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유럽 연구소 설립, 현지 특화 전략
미국 관세 여파로 유럽 시장 중요성↑

현대자동차그룹 유럽기술센터 스퀘어 캠퍼스. 사진=현대차
현대자동차그룹 유럽기술센터 스퀘어 캠퍼스. 사진=현대차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현대자동차가 독일에 신규 연구개발(R&D) 센터를 이달 개소하며 유럽 공략 기반을 마련했다. 현대차는 이 센터를 중심으로 현지 특화 차량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미국 고율 관세 여파로 악화된 수익성을 유럽 시장에서 상쇄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석한다.

1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6일(현지시간) 독일 뤼셀스하임에 유럽기술연구소(HMETC) 신규 R&D센터 ‘스퀘어 캠퍼스(Square Campus)’의 운영을 시작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1억5000만유로(약 2520억원)가 투입됐다. 2003년 HMETC 설립 이후 최대 규모의 투자다.

새 R&D센터는 약 2만5000㎡ 부지에 ▲전기차·하이브리드·내연기관 등 모든 파워트레인 실험이 가능한 첨단 시험실 ▲유럽 최대 수준의 NVH(소음, 진동, 불쾌함) 챔버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및 차량 소프트웨어 무선통신업데이트(OTA), 사이버보안 연구공간 ▲전기차 충전 기술 실험실 등을 갖췄다. 

이곳에서 현대차는 유럽 고객 특유의 주행 감성, 핸들링, 차체 제어, 노면 반응 등을 정밀하게 연구해 ‘유럽 소비자 맞춤형’ 차량 개발을 집중 추진한다.

타이론 존슨 현대차·기아 유럽기술연구소장은 “이번 투자는 유럽 시장에 대한 우리의 장기적 헌신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새로운 연구 인프라를 통해 브랜드 경쟁력과 시장 점유율 확대를 동시에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유럽 고객의 감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반영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스퀘어 캠퍼스가 기술 독립성과 유연성을 확보하는 중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연구소 확장이 단순한 기술 투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대(對)한국산 자동차 및 부품 고율 관세 조치로 타격을 입은 현대차가 수익성 방어를 위해 해외 시장 ‘제2축’인 유럽에서 해법을 찾는 전략적 판단이 깔렸다는 것이다.

특히 전동화 차량과 관련해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자 유럽을 새 성장 거점으로 본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반(反)전기차 정책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축소로 세제 혜택이 사라지면서, 중대형 전기차 판매가 흔들린다. 

반면 유럽은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정책을 유지하며 전기차 전환을 가속한다. 유럽에서 전동화 차량 판매량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점도 현대차의 계획과 맞물린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올해 1~9월 유럽연합(EU) 내 신규 등록 전기차는 130만대, 점유율은 16.1%로 전년 대비 3.1%포인트 상승했다. 독일·벨기에·네덜란드 등 주요국의 전기차 판매는 올 들어 38% 이상 늘었다.

현대차 콘셉트 3. 사진=현대차
현대차 콘셉트 3. 사진=현대차

현대차는 이런 흐름에 발맞춰 유럽형 전기차 라인업을 확충 중이다. 내년부터 튀르키예 공장에서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아이오닉 3’를 현지 생산해 물류비·관세 부담을 낮출 계획이다. 기아도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EV3’·‘EV4’ 등 전기 SUV를 생산, 수요 변화에 즉각 대응하는 체제를 갖췄다.

또 지난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5’에 현대차그룹이 4년 만에 참가해 유럽형 소형 전기차 콘셉트카 ‘콘셉트 쓰리(Concept 3)’를 공개했다. 이 콘셉트카는 아이오닉 브랜드의 첫 소형 전기차로, 유럽기술센터가 개발 초기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성이 높은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유럽 영향력 확대도 나섰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유럽 판매가 2660대 수준에 머물렀으나, 올해는 기존 독일·영국·스위스 외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네덜란드로 진출국을 확대할 계획이다.

제네시스의 고성능·첨단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 프로그램을 공식 출범하고, 프랑스 르망 내구레이스에도 참가한다. 이 르망 내구레이스는 유럽 최고 권위의 레이싱 대회로, 이곳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제네시스가 갈고 닦아온 기술력을 보수적인 유럽 소비자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계획이다.

한편 현대차그룹의 유럽 투자 행보는 미국 통상 리스크와도 직결됐다. 미국 정부가 올해 4월부터 부과한 25% 고율 관세는 현대차·기아의 수익성에 직격탄이 됐다. 2분기에만 약 1조6000억원의 손실을 입었으며, 3분기에는 2조원을 넘겼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달 경북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미 양국이 투자 패키지를 타결함에 따라 관세는 15% 수준으로 곧 낮아질 예정이지만, 여전히 기존 무관세 대비 급격히 높아진 수치이기 때문에 현대차의 유럽 공략은 앞으로도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규제상 전기차를 팔 수밖에 없어 전동화 전략을 적극 추진하는 현대차에 우호적 환경”이라며 “다만 BYD가 EU에서 올해 8월까지 지난해 대비 판매량 2.5배 급증하는 등 중국 전기차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어 경쟁을 위해서는 현지화에 공을 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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