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후 현대차, 14만원에 공장 매각
‘2년 내 공장 바이백’ 조항 존재… 올해 종료
러시아 종전 의사 없어… 재진출 어려울 수도

현대차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 공장. 사진=현대차
현대차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 공장. 사진=현대차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현대차그룹이 2023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단돈 14만원에 러시아에 넘긴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 대해 ‘2년 내 바이백’ 조항 발동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가 바이백 조항 마지노선이기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러시아 복귀를 염두하고 계열사에 시장조사를 지시했다. 다만 러-우 전쟁이 종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아 재진출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다.

11일 한국경제TV의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주 전 계열사에 글로벌 사업장들의 현황을 점검하고 건의 사항을 취합했다. 여기에는 러시아 사업장도 포함됐다. 현대차는 “매년 진행되는 통상적 업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러시아 복귀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2023년 12월 러시아 기업 아트파이낸스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완성차 조립공장인 ‘HMMR(Hyundai Mortor Manufacturing Russia)’을 포함한 러시아 지분 100%를 당시 한화 14만원 수준인 1만루블에 매각하며 현지에서 철수했다.

이 공장은 2010년 준공해 2011년부터 가동에 돌입했고 연 최대 생산능력은 20만대 수준이다. 현지 전략 소형차인 현대차 ‘솔라리스’, ‘크레타’, 기아 ‘리오’ 등이 큰 인기를 끌며 핵심 생산 거점으로 활약했다. 공장 가동 이래 십년 넘게 작업자들이 상시 특근을 할 정도로 차가 잘 팔리자 현대차그룹은 1조원 이상 추가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러-우 전쟁이 발발해 서방의 제재가 들어가고 부품 수급 문제, 루블 환율 변동, 판매 급감 등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각 절차를 밟았다. 이 과정에서 수천억원의 장부 가치를 지닌 현대차 공장이 사실상 상징적 가격인 1만루블에 팔리자 러시아가 ‘강탈’ 또는 ‘몰수’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다만 계약서에 현대차는 추후 전쟁이 종식될 경우를 고려해 2년 내 공장을 다시 들일 수 있는 바이백 조건을 걸었다. 이 옵션은 올해 12월까지 행사가 가능하다. 

그간 현대차는 러시아 사업 재개 의지를 꾸준히 드러냈다. 지난해 8월에는 제네시스를 포함한 자동차, 자동차 부품, 액세서리 관련 17건 이상의 상표등록을 진행했고, 올해 5월에도 ‘iX10’ 등 3건의 상표를 등록했다.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은 여전히 러시아에 법인을 두고 제한적으로 운영 중이다. 

그러나 현대차의 바람대로 바이백 조항이 제대로 지켜질 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바이백 조건에 따르면 공장을 재매입하려면 과거 가격이 아닌 현재 가격으로 사야해 현대차의 부담이 크다.

공장을 팔 당시 장부 가격은 약 2873억원이었는데, 이 가격에 그대로 다시 사면 1만루블에 판매했던 현대차 입장에서는 고스란히 모든 비용을 떠안는 구조가 된다. 감가상각과 휴면에 따른 기계 노후 등을 고려했을 때 재매입가가 더 낮아질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라 현대차는 실사를 통해 정확한 가치 판단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미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멘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만나 러-우 전쟁 종식 회담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15일 미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엘멘도프-리처드슨 합동기지에서 만나 러-우 전쟁 종식 회담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러-우 전쟁의 종식이 요원한 점도 변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피스 메이커’(Peace Maker)를 자청하며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종전을 압박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7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위치한 정부청사를 순항미사일로 피격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정부는 “정치·외교적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하고 안보를 보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지만, 상호주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며 전쟁을 이어갈 것을 분명히 했다. 

이에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이어지면 현대차가 다시 비싼 돈을 들여 공장을 바이백 해도 생산이 제한돼 실익이 전혀 없는 상황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올해 안에 바이백 조항을 아얘 실행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러시아 공장을 바이백하는 것은 현지 당국과 기업의 협조 없이는 사실상 어렵다”며 “당시 러시아 정부의 압박으로 인해 ‘긴급 철수’ 형식으로 급하게 공장을 넘기고 왔기 때문에 ‘형식적 바이백 조항’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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