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지지율 하락세 속 공공요금 인상 '진퇴양난'
에너지 공기업, 채무 불이행 등 초유의 사태 예고
산업부 "물가·국제 에너지가격 검토해 결정할 것"

정부가 올해 2분기 전기, 가스요금 인상을 주저하는 가운데 한국전력공사(한전)과 가스공사의 재무 부담이 급격히 가중되고 있다. 사진=서울와이어 DB 
정부가 올해 2분기 전기, 가스요금 인상을 주저하는 가운데 한국전력공사(한전)과 가스공사의 재무 부담이 급격히 가중되고 있다. 사진=서울와이어 DB 

[서울와이어 정현호 기자] 올해 2분기 전기와 가스요금 인상 논의가 지체되는 사이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의 적자난이 심화되고 있다.

이대로면 이들 에너지 공기업의 채무 불이행 사태가 불가피할 전망이지만, 정부는 여전히 인상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올 2분기 전기·가스요금 발표를 재차 보류하고 물가에 미칠 전반적인 영향, 국제 에너지 가격 추이 등을 재검토해 추후 인상 시기와 폭을 결정하기로 했다. 

최근 국정 지지율 하락세 속에서 대통령실의 요금 인상 속도조절론은 이같은 방침에 영향을 미친 모양새다. 요금 결정에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도 확실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인상 논의가 제자리걸음인 가운데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정 부담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실제 요금 조정 지연에 따라 한전의 경우 사채 발행 한도를 초과하는 등 전력 공급망 혼란이 불가피하고, 가스공사의 미수금은 올해 말 13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전의 전기요금을 통한 원가 회수율은 약 7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장 발전사에 지급하는 전력 구입 대금도 매달 4회 사채를 발행해 조달하는 등 요금 인상이 더 지체될 경우 한전채 발행 한도가 초과돼 채권시장이 타격을 맞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미 채권 총 발행액에서 한전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4.8%(37조2000억원)에 달했고, 올해는 2.6%(5조3000억원)를 차지했다. 한전의 경영이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조달금리가 상승해 한전채에 쏠리는 현상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스공사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업계 안팎에선 지난해 말까지 누적된 8조6000억원의 원료비 미수금이 올해 말 12조9000억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에 요금을 통한 원가 회수율이 62.4%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미수금에 대한 이자비용 등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나날이 불어나는 적자에 에너지 공기업의 불안감이 크지만 당장 산업부는 지난 2일 예정됐던 에너지공기업 경영현황 긴급 점검회의를 시작 1시간 전에 돌연 취소했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재정 건전화를 위해 추가적인 인건비, 경비 지출 경감에 나서는 등 자구책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동시에 정치권을 상대로 요금인상 요인 등에 대한 설득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도 이처럼 악화하는 한전·가스공사의 재무 상황을 고려해 국내 물가와 글로벌 에너지 가격 변동 흐름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른 시일 내 2분기 전기·가스요금 조정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전기요금 인상 지연은 국민의 불안감도 증대시킬 것”이라며 “정치권 이해관계로 인상을 지속 억누르면 전력산업 전체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결과적으로 국민 세금으로 에너지공기업의 적자를 메꿔야 하는 상황까지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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