톈안먼 시위 강경 진압 뒤 덩샤오핑 후계자로 낙점
자본가 계급도 공산당 입당 허용… 시장경제 발전에 기여
김대중 전 대통령과 수차례 회담… 한국과 인연도 깊어
![장쩌민 전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https://cdn.seoulwire.com/news/photo/202212/488035_693201_4542.jpg)
[서울와이어 최석범 기자]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장 전 주석은 30일 낮 12시 13분(현지시간) 상하이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던 중 별세했다. 백혈병으로 인해 장기 기능이 쇠약해져 응급처치했으나 이날 숨을 거뒀다.
장 전 주석은 1926년 장쑤성 양저우에서 태어났다. 1947년 상하이교통대학 전기학과 재학 중 공산당에 입당했다. 졸업 후에는 창춘·우한·베이징·상하이 등에서 공업과 전기 분야 공직 경력을 쌓았다.
국무원 제1기계공업부 부장조리(차관보)와 상해전기과학연구부소장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으나, 문화대혁명 당시 자본주의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당과 공직에서 추방됐다.
이후 복권된 그는 1979년 덩샤오핑의 집권과 함께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1980년 국가수출입관리위원회 부주임을 거쳐 1982년 전자공업부 제1부부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해 정부 각료의 반열에 들었다.
1985년에는 상하이 시장 겸 부서기가 됐다가 곧 서기로 승진했다. 이 때 외국 자본을 유치해 상하이를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시켰다. 한편으로는 미인대회를 부르주아적 퇴폐행위라며 폐지하는 등 사회주의와 조화를 이루는 경제 발전을 추구했다.
특히 상하이 내 톈안먼 시위를 강경 진압하면서 덩샤오핑의 눈에 들었고, 덩샤오핑의 지지로 13기 4중전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겸 총서기에 선출돼 당권을 장악했다.
그는 중국을 최대 개발도상국 반열에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방이 수세기에 걸쳐 이룬 시장경제를 급속히 발전시켰고 동시에 정치, 경제, 외교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도 받는다.
특히 자본가 계급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하기도 했다. 그의 '3개 대표 이론'은 중국 공산당의 헌법 격인 당장에 정식으로 포함됐다. 3개 대표 이론은 ▲ 중국 선진사회의 생산력 발전 요구를 대표하고 ▲ 선진문화의 창달을 대표하며 ▲ 최대 인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명제다.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재임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여러 차례 회담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후진타오 전 주석과 별도로 조전을 보내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후진타오에게 2002년과 2003년 각각 당 총서기와 국가 주석 자리를 물려 주며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2005년 3월까지 국가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유지하며 정계 은퇴를 하지 않고 막후 실력자 역할을 했다.
상하이방으로 불리는 그의 측근들을 권력 요직에 포진시키고, 국가안전회의라는 고문 조직을 설립해 막후에서 정치에 개입하는 등 권력 유지 활동을 활발히 실행했다. 은퇴 후에도 자신과 관련된 간행물을 지속해서 출판하며 '출판 정치'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