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의 방한에 증시 즉각 반응…‘한국형 AI 동맹’ 현실화 기대감 고조
HBM3E·HBM4·로보틱스까지 협력 시계 빨라져…삼성·현대차 차세대 모멘텀 부각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약 15년 만에 방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 회동’을 갖자 국내 증시가 즉각 반응했다. 반도체 대형주를 비롯해 AI 서버·자율주행·로보틱스 등 전방 산업 밸류체인 전반으로 매수세가 확산됐다.
황 CEO가 경주 APEC CEO 서밋 특별 세션과 미디어 간담회에서 ‘한국 기업과의 구체적 협력’을 예고한 만큼,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축으로 한 ‘한국형 AI 동맹’의 형성과 그 파급력이 당분간 시장을 주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황 CEO는 인천국제공항 도착 직후 서울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두 총수와 만나 반도체·자율주행·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로보틱스 등 광범위한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 그는 엔비디아의 초소형 AI 슈퍼컴퓨터 ‘DGX 스파크’와 위스키를 선물하며 친밀한 메시지를 연출했고, 코엑스 ‘지포스’ 국내 출시 25주년 행사 무대에 함께 오르며 상징성을 더했다.
황 CEO는 “한국 국민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모두 기뻐할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으며,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첨단 칩 생산 가능성에 대해서는 “삼성전자의 기술력에 강한 믿음이 있다”고 강조했다.

◆‘HBM 동맹’ 부상…삼성·현대차, 엔비디아와 AI 공급망 재편 가속
업계의 관심은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HBM(고대역폭 메모리) 동맹에 쏠린다. 삼성전자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HBM3E 12단 제품을 전 고객사 대상으로 양산·판매 중이라고 밝히고, 차세대 HBM4 샘플을 엔비디아에 전달했다고 공개했다.
엔비디아는 한국 주요 대기업과 AI 가속기 공급계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HBM과 파운드리 역량이 동시에 주목받고 있으며, LPDDR5X·GDDR7 등 AI 서버 및 추론용 메모리와 NV링크 퓨전 생태계 참여 등 ‘메모리+플랫폼’ 결합 스토리가 시장의 프리미엄을 자극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의 접점도 뚜렷하다. 현대차는 올해 1월 엔비디아와 로봇·자율주행·스마트팩토리 등 AI 기반 기술개발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으며, 로보틱스 플랫폼 ‘아이작(Isaac)’과 생성형 AI 개발 툴을 도입해 공장 자동화와 로봇 학습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대규모 데이터센터 훈련을 위한 GPU 도입 확대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동차를 넘어 ‘이동 데이터’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 기업의 존재감이 한층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번 방한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AI 산업 구조 전환의 신호로 해석된다. GTC 2025 기조연설에서 엔비디아가 공개한 GB200 기반 NVL72(일체형 랙) 청사진은 AI 인프라의 비용 대비 효율을 10배 끌어올리겠다는 선언이었다.
박승진 하나증권 연구원은 “상위 글로벌 CSP(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의 AI 설비투자가 2025년 말 4430억달러, 2027년 6320억달러로 확대될 것”이라며 “엔비디아는 GB200 기반 NVL72를 통해 달러당·전력당 성능을 10배 향상시키고 TCO(총소유비용)를 낮추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Omniverse DSX 블루프린트를 통해 초대형 AI 팩토리의 설계·운영 모델을 제시한 만큼, 메모리와 가속기·시스템 전반의 업사이클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AI 동맹’ 현실화 시계 빨라진다…삼성·현대차, 차세대 모멘텀 주목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AI 모멘텀’ 지속력을 높게 평가한다. 김동연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15만원으로 상향하고, 2026년 영업이익을 82조원으로 전망했다. 그는 “HBM3E 12단이 엔비디아 최종 검증을 마치며 출하 비중을 늘리고, HBM4에서는 1c D램·4나노 로직을 적용해 속도와 전력 효율을 개선할 것”이라며 “2026년 HBM 출하가 전년 대비 최대 4배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3분기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이 물량 증가와 가격 상승에 힘입어 이익이 급증했으며, 4분기에도 DS가 실적 개선을 주도할 것”이라며 “HBM 시장의 가시적 개선이 전사 실적 회복의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차에 대해서는 메리츠증권이 관세 변수에도 실적 하방 경직성이 확보돼 있으며 배당수익률 4~5% 방어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김준성 연구원은 “현대차–엔비디아 협력은 GPU 구매를 넘어 이동 데이터 확보를 위한 고성능 추론 컴퓨터 탑재, 스마트카 판매 확대, 2025년 기술 공개 및 2028년 양산 로드맵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향후 6개월 내 기술 진전이 확인되면 밸류에이션 반등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박승진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극단적 코디자인 전략으로 인프라를 ‘하나의 랙(rack)’으로 최적화해 효율을 10배 높이고, 양자–GPU 결합과 6G 공동 개발, 로보틱스용 디지털 트윈까지 전방위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며 “엔비디아 칩은 여전히 ‘새로운 원유, 금’으로 불릴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메모리, 파운드리, 모빌리티 전반의 가치사슬에서 동시에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시장의 초점은 하나로 모인다. ‘깜짝 발표’의 내용이 무엇이든, 한국 기업이 글로벌 AI 인프라와 모빌리티의 대전환 흐름 속에서 얼마나 깊숙이, 얼마나 오래 탑승하느냐다.
삼성전자는 HBM3E 양산, HBM4 진입, 파운드리 신뢰 회복 등 세 가지 관문과 현대차는 데이터·추론·로봇으로 이어지는 AI 모빌리티 가치사슬 완성이라는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황 CEO가 예고한 ‘기쁜 소식’이 협력의 범위와 규모, 시점을 어디까지 구체화하느냐에 따라 한국 증시의 AI·로봇 산업이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