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흡수성 폴리머 1심 무효 뒤집어⋯'입자분포 효과' 쟁점
'시험보고서 D15'로 기술효과 입증⋯닛폰쇼쿠바이 반박 기각

[편집자주] 서울와이어는 비즈앤로(Biz&Law) 코너를 통해 한국 기업이 전 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각종 비즈니스 소송을 심도 깊은 취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생소한 해외 법적 용어와 재판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내 국내 산업계가 마주한 글로벌 법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향후 전망까지 예측하고자 합니다.

사진=LG화학
사진=LG화학

[서울와이어=정윤식 기자] LG화학이 일본 ‘닛폰쇼쿠바이(Nippon Shokubai)‘와의 ‘고흡수성 폴리머(SAP)‘ 유럽특허 EP 3260485(고흡수성 폴리머 입자, 이하 EP 485특허) 분쟁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유럽특허청(EPO)은 LG화학의 특허 발명을 인정하며, 1심에서의 특허 무효 결정을 뒤집고 특허 유지 결정을 내렸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유럽특허청 항소심판부는 LG화학이 닛폰쇼쿠바이를 상대로 제기한 항소의 결정(10월 2일)을 공개했다. 앞선 2023년 4월 3일 유럽특허청 이의심판부는 ▲진보성 부족(주요 청구항)과 ▲등록 후 보호범위 확대(보조 청구항) 등의 사유로 LG화학의 EP 485특허를 취소한 바 있다. 

이후 LG화학은 2023년 1월 9일 제출한 주요청구항을 기준으로 특허 유지와 특허명세서 실시예 1에 포함된 번역 오류의 정정을 추가로 요청했다. 반면 닛폰쇼쿠바이는 항소 기각을 요구하며, 특허 명세서 실시예 5의 다른 번역 오류를 지적했다. 여기에 2024년 11월 26일 LG화학은 실시예 5의 번역 수정안에 동의했으며, 시험보고서 D15의 데이터가 정확함을 확인하는 선서 진술서를 제출했다. 

이번 소송이 쟁점인 EP 485특허 청구항 3은 고흡수성 폴리머를 제조하는 방법이며, 청구항 1은 3항의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고흡수성 폴리머의 구성을 다루고 있다. 시험보고서 D15는 EP 485특허 청구항 1이 정의한 입자 분포가 실제 성능(흡수속도·재습윤 등)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하기 위한 비교 실험 자료다.

고흡수성 폴리머는 자신의 무게 대비 수십-수백배의 물을 흡수하고 유지할 수 있는 고분자 물질을 의미한다. 이는 ▲기저귀(일회용 아기 기저귀, 성인용 기저귀) ▲생리대 ▲위생용 패드 ▲농업용 토양 수분 유지제 ▲케이블 내 방수재 ▲의료용 흡수재 등의 핵심 소재다.

유럽특허청 항소심판부는 예비 의견에서 LG화학의 발명이 EPC 제83조(기재요건)를 충족하는 것으로 보이며, 진보성 판단은 최종 심리에서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2025년 9월 1일 일본 닛폰쇼쿠바이는 추가 의견서를 제출하며 문헌 D3과 미국 특허공개 US 2023/0149897 A1을 참고문헌으로 제시했다. 이 문헌들은 수용성 성분(extractables) 함량이 높아지면 재습윤 성능이 나빠진다는 기술 내용을 담고 있다.

사진=유럽특허청(EPO) 항소심판부 결정문 발췌
사진=유럽특허청(EPO) 항소심판부 결정문 발췌

지난 10월 2일 열린 구두심리에서 양측은 심판부의 결정이 각 당사자가 제시한 요청을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항소인인 LG화학은 1심 결정을 취소하고 2023년 1월 9일 제출한 주요 청구항을 기준으로 특허를 유지해 달라는 요구를 했으며, 닛폰쇼쿠바이는 항소 기각을 요청했다.

항소심판부는 심리 과정에서 핵심 쟁점이 된 기술 요건(다공성 입자, 비다공성 입자, 2차 응집입자의 비율로 구성되는 입자 분포)가 실제 성능에 미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검토했다. LG화학은 시험보고서 D15를 통해, 이 입자 분포가 청구항에 정의된 범위를 벗어날 경우 흡수 속도(버텍스 타임), 재습윤량, 유지력 등의 성능이 모두 악화된다는 비교 데이터를 제시했다. 반면 닛폰쇼쿠바이는 이런 성능 차이가 입자 분포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수용성 성분(추출물) 등의 요인이 영향을 준 것일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판부는 닛폰쇼쿠바이가 제시한 자료만으로는 LG화학의 실험 결과를 뒤집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입자 분포가 성능에 기여하는지는 복수 요인이 함께 작용하더라도, 해당 특징이 기술적 효과 달성에 ‘일정하게 기여하면’ 진보성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심판부는 제출된 자료 전반을 평가한 결과, 청구항에서 정의한 입자 분포가 흡수, 속도, 재습윤, 유지력 간 균형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 충분히 입증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발명은 EPC 제56조(진보성)를 충족하며, 이의심판부가 내린 무효 판단은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항소심판부는 1심 무효 결정을 취소하고, LG화학이 제출한 2023년 1월 9일자 주요 청구항을 기준으로 특허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특허 명세서의 번역 오류에 대해서는 양측이 제출한 정정안을 반영하도록 하며, 청구항 1, 3이 특허 요건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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