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 정체·설비 노후화·인력 고령화…산업 재편해야

[서울와이어=서동민 기자]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국내 제조업의 위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며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전면적인 산업 재편 없이는 10년 후 상당 부분 퇴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일본과의 데이터 협력 등 실용적 경제 연대의 필요성을 거론하며 '한일 경제공동체' 구상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최 회장은 지난 17일 경주에서 열린 '대한상의 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0년간 산업정책은 제자리걸음이었고, 제조시설은 작아지고 노후화됐다"며 "우리가 다시 제조업을 일으키지 못하면 상당 부분 퇴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AI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며 "중국보다 AI 속도가 늦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데이터 교환 등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시대에는 더 이상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며 "대한민국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 한일 경제공동체 역시 지금 검토해야 할 새로운 옵션 중 하나"라고 말했다.
최 회장의 위기의식은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니다. 실제 여러 지표가 지난 10년 동안 한국 제조업이 제자리에 머물거나 후퇴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의 GDP 비중은 2015년 33.8%에서 2024년 현재 26% 수준으로 하락했다. 독일이 27~28%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인 경쟁력 약화가 뚜렷하다.
제조업 생산액도 2021년 4630억달러에서 2023년 4160억달러로 2년 만에 470억달러 이상 줄었다. 이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함께 주력 산업의 성장 한계, 투자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생산성 측면에서도 정체 흐름이 이어진다. 총요소생산성(TFP) 증가율은 연 0.4% 내외로, 독일(1.2%)과 미국(1.6%) 대비 낮은 수준이다. 기술 혁신과 공정 고도화 속도가 글로벌 경쟁국에 비해 다소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비 노후화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중견 제조업체의 생산 설비 중 10년 이상 된 비중은 평균 52%를 넘는다. 이는 주요 선진국보다 교체 주기가 긴 편이며, 생산 효율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 다수는 스마트팩토리 전환을 위한 투자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인력 구조도 변화했다. 제조업 종사자 평균 연령은 42.5세를 넘었고 50세 이상이 전체의 약 30%에 달한다.
일본은 정부 주도로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을 본격화했다. AI 기반 정밀 가공, 생산 자동화, 데이터 표준화 등 주요 기술이 빠르게 확산됐다. 민관 협력 체계를 기반으로 스마트팩토리 인프라도 점차 체계적으로 구축 중이다.
반면 한국은 기업 간 데이터 공유와 협업 구조가 취약하고 AI 기술과 생산 현장의 연계도 제한적이다. 폐쇄적인 데이터 생태계, 복잡한 규제 환경, 기술 격차 등이 전환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최 회장은 "데이터가 적은 우리는 일본과 손잡고 교환하는 수밖에 없다"며 "AI로 제조업을 살리지 못하면 제조 강국으로 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