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이재명 정부의 금융 개혁 시계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권의 이자 장사 비판과 상생금융 요구, 금융감독 체계 개편, 세제 강화 논쟁까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이에 정책 명분과 시장 현실 사이의 간극을 짚고,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정부가 은행 등 금융권을 향해 ‘이자장사’ 비판과 함께 상생ㆍ생산적 금융전환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고금리 서민대출 질타와 예대마진 축소 압박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은행들은 수익 모델을 재편하고 자본·공공성의 균형을 맞추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은행들 ‘이자장사’ 정조준…“주담대 대신 투자로 성장하라”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24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놀이에 매달릴 순 없다”며 금융권에 ‘생산적 금융’ 전환을 직접 주문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는 서민금융상품 금리가 15.9%라는 보고에 “너무 잔인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이자율 인하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고신용자에게는 저이자·장기대출, 저신용자에게는 고리·단기대출이 제공되는 현실을 그는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이라고 규정했다. 서민대출이 여전히 서민을 옥죄는 구조라는 비판을 직접 언급하며 금융당국에 ‘상생금융’ 체제를 마련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금융회사 이익 일부를 출연해 공동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 같은 비판의 배경에는 실적과 보상 구조가 자리한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그룹은 올 상반기 10조3254억원의 순이익으로 반기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같은 기간 순이자이익은 21조924억원으로 전년 대비 2818억원 늘었다. 주담대 잔액도 7월 기준 602조4818억원으로 연초 대비 24조원 넘게 증가했다. 반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커졌고, 4대 금융지주 반기 평균 연봉은 처음으로 1억원을 넘어서면서 대통령의 비판이 힘을 얻었다.

대통령 발언 직후 금융위원회는 업권별 협회장을 긴급 소집했다. 권대영 부위원장은 “생산적 투자를 가로막는 법·제도·규제·회계·감독 관행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TF 구성을 예고했다. ‘부동산 담보 편중’ 관행에서 벗어나도록 제도 환경을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정책 수단도 꺼냈다. 8월 말 위험가중자산(RWA) 개선안 발표에 이어 9월에는 세부안 마무리 단계로, 주담대 위험가중치는 높이고 기업대출은 낮추는 방향이다. 현행 평균 RWA는 주담대 18.9%, 기업대출 57.9%로 기업대출이 불리한 구조다.
은행권도 호흡을 맞췄다. KB국민은행은 국가전략산업 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신한은행은 성장성 높은 기업대출을 강화했다. 하나은행은 소호·기업 특판을 확대하고, 우리은행은 공급망금융 플랫폼 가입사를 넓히기로 했다. NH농협은행은 보증기관과 협약을 맺어 총 4조5000억원 규모의 지역경제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주요 은행 CFO들은 “하반기 기업대출 자산 성장을 적극 추진하고, 가계대출 증가율은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의 압박과 은행권 대응은 결국 ‘규범과 유인’의 정합성에 달려 있다. 규칙(RWA·감독·회계)을 바꾸려는 정부와 세제·자본규제 인센티브를 요구하는 시장 간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은행들의 실질적 행보가 성과를 가를 전망이다.

◆은행들에게 던져진 숙제들…국민성장펀드·배드뱅크·교육세·RWA까지
정부의 상생금융 주문은 곧바로 재정적·규제적 부담 논의로 이어졌다. AI·반도체·바이오 등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산업은행 모펀드에 금융회사·연기금·민간이 매칭하는 ‘국민성장펀드’가 핵심 자금축이다. 목표 규모는 100조원 이상으로, 은행권에서는 연 20~30조원 출자 가능성이 거론되며 연간 수천억원대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배드뱅크 출연도 과제다. 정부는 장기 연체채권을 캠코 산하 SPC가 매입·소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총 8000억원 재원 중 절반을 민간 금융권 출연으로 조달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은행권은 카드·대부업 비중이 더 큰 채권에 과도한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세제 측면의 부담도 커진다. 세제개편안은 금융·보험사의 수익금액 1조원 초과분에 교육세율을 0.5%에서 1.0%로 상향한다. 초대형사 위주 적용이라지만, 업계는 가산금리 반영을 통한 소비자 금리 전가 가능성을 지적한다. 기재부는 시행령에서 서민금융 이자수익 과세 제외를 검토 중이다.
국제 규제 이행도 겹친다. 바젤Ⅲ로 내부등급법 최저한도가 내년 60%→65%로 상향돼 BIS 비율 방어가 어려워진다. 정부는 주담대 위험가중치 하한을 25%로 올리는 대신 기업대출은 낮춰 자본을 생산적 분야로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자본관리 관점에서 안전자산 위주의 주담대 확대는 정부의 ‘주담대 의존 축소’ 기조와 충돌한다. 밸류업 정책에 따른 주주환원 확대 요구까지 겹치며, 국민성장펀드·배드뱅크 출연, 교육세 인상 속 내부유보를 늘리기도 쉽지 않다.
영업환경도 녹록지 않다. 6·27 대책 이후 주담대 한도·총량 관리가 강화됐고, 홍콩 H지수 ELS 불완전판매 관련 제재 리스크가 진행 중이다. 과징금 산정 기준이 판매액 기준으로 확정될 경우 조(兆) 단위 부담 우려도 있다.
예대금리차는 다시 확대 추세다. 7월 기준 5대 은행 가계대출 예대금리차는 1.41~1.54%포인트로, 1년 전보다 1%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예금금리는 빠르게 낮아지지만 대출금리 하락은 제한돼 격차가 고착되는 모습이다. 이는 정부의 견제와 정책 변수 속에서도 마진 방어가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은행권의 숙제는 자본·수익·공공성의 균형이다. 내년 RWA 상향, 정책 출연, 세부담 증대 속에서도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주주환원과 ‘생산적 금융’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느냐가 향후 성적표를 가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