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중심 통화정책 운용 바람직"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4.7% 전망
1900조 달하는 가계부채 고려해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서울와이어 DB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서울와이어 DB

[서울와이어 주해승 기자] "가파른 물가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계속되는 고물가 경고에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 인상)이 단행될 것이란 시장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만 한국은 가계부채 비중이 높아 급격한 금리 인상에 취약한 만큼 신중한 스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가상승 압력에 커지는 빅스텝 가능성

올 들어 물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올해 1~5월 중 물가 상승률은 4.3%로 지난달에는 13년 만에 처음으로 5%대를 상회하기도 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상반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서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7%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정점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는 분석과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대외 변수도 국내 물가 상승을 부추키고 있다.

과도한 물가 상승을 적기에 억제하지 못하면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된다. 기대인플레이션까지 높아질 경우 물가가 임금상승을 자극해 또다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은 이미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빅스텝’이 단행되느냐 마느냐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현재와 같이 물가 오름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가파른 물가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외 물가상승압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으면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며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 물가가 임금을 자극하고 이는 다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임금-물가 간 상호작용(feedback)이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총재는 올해 4월 첫 기자간담회에서도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가 모두 우려되지만, 지금까지는 물가를 더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달 19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성장 모멘텀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도 물가 안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절한 속도로 조정하고, 이를 통해 가계부채 연착륙 등 금융안정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입만 열면 '고물가'를 우려하는 이 총재가 빅스텝을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커진다. 이와 함께 미국 등 주요국들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는 점도 한은으로선 부담이다. 미 연준의 지난주 '자이언트 스텝'으로 현재 미 정책금리(1.5~1.75%) 상단과 한국 기준금리(1.75%)는 같아졌다. 미국이 6·7월 연달아 빅스텝을 밟으면 한미 금리가 역전된다.

현재 국내 가계부채는 현재 1900조원에 육박하사진=서울와이어 DB
현재 국내 가계부채는 현재 1900조원에 육박하사진=서울와이어 DB

◆가계부채 상황 고려 신중한 스텝 필요 

다만 이 총재는 '빅스텝'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하기는 어렵고 경제 상황과 환율, 가계 이자부담 등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이 이처럼 금리인상 속도와 폭을 놓고 고민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보다 높은 국내 가계부채 때문이다. 현재 국내 가계부채는 1900조원에 육박하는데, 가계부채 비중이 높을수록 급격한 금리 인상에 취약하다.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1860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04.3%를 기록 중이다. 전문가들은 기준금리가 연내 2.5%까지 높아지고, 대출 금리도 연 8%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과도한 이자부담으로 이어져 원리금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는 가계가 늘어나면 금융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 부실 채권이 대량으로 양산되거나, 소비 위축에 의한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물가에 이자 부담, 원리금 상환 부담까지 늘어나게 되면 소비는 계속 위축되고 기업들은 투자를 하지 않아 경기가 둔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한미 간 금리 격차 축소나 고물가 대응에만 집중해 가계부채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만큼, 그 어느때보다 신중한 스텝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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