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조직개편안을 통해 금융위원회를 금융감독위원회로 전환하고 감독·소비자보호 기능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금융권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조직개편안을 통해 금융위원회를 금융감독위원회로 전환하고 감독·소비자보호 기능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금융권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정부가 지난 8일 확정한 조직개편안을 통해 금융위원회를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전환하고 감독·소비자보호 기능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금융권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책은행·금융공기업 수장들의 임기만료가 줄줄이 겹치며 인사 시계가 멈췄지만, 산업은행장에 내부 출신 인사가 내정되면서 뒤늦게 속도가 붙을지 관심이 쏠린다.

1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번 조직개편으로 금융정책 기능은 새로 출범하는 재정경제부로 이관된다. 2008년 이후 유지돼 온 금융위·금감원 이원 체제가 사실상 재편되는 것이다. 제도 시행은 2026년 1월2일로 예정돼 있으나, 제도 변화와 무관하게 금융당국 내부와 국책은행·금융공기업 곳곳에서는 이미 인사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새 금감위 산하에는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가 설치되고, 금융감독원 내 소비자보호처는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독립한다. 감독·검사 권한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은 재정경제부·금감위·금감원·금소원 등 네 개 창구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변곡점 맞은 산업은행...타 금융공공기관장 인선 시사점은

금융위원회가 9일 박상진 전 준법감시인 임명을 제청했고, 10일 내정 사실이 공식화됐다. 산업은행 출범 71년 만의 첫 내부 승진 수장이다. 강석훈 전 회장이 6월 임기를 마친 뒤 김복규 수석부행장이 대행 체제로 이끌던 조직은 새 수장을 맞게 됐다.

박 내정자는 기업 구조조정과 금융법에 정통한 인물로 꼽힌다. 석유화학·철강·이차전지 등 산업 구조조정, HMM 민영화 재추진, KDB생명 매각, 50조원 규모 첨단전략산업기금 집행, 본점 부산 이전 갈등 이후 조직 안정화 등 굵직한 과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AI와 반도체, 바이오, 방산, 로봇 등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상진 산은 회장 내정을 시작으로 금융공공기관 수장 인선이 다시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최원목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 김성태 IBK기업은행 행장,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 원장. 사진=각 기관 제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최원목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 김성태 IBK기업은행 행장,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 원장. 사진=각 기관 제공

비워지는 금융 기관장 자리, 누가 지휘봉 잡나

우선 신용보증기금은 최원목 이사장이 지난달 28일 임기를 마쳤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가동 중이지만 금융위원장 인사 절차가 남아 있어 공백이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 사례를 감안하면 후임 확정 전까지 최 이사장이 직을 유지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정부가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의 가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된다.

예금보험공사는 유재훈 사장이 오는 11월10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예보 사장은 전통적으로 기재부·금융당국 출신이 맡아온 자리다. 예금보험한도 상향 모니터링,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선제적 부실 관리 등 굵직한 과제가 대기 중인 만큼, 정책과 시장 이해를 두루 갖춘 인물이 다시 기용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최근 내부 출신 약진 기류가 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IBK기업은행은 김성태 행장이 내년 1월2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올해 들어 부당대출 등 금융사고가 잇따르며 내부통제 책임론이 불거져 연임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반면 상반기 순이익 호조와 상생금융 성과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해, 연임 여부는 재발 방지책의 실효성과 경영진 책임 강화 수준이 관건으로 꼽힌다.

서민금융진흥원은 이재연 원장이 올해 1월 임기 만료 후 직을 유지 중이고, 기술보증기금은 김종호 이사장이 지난해 11월 임기 종료 이후 유임 상태다. 기보는 K-TOP 기술평가 플랫폼 공개와 해외 거점 확장 성과를 냈지만, 차기 이사장 인선이 지연되면 조직 혁신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 반면 캠코는 정정훈 사장이 5월 취임하며 연속성을 확보했다.

정책금융의 또 다른 축인 수출입은행 역시 수장이 공석이다. 윤희성 전 행장이 지난 7월26일 임기를 마친 뒤 안종혁 수석부행장이 대행 체제를 맡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산업은행 회장 인선이 마무리된 만큼 수출입은행장 내정도 조만간 뒤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수은은 1976년 발족 이후 22명의 행장이 거쳐갔고, 직전까지 윤 전 행장이 첫 내부 출신 수장으로 재임했다. 산업은행 사례와 맞물려 이번에도 내부 출신 행장 선임 가능성에 기대가 모이고 있다.

이 밖에도 금융결제원(박종석, 8월)·신용정보협회(나성린, 9월)·IBK기업은행(김성태, 내년 1월)·한국신용정보원(최유삼, 내년 1월)·한국예탁결제원(이순호, 내년 3월) 등은 이미 공석이거나 임기 만료가 임박했다. 여신금융협회(정완규, 10월)·보험개발원(허창언, 11월)·금융투자협회(서유석, 12월)·보험연구원(안철경, 12월)도 연내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어, 후임 인선 절차가 조만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안해결 리더-정부 동행 기관장 주목

이번 인사는 단순한 자리 교체가 아니다. 관료 출신은 정책 연계와 대외 네트워크에서, 내부 출신은 조직 이해와 실행력에서 강점을 지닌다. 정부조직 개편 이후 첫 대형 인사에서 내부 승진이 선택된 만큼, 남은 기관장 인선에서도 각 기관의 현안에 맞춘 맞춤형 기용이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정치적 변수도 남아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설치와 관련된 후속 입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며, 여야 대치 구도에 따라 처리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국책은행과 금융공기업의 대행 체제가 길어질 수도, 반대로 내부 승진 중심의 속도전이 펼쳐질 수도 있다.

산업은행장 내정이 신호탄이 된 만큼, 신보·예보·기업은행·수은 등 남은 기관의 후임 인선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가 금융당국 개편 이후 제도 안착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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