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패턴·리스크 예측…‘스마트 경영’으로 효율 극대화
데이터·AI 결합으로 수익창출…플랫폼 기업 전환 가속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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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와이어=박동인 기자] 최근 국내 카드산업은 ‘AI 전환기’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결제 서비스에 국한됐던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소비자 분석, 신용평가, 마케팅 자동화, 플랫폼 수출까지 확장되며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AI)은 카드 비즈니스 전략의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단순 결제 인프라 제공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 예측과 자동화가 결합된 ‘지능형 금융 플랫폼’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 소비 분석에서 리스크 예측까지…AI가 주도하는 ‘스마트 경영’

카드업계의 AI 도입은 가장 먼저 소비 분석과 리스크 관리 영역에서 위력을 드러내고 있다. 그간 마케터와 심사 담당자의 경험에 의존해 운영되던 업무들이 이제는 AI 모델의 실시간 분석과 예측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결제 데이터가 방대할수록 AI의 학습 효과도 커지기 때문에 국내 주요 카드사들은 AI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우선 소비 분석 측면에서 카드사들은 AI를 활용해 고객의 결제 패턴·선호 카테고리·이용 채널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얼마나 썼는가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맥락에서 썼는가를 분석해 개인별로 어떤 혜택과 상품을 제안해야 반응률이 높을지 계산하는 것이다.

삼성카드는 이 흐름을 가장 먼저 실험한 카드사 중 하나다. 삼성카드는 일찍이 AI 전담 조직을 꾸리고 2020년 업계 최초로 AI 기반 실시간 데이터 큐레이션 서비스를 선보였다. 고객의 웹·앱 이용 행태와 결제 이력을 딥러닝으로 분석해 각 개인에게 지금 가장 유의미한 혜택과 서비스를 홈페이지·앱·챗봇 화면에 실시간으로 띄워주는 방식이다. 이 서비스는 글로벌 IT 어워드와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사례로 소개될 만큼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KB국민카드는 에임스(AIMs)라는 전용 AI 마케팅 시스템을 구축해 캠페인 전 과정을 자동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고객 타겟 선정, 혜택 구성, 발송 타이밍까지 AI가 계산하고 실행을 도와주면서 캠페인 반응률이 크게 개선되고 실행 소요 기간도 단축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100여개 카드 상품을 비교·분석해 개인 소비 성향에 가장 유리한 카드를 찾아주는 AI 추천 엔진 ‘AIRe’까지 더해지면서 KB국민카드는 내가 어떤 카드를 써야 유리한지를 AI가 먼저 알려주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신한카드가 개발한 AI 기반 상권분석 솔루션. 사진=신한카드

현대카드는 역시자체 AI 플랫폼 ‘유니버스(UNIVERSE)’를 통해 초개인화 전략을 한 단계 더 밀어붙이고 있다. 유니버스는 고객의 취향, 결제 패턴, 라이프스타일 정보를 통합 분석해 마케터가 직접 설계한 것보다 최대 약 6배까지 높은 성과를 내는 마케팅 시나리오를 자동으로 생성해준다. 이 플랫폼은 어떤 고객에게 어떤 메시지와 혜택을 어떤 순서로 노출해야 하는지 ‘여정’ 단위로 설계해주기 때문에 카드사의 마케팅 조직 자체가 데이터 드리븐(data-driven) 방식으로 재편되는 효과를 낳고 있다.

뿐만 아니라 AI는 신용 리스크와 부정사용 관리 영역에서도 효율을 보이고 있다. 그간 룰 기반의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FDS)는 새로운 사기 수법이 등장할 때마다 규칙을 사람이 하나씩 추가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머신러닝 기반 AI 모델은 방대한 결제 로그와 외부 데이터를 함께 학습해 사람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패턴까지 포착하고 위험도를 점수화한다.

