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지급’이 현실로…AI가 바꾼 보험금 심사 속도전
데이터 기반 언더라이팅·예측형 설계로 산업 구조 재편
자동화 넘어 지능화…보험업 전반 패러다임 전환 박차
‘서울와이어’가 오는 14일 ‘AI 3대 강국, CEO들의 혁신 전략’을 주제로 ‘제6회 서울와이어 혁신포럼(SWIF·SeoulWire Innovation Forum)’을 개최한다.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단일 기술이 아닌, 국가의 산업 구조와 안보 체계를 동시에 바꾸는 전략 자산이다. 이재명 정부가 주도하는 ‘AI 대전환’은 정부·기업·글로벌 파트너십이 결합된 초거대 프로젝트다. 블랙록·오픈AI·엔비디아로 이어지는 ‘AI 삼각 동맹’을 바탕으로, 정부는 AI 3대 강국 도약에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와이어’가 포럼에 앞서 AI를 둘러싼 한국 경제와 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전환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서울와이어=박동인 기자] 보험업권이 본격적인 ‘인공지능(AI) 전환기’에 들어섰다. 보험금 심사부터 언더라이팅(보험가입심사), 상품 설계·영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데이터 기반으로 재편되고 있다.
반복적 절차 중심의 전통적 보험 시스템이 예측·분석 중심의 자동화 체계로 전환하면서 보험업의 속도와 생산성이 한 단계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AI가 여는 ‘초고속 보험금 시대’…심사·보상 전 과정 자동화 가속
국내 보험업계의 AI 도입은 이제 챗봇 수준을 넘어 보험금 심사·지급 프로세스를 통째로 갈아엎는 단계로 들어섰다. 2023년까지만 해도 파일럿 수준에 머물던 AI 기반 보험금 자동심사 시스템은 2024~2025년을 거치며 대형 보험사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업계 전체의 보험금 신속지급 평균 시간 역시 1년 반 사이 15~25% 가까이 단축됐다.
그간 단순 상담·고객응대에 국한됐던 AI가 이제는 언더라이팅·보상·상품설계 등 핵심 업무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생명보험사들은 의료·진단 데이터를 중심으로 자동심사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손해보험사들은 자동차·여행·휴대폰보험 등 소액·단기 상품에서 AI 기반 실시간 보상 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AI가 보험사의 운영 효율화와 고객 만족도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이 변화의 가장 상징적 주자는 교보생명이다. 교보생명은 AI 기반 자동심사 모델과 고도화된 광학문자인식(OCR)과 심사 완료 후 즉시 송금 시스템을 결합해 보험금 지급 평균 0.24일(약 2시간)이라는 업계 최단 기록을 세웠다.
이는 생보업계 평균(0.67일)보다 세 배 가까이 빠른 속도로 ‘당일 지급’을 넘어 ‘수시간 내 지급’을 표준으로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단순·소액 건을 AI가 신속하게 처리하면서 속도·정확도·업무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험금 부지급률 역시 1% 미만으로 관리되면서 AI 도입으로 정확도 제고와 고객 만족도를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NH농협생명 역시 AI 혁신의 새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NH농협생명은 올 들어 전사 차원의 디지털 전환 전략을 가동해 AI OCR 기반 문서 자동화 시스템을 본격 도입했으며 이와 동시에 ‘AI 맞춤형 가입설계 서비스’를 개발해 고객의 연령·직업·건강정보를 바탕으로 개인화된 상품 추천과 보장 조합 설계를 자동화했다. 헬스케어와 마이데이터 영역에서도 AI를 활용해 건강관리 코칭, 위험예측 분석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보험 심사 효율화와 고객경험 개선을 동시에 실현한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손해보험 쪽에서도 AI 보상 혁신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은 ‘즉시 지급’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AI 보상 혁신의 또 다른 축으로 떠올랐다. 카카오페이손보는 2023년 9월 해외여행보험 상품에 도큐먼트 AI 기반의 ‘즉시 지급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적용했다. 고객이 영수증 이미지를 제출하면 OCR 기술이 내용을 자동 인식·분류해 보험금 지급 적합성을 판정하고 이상이 없으면 1분 이내에 보험금이 지급되는 구조다. 도입 초기 하루 평균 약 3000건의 문서가 사람이 아닌 AI를 통해 자동 처리된다. 고객이 따로 증빙 서류를 정리하거나 담당자 확인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삼성화재 역시 AI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장기보험 상병심사 시스템 ‘장기U’를 머신러닝 기반으로 개발해 고객의 고지 내용과 보험금 청구 이력까지 AI가 스스로 분석해 자동으로 심사·판정하는 구조를 완성했다.
