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46%→20% 합의, 환적 관세는 40% 유지
한국, 베트남 중간재 납품 많아 환적 판정 '고위험'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 사진=삼성전자 링크드인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기업의 대규모 생산공장이 위치한 베트남이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합의하며 관세율을 대폭 낮췄다. 

이에 불확실성은 다소 해소됐지만, 베트남 환적 관세는 40%가 확정됐기 때문에 중간재 납품 규모가 큰 한국 기업들이 환적 판정 고위험군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8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베트남에 공장을 둔 기업들은 베트남-미국 간 무역 협상 결과에 따른 경영 전략 수립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 4일 베트남은 아시아 국가 최초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무역 협상을 타결하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20%의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라며 “제3국에서 베트남을 통해 환적하는 제품에는 40%의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미국이 공언했던 베트남 관세는 46%에 달했는데, 합의를 통해 20%로 낮췄다. 다만 환적 제품에 대한 40% 관세는 그대로 유지됐다.

환적 상품이란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 베트남을 거쳐 미국으로 운송되는 상품이나 외국산 부품이 일정 수준 이상 포함된 상품을 일컫는다. 다만 이번 합의에서 정확히 어떤 품목이 환적 상품에 해당하는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목적이 크다. 국경을 맞댄 베트남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심화하자 중국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베트남을 우회하는 방식을 택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는 이에 강경히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 고문은 중국 기술·자본으로 운영되는 베트남 공장의 미국 수출품을 환적으로 간주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기본 관세와 환적 관세는 한국에도 불똥이 튈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은 중국, 멕시코 등과 함께 한국의 중요한 대미 수출 거점 중 한 곳인 동시에 중간재를 보내는 규모도 크기 때문이다. 

베트남 박닌성과 타이응우옌성에서 대규모 스마트폰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의 경우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의 60%가 이곳에서 나온다. 특히 미국향(向) 물량은 베트남산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포함한 일부 첨단 부품은 한국에서 생산돼 베트남으로 보내진다. 환적 목록에 포함될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특히 스마트폰의 경우 아시아에 생산 체계를 갖춘 애플 때문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아직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부과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도 관세 부과를 가능성 있는 변수로 여기고 주시하고 있다. 

이 경우, 스마트폰 관세에 더해 환적 관세까지 중복되는 험난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LG전자도 베트남 생산 제품의 상당 부분을 미국으로 보내는 만큼 관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LG전자는 하이퐁 공장의 냉장고 생산 설비 가동률을 낮추고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또 LG전자는 베트남 관세 문제가 지속될 경우, 신공장 설립 등 투자를 전면 조정하는 방향도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이 베트남에 수출하는 품목 중에서 중간재가 50% 이상에 달하는 점도 불확실성을 더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베트남 수출 중 반도체가 180억4000만달러로 전체의 31%를 차지했다. 이어 평판디스플레이·센서가 112억3000만달러로 19%를 차지하는 등 중간재로 여겨지는 물품이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미국 간 관세 협상이 타결되며 최악은 면했지만, 추후 공표될 환적 기준이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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