특히 신한카드는 AI 기반 개인신용 리스크 모델을 국제 학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통신사와 손잡고 통신·결제 데이터를 융합한 보이스피싱 탐지 체계를 구축했다. 의심스러운 통화 이력이나 악성 앱 설치 기록이 감지되면 해당 고객의 카드 거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피싱이 의심되는 결제가 발생할 경우 즉시 차단·경고하는 식이다. 삼성카드는 핀테크와의 협업을 통해 기존 신용평가 시스템에 AI 애드온 모형을 더해 같은 리스크 기준에서 대손 비용을 줄이고 리스크는 낮지만 이용 가능성이 높은 고객군을 새로 발굴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KB국민카드는 AI 기반 FDS를 해외 거래에서 국내 전체 거래로 확대하고 사고 데이터를 매월 자동 재학습하는 구조를 적용해 모델 성능을 유지·개선하고 있다. 피싱·파밍·스미싱 등 신종 사기는 패턴이 빠르게 변하는데, AI가 새로운 사고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학습하면서 탐지 정확도와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그 결과 한 해 수백억원 규모의 잠재 피해를 막는 효과를 보고 있다.

◆ 수익모델·조직·문화 전환…‘AI 기업’으로 진화하는 카드사

카드사들은 기존의 수수료·이자 중심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AI 기술력을 바탕으로 플랫폼 수익화에 나서고 있다. 결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축적된 빅데이터와 AI 역량을 활용해 데이터 분석 서비스, AI 기반 신용평가 솔루션, 마케팅 자동화 플랫폼 등의 신규 사업 모델을 발굴 중이다.

신한카드는 데이터연구소를 중심으로 외부 기관과 협업을 강화하며 공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고 KB국민카드는 데이터 컨설팅과 B2B 맞춤형 신용평가 모델 공급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고 있다. 롯데·BC카드 등도 그룹사 데이터를 활용한 라이프스타일 제안 등으로 AI 기반 부가 서비스를 확장 중이다.

또한 조직·문화 측면에서도 AI를 중심 전환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올해 조직개편을 통해 ‘A&D(AI & Data) 연구소’를 신설해 약 70여 명의 AI 전문 인력을 확보했으며, KB국민카드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AI 실습 교육 등 다양한 AI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전사적인 디지털 리터러시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이미지=챗GPT
이미지=챗GPT

하지만 이러한 전환 흐름에도 과제는 남아 있다. 카드사 최고경영자(CEO) 대상 설문에서 전문인력 부족(35.4%)과 수익모델 연계 미흡(28.6%)이 주요 걸림돌로 지적된 바 있다. AI 모델의 설명가능성(Explainable AI), 데이터 활용의 투명성, 알고리즘 편향성 등의 윤리적·신뢰적 요소도 경영 리스크로 분류되고 있다. 따라서 카드사들은 기술 도입과 함께 거버넌스 체계 구축, 외부 데이터 협업 구조 마련, 내부 AI 윤리 교육 강화 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경영진 인식 역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주요 카드사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 최근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상당수가 ‘디지털 경쟁력이 곧 카드사의 미래 경쟁력’이라고 답했으며 특히 AI와 인간의 협업 시너지에 대한 기대가 높게 나타났다. 카드사들은 상담·심사·영업 전 영역에 AI 도입을 준비하고 있으며 AI를 활용한 글로벌 데이터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있다. AI가 더 이상 부수적인 효율화 도구가 아니라 경영 전략의 전제 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AI는 카드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이 아닌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변곡점이라고 분석한다. 신용카드가 데이터·AI 기반 금융 서비스 플랫폼으로 확장되면서 카드사는 금융과 기술의 경계를 허무는 ‘테크파이낸스 기업’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카드업계는 AI를 중심으로 한 ‘업(業)의 재정의’에 돌입한 모양새다. 초개인화 마케팅, 리스크 예측, 플랫폼 수출, 인재 육성 등 전 영역에서 AI가 경영의 중심축으로 자리하면서 디지털 전환 속도는 한층 빨라지고 있다. 전통적 수익모델의 한계를 넘어 기술로 미래를 설계하는 '카드 2.0시대'를 맞아 카드사들의 실험이 한국 금융산업의 새로운 경쟁력을 결정짓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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