공급 단가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통상 빅테크들은 AI칩을 설계한 뒤, 메모리 기업들로부터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핵심 부품을 받아 TSMC의 패키징을 통해 완제품을 만든다. 대표적으로 SK하이닉스도 엔비디아 본사가 아닌 TSMC에 HBM을 보내고, TSMC가 최종적으로 GPU를 조립한다. 

내년부터 본격 펼쳐질 6세대 HBM인 ‘HBM4’ 시대에서 TSMC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돼 당분간 우월적 지위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HBM4는 고객 맞춤형 설계·제조가 핵심이기 때문에 TSMC의 패키징 기술 비중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HBM4 가격은 TSMC가 정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TSMC가 가격 인상에 나서면 높아진 생산 비용은 결국 공급망에 전가될 것”며 “빅테크들이 한국 메모리 기업들에게 제조 원가를 낮추라는 식으로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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