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정책이 시장신뢰 훼손
현장에선 정책 속도 조절와 수용성 균형 요구
취임 100일, 이재명 정부의 금융 개혁 시계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권의 이자 장사 비판과 상생금융 요구, 금융감독 체계 개편, 세제 강화 논쟁까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이에 정책 명분과 시장 현실 사이의 간극을 짚고,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정부가 금융당국 조직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고 세제 정상화 카드를 동시에 꺼내 들었다.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을 나누는 ‘금융당국 4분할 체제’가 확정된 데 이어, 법인세와 주식 양도세를 강화하는 세제개편안이 발표되면서 금융권과 자본시장이 잇따라 출렁이고 있다. 규제·감독·세제가 동시에 움직이는 격변기에 접어들면서 시장은 정책 효율성과 예측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금융당국 ‘4분할’…정책 효율성·현장 혼선 우려
정부는 지난 8일 확정된 조직개편안을 통해 금융위원회를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전환하고 감독·소비자보호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금융정책 기능은 새로 출범하는 ‘재정경제부’로 이관되면서, 2008년 이후 이어져 온 금융위·금감원 이원 체제가 사실상 재편되는 구조다.
새 금감위 산하에는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가 설치된다. 동시에 금융감독원 내 소비자보호처는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독립해 공공기관으로 지정된다. 금감위가 금감원과 금소원을 지도·감독하는 구조지만, 검사·제재 권한 배분 등 세부 기능은 아직 불확실하다.
제도 시행 목표는 2026년 1월2일이다.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유력하게 거론되며, 금감위원장과 금감원장은 겸임이 금지된다. 금융위 직원은 정책 담당 인력을 재정경제부로 이관하고 나머지는 금감위로 전환하는 인력 재배치가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금융정책과 감독의 일관성을 높여 위기 대응력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재정경제부·금감위·금감원·금소원 등 4개 창구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다층 구조가 행정 비효율과 규제 중복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은행권은 홍콩 H지수 ELS 제재, 배드뱅크 설립 등 시급한 현안들이 조직개편과 맞물려 속도를 잃을 수 있다고 본다. 보험업계도 수수료 체계 개편과 회계제도 대응이 동시에 진행돼야 하는 상황에서 “각 기관이 언제 정상 가동될지 불투명하다”는 불안감을 토로한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내부 공지에서 “감독체계 개편이 합리적으로 이뤄지길 바랐지만 아쉽다”며 “국회 논의와 유관기관 협의 과정에서 금감원·금소원의 기능을 꼼꼼히 챙기겠다”고 밝혔다. 전환기에 업무 중복과 역할 충돌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지목된다.
정치적 난관도 남아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뿐 아니라 금감위 설치법·은행법 등 후속 입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여야 대치 구도에 따라 처리 속도가 달라질 수 있어 정책 불확실성은 불가피하다.
결국 금융당국 개편은 금융 안정과 시장 신뢰를 높이겠다는 정부 의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정책 속도와 수용성의 균형”을 요구하고 있다. 다기관 체제에서 일관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담보할지가 향후 제도 안착의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세제·상법 동시 강화…시장 충격과 불확실성 확대
금융당국 개편과 동시에 세제 정상화 논의도 본격화됐다. 여당은 지난 7월29일 당정 협의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되돌리고,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강화하는 방침을 밝혔다. 발표 직후 코스피와 코스닥은 4% 가까이 급락하며 시장의 불안 심리를 드러냈다.
양도세 강화 방안은 개인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과세 기준을 낮추면 연말 매도세가 급증해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졌고, 국회 청원 게시판에는 나흘 만에 10만명이 넘는 반대 청원이 몰렸다. 여권 내부에서도 “시장 충격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일부 의원들은 현행 50억원 유지나 100억원 상향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도 기류를 조정하는 분위기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국민 의견을 듣는 과정”이라며 재검토 가능성을 열었고,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발언해 수정 가능성에 힘이 실렸다. 세제 불확실성이 커지자 증권주는 단기 랠리를 보이며 기대 심리를 반영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논의도 논란을 키웠다. 정부는 배당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자산가 중심 감세”라는 신중론이 병존한다. 대통령실은 “정기국회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최종 결정을 유보했다.

상법 개정 역시 파장이 크다. 국회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담은 ‘더 센 상법’을 통과시켰고, 앞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는 개정안도 의결했다. 주주권 강화라는 취지는 긍정적 평가를 받지만, 기업들은 경영 안정성과 비용 부담을 우려한다.
시장에서는 양도세·배당세·상법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정책 신호가 일관되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제 강화는 시장 안정성과 충돌할 수 있고, 상법 개정은 소수주주 권익 강화와 단기 행동주의 자극 가능성이 교차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공언한 ‘코스피 5000’ 달성을 위해서는 세제와 지배구조 개편, 금융당국 개편이 같은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각 제도 변화가 시장과 충돌하지 않고 보완적으로 작동할 때 금융시장 신뢰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주주 기준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최종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기존 50억원으로 유지할 게 확실시 된다. 금융당국 개편과 세제·상법 강화가 교차하는 정책 대전환기 속에서 이번 발표가 시장의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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