특히 보험금 청구 이력이 있던 경우에도 AI 자동심사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점이 주목된다. 그간 과거 청구 이력이 있는 고객의 계약은 자동심사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장기U’는 머신러닝으로 학습된 위험도 예측 모델을 적용해 예외 케이스까지 분석한다. 이를 통해 전체 장기계약의 약 90%를 자동심사로 처리하면서도 99.9%의 정확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심사 승인율은 2021년 71%에서 2024년 90% 수준까지 상승했다.

또한 의료문서 분석을 위한 ‘AI 의료심사 시스템’을 새로 도입해 진단서와 검사결과지, 수술기록지 등 다양한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심사 속도뿐만 아니라 보상 판단의 일관성까지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외에도 AI 기반 보험사기 탐지 시스템(FDS)을 병행해 이상 청구 패턴을 조기에 식별하고, 챗봇을 를 통한 고객 응대도 강화하며 보상·심사·고객지원의 전 영역에서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 상품에서 영업까지…보험산업을 재설계하는 AI
AI의 도입은 보험상품 설계와 언더라이팅, 영업·마케팅까지 보험사의 핵심 가치 사슬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과거 설계사는 다양한 담보를 비교·조합해 고객에게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고, 언더라이팅 담당자는 가입자 데이터를 일일이 검토해 위험을 평가했다. 하지만 AI가 반복적이고 집약적인 업무를 대체하거나 보완함으로써 보험사의 영업·운영 구조를 바꾸고 있다.
이에 따라 보험업계 전반에서 ‘맞춤 설계’ 영역을 중심으로 한 AI 혁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AI가 고객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위험도를 정량화해 가장 적합한 보장 구조와 보험료를 자동으로 제시하는 핵심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객의 연령과 직업, 소득 수준, 건강 상태 등 방대한 변수를 고려해 최적의 상품 조합을 도출하는 등 그간 설계사가 일일이 비교·조정하던 과정 역시 크게 단축됐다.
또한 AI는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보험사의 의사결정을 돕는 ‘예측 엔진’ 역할까지 하고 있다. 고객의 나이, 건강 상태, 소비 습관, 보험 이용 이력 등을 함께 분석해 가입 가능성이나 이탈 위험을 미리 계산하는 식이다. 이렇게 도출된 결과를 기반으로 보험사는 고객 유형별로 적합한 상품을 자동으로 추천하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언더라이팅과 마케팅까지 한 흐름으로 연결한다.

이처럼 상품 설계·인수·영업까지 연결된 ‘풀스택 AI’ 활용은 보험사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담보를 중심으로 일괄 설계하고 보장을 표준화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으나, 지금은 개인 단위의 위험 프로파일을 기반으로 보장과 보험료가 미세 조정되는 초개인화(ultra-personalization)가 가능해지고 있다. 이를 통해 고객은 자신의 생활패턴과 위험요인에 맞춘 보장을 받을 수 있고, 보험사는 정확한 위험관리와 비용 구조 개선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러한 자동화 흐름은 동시에 새로운 과제를 동반한다. AI가 설계·인수 추천을 수행하면 어떤 기준으로 담보와 보험료를 선택했는지, 고객에게 그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지는 논의 대상이다.
언더라이팅 결과나 보상 지급 결과에서 AI가 작동한 방식에 대해 고객이 이해 가능한 설명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AI 모델의 설명가능성(Explainable AI), 데이터 활용 투명성, 알고리즘 편향성 점검 등을 운영체계에 병행 적용하는 중이다.
현재 보험업계는 AI가 단순 보조 도구를 넘어 보험사의 전략적 자산이 되는 국면에 진입했다. 보상·설계·인수·영업 전 과정에서 AI가 작동하며 이 흐름은 보험사간 경쟁구도뿐 아니라 고객이 보험을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는 곧 보험사가 ‘디지털 경험을 설계하는 기업’으로서 새롭게 정의되는 전환점이자, AI가 보험산업의 다음 5년을 설계할 하나의 축임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