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열리자 메모리 패권 무게추 HBM으로 기울어
대응 늦은 삼성전자, 복합적 이유로 경쟁사에 열세구도
HBM4에서 기술 경쟁력 증명 절실… TSMC와 손잡나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아성이 흔들린다. 첨단 반도체는 인공지능(AI)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중심으로 체질 전환이 시급하고, 파운드리는 만성 적자 탈출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 또 전통적 강세 분야였던 레거시(범용) D램은 중국의 급부상으로 거센 추격을 받는 위치에 놓였다. 삼성전자가 격변기 태풍을 어떤 전략으로 헤쳐 나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편집자주]

[서울와이어 천성윤 기자]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대응이 경쟁사보다 다소 늦으며, 핵심 품목목인 HBM에서 경쟁사에 비해 한걸음 뒤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차세대 HBM이자 제작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HBM4’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반전의 계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HBM 마라톤에서 뒤처진 이유
오픈AI의 ‘챗-GPT’와 같은 거대 언어 모델(LLM)을 중심으로 AI가 본격적으로 일상에 진입하자 AI를 구동하는 핵심 반도체인 HBM 전쟁도 함께 개막했다.
현재 세계에서 첨단 HBM을 대량으로 양산할 수 있는 업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미국)이 손꼽히는데 삼파전에서 가장 먼저 우위를 점한 기업은 SK하이닉스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는 그래픽 처리장치(GPU) 및 AI 가속기 시장의 선두 주자 엔비디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실상 독점으로 HBM을 공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1분기 매출 기준 D램 점유율에서 삼성전자를 33년 만에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1위를 차지했다.
HBM은 D램을 적층해 만들기 때문에 HBM 판매량이 높아지면 D램 출하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HBM 판매량이 전체 D램 점유율을 결정할 정도로 메모리 패권 무게추가 급격히 HBM으로 기운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중국향(向) 제품용 HBM을 승인받아 납품하고 있지만, 고사양 제품용 HBM 납품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먼저 엔비디아 GPU 대부분은 TSMC(대만)의 후공정(패키징) 기술인 ‘CoWoS’ 기술을 사용하는데 삼성전자의 HBM은 이를 적용한 패키징 과정에서 수율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가 HBM 개발 초창기부터 CoWoS 호환성을 맞춰 엔비디아와 공동 개발해 온 것과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또 현세대 HBM인 ‘HBM3E’에서는 삼성전자가 발열과 전력 소비 측면에서 SK하이닉스보다 열세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엔비디아는 열 관리와 전력 효율을 매우 중요시 하고 요구 사항도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HBM을 GPU와 가까운 곳에 장착하는 구조상 발열이 심하면 성능 저하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HBM3E 발열 문제는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김재춘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은 한국마이크로전자 및 패키지장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HBM3E 납품이 늦어지는 것과 관련해 “일각에서 추측하는 발열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HBM 주도권 다툼에서 밀린 것을 기술력보다는 시점의 차이가 결정적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일찍이 HBM 개발에 뛰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삼성전자는 HBM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반도체를 개발·양산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구개발(R&D)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항간의 인식처럼 삼성전자가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며 “실제로 36GB(기가바이트) HBM3E 12단은 업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HBM3E 공급망 합류 시점을 이르면 오는 6월로 예상하기도 하지만 이미 많이 늦은 시점이라 공급량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HBM3E 다음 세대인 HBM4를 정조준하고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HBM4에 역량 총집결… 주도권 중대 기점
삼성전자는 HBM4 세대부터는 상황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의 HBM4 개발은 순항하고 있다. 회사는 HBM4를 10나노미터급 6세대(1c) D램 공정을 기반으로 제작하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개발과 시험을 거쳐 대량 양산에 돌입하는 시점을 올 연말이나 내년 초로 예상한다. 평택 제4캠퍼스(P4)에서 생산될 전망으로, 지난해 12월 일찍이 HBM4 전용 양산 시설 투자를 단행했다.
류형근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HBM4 시장 진입은 스케줄상 크게 늦은 것은 아니다”며 “추가적인 개발 지연 리스크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마이크론도 HBM4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1c보다 한 단계 낮은 ‘1b 나노’ 공정으로 HBM4를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 D램 공정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선폭이 미세해져 성능과 전력 소비 효율이 높아지나, 제작 난이도가 높아진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경쟁사보다 더욱 복잡한 방식을 택해 기술 승부수를 건 것으로 분석된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1c 나노 공정은 많은 스텝과 낮은 난이도의 새로운 버전으로 재개발돼, 6월까지 40% 수율(완성품 비율)을 달성하고 양산 준비를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큰 문제 없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최근 업계 최초로 HBM4 개발에 성공해 샘플을 고객사에 전달한 것이 알려져 이번에도 삼성전자가 늦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1b 공정보다 더 진보된 기술인 1c 공정 HBM4의 양산에 성공하면 여태까지의 열세를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 삼성전자는 HBM4의 성공을 위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의 직접 경쟁사인 TSMC와 협력하는 결단도 내렸다. HBM 생산 핵심 설비인 ‘베이스 다이’ 제작을 위해서다.
HBM3E까지는 베이스 다이를 자체 제작할 수 있었지만 HBM4부터는 공정 난이도가 급상승해 파운드리와 협력이 필수다. 이에 엔비디아와 밀접한 협력관계인 TSMC와 손을 잡아 HBM4 개발 초기부터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사양에 맞춘다는 것이다.
이전 세대 HBM에서 엔비디아와 불협화음을 내버려 공급이 장기간 지연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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