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 매각 논란에서 ISDS 전부 취소까지… 20년에 가까운 론스타 분쟁
6조원대 배상 청구가 ‘0원’으로 돌아오기까지의 법적·정책적 쟁점
정부 취소 신청 전부 인용… ICSID에서 이례적 ‘전부 취소’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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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와이어=김민수 기자]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 관련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중재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취소 사건에서 승소했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가 2022년 8월 론스타 손을 일부 들어줬던 1차 중재판정을 전부 취소하면서, 우리 정부가 론스타에 지급해야 했던 배상금 원금 2억1650만달러와 이자, 약 4000억원 규모의 부담은 ‘0원’이 됐다. 이미 나온 판정을 뒤집는 것 자체가 드문 ISDS에서, 그것도 전부 취소를 이끌어낸 이례적인 결과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론스타 ISDS 취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승소 결정을 선고받았다”며 “배상금 원금과 이자 지급 의무가 모두 취소돼 국가 재정과 국민 세금을 지켜 낸 중대한 성과이며, 대한민국의 금융 감독 주권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취소위원회는 아울러 우리 정부가 취소 절차에서 지출한 법률비용과 중재비용 등 약 73억원을 론스타가 30일 안에 지급하라는 결정도 내렸다.
◆론스타 인수의 시작과 ‘헐값 논란’의 뿌리
이번 결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IMF 외환위기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론스타는 1995년 미국 텍사스에서 설립된 사모펀드다. 미국은 각 주마다 깃발이 있는데, 텍사스주의 깃발은 별 하나가 그려져 있다. 론스타(Lone Star)라는 이름은 이 별 하나에서 따왔다. 구조는 단순하다. 사모펀드는 기본적으로 기업을 싸게 사서 구조조정으로 가치를 끌어올린 뒤 비싸게 되파는 것을 목표로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외환은행이 부실화되자, 외환은행은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투자를 받고 정부도 지분에 참여했다. 그러나 현대건설·현대전자 등 주요 거래처의 부실이 이어지면서 외환은행은 다시 어려워졌고, 코메르츠방크가 매각 의향을 밝히면서 외환은행은 또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국내 은행 가운데선 인수에 나서는 곳이 없었다. 2003년 10월, 결국 외환은행 지분 51%를 론스타가 1조3834억원에 인수하며 새로운 주인이 됐다. 당시 외환은행의 부실 정도와 가치 평가를 둘러싸고 “정말 헐값에 넘겨야 할 정도였느냐”는 논란이 컸고, 론스타가 BIS(자기자본비율)를 고의로 낮게 만들었다는 의혹도 제기되면서 ‘헐값 인수’ 시비는 이후 오랜 법정 공방의 씨앗이 된다.

론스타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 외환은행을 둘러싸고는 두 가지 키워드가 따라붙었다. 하나는 “과연 금융자본이냐, 산업자본이냐”였다. 국내 은행법에는 비금융기업(산업자본)은 은행을 인수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는데,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정말 금융회사로 볼 수 있느냐”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먹튀 논란”이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경영을 정상화하고, 이를 다시 매각해 이익을 실현하는 전략을 밟았다.
본격적인 매각 시도는 2006년부터 시작된다. 론스타는 2006년 1월 외환은행 매각 작업에 착수했고, 그해 3월 KB국민은행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6조원대에 매각이 성사되는 듯했다. 그러나 외환은행장이 외환은행 매매 과정의 배임 혐의로 구속되면서 판이 뒤집혔다. KB국민은행과의 계약에는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 불법이 없어야 대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외환은행장이 구속되고 금융정책국장이 기소되자 론스타는 결국 계약을 파기했다.
론스타는 2007년 9월, 이번에는 “외환은행 인수과정에 불법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지 않는 HSBC와 다시 매각계약을 맺었다. 매매대금은 5조9376억원이었고, 금융감독위원회에 매각 승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금감위는 외환은행장 등이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을 이유로 재판 결과가 나오면 매각 승인을 하겠다고 밝히며 승인 결정을 미뤘다. 바로 이 ‘승인 지연’이 훗날 ISDS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된다. 그렇게 시간을 끄는 사이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고, 외환은행보다 조건이 좋은 금융기관들이 세계 곳곳에서 매물로 쏟아져 나오자 HSBC는 결국 계약을 파기해 버렸다.
2008년 11월 외환은행장 등의 배임 혐의에 무죄가 선고되자 매각의 족쇄는 풀렸다. 론스타는 2010년 11월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에 매각하는 데 성공했다. 매매차익뿐 아니라 외환은행을 보유하는 동안 받아간 배당금까지 합치면 론스타가 한국에서 거둔 이익은 4조6000억원 수준이다. 이 과정에서 론스타는 한국의 핵심 은행을 헐값에 사들여 ‘단물만 빼먹고 떠났다’는 비판을 받았고, ‘먹튀 자본’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다. 2019년에는 조진웅 주연의 영화 ‘블랙머니’가 개봉하며 론스타 사태가 다시 한 번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매각 지연, 금융위 승인 보류… 분쟁의 씨앗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론스타 사태는 ‘헐값 매각을 둘러싼 국내 논쟁’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론스타는 한국을 떠난 직후인 2012년 11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건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ISDS는 외국 투자자가 투자한 나라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할 때, 국제 중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다. 쉽게 말해 “그 나라 정부 때문에 손해를 봤다”고 국제기구에 가져가는 소송 창구다.
론스타의 논리는 이랬다. 첫째, 외환은행을 2007년 HSBC에 5조9376억원에 팔 수 있었는데, 금융당국이 매각 승인을 제때 내주지 않는 바람에 거래가 불발됐다. 둘째, 결국 2010년에 와서야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에 팔 수밖에 없었으니, 그 차액 약 2조원은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단순 가격 차액뿐 아니라 이자, 환차손, 각종 비용까지 더하고, 2004년 스타타워 매각, 2007년 극동건설 매각 과정에서 한국 국세청에 납부한 세금 8800억원까지 소송에 포함했다. 론스타 본점 주소가 벨기에로 돼 있으니 애초 한국에 낼 필요가 없는 세금을 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해서 론스타가 ICSID에 청구한 배상액은 46억7950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6조9000억원, 혹은 약 6조원대에 달하는 규모였다.
10년에 걸친 공방 끝에 1차 결론은 론스타의 ‘부분 승소’에 가까웠다. ICSID 중재판정부는 2022년 8월31일 우리 정부가 론스타 청구액의 4.6%에 해당하는 2억1650만달러를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3000억원 안팎 규모다. 3명의 판정관 가운데 2명이 배상에 찬성했고, 1명은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봐 다수결로 결론이 났다. 국내 대형 로펌과 전문가들이 “3조원대 배상까지 갈 수 있다”고 우려했던 것과 비교하면 2925억원 수준이면 ‘선방’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론스타가 청구한 6조원대 규모에 비해 줄었다는 것일 뿐, 수천억원 배상이라는 사실 자체는 정부 입장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결과였다.
정부는 같은 해 10월 중재판정부에 배상액 산정이 과도하고 이자를 중복 계산하는 문제가 있다며 정정을 신청했고, 판정부는 이를 전부 받아들여 배상금은 2억1601만8682달러로 소폭 줄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와 론스타 양측 모두 판정에 만족하지 못했다. 론스타는 “너무 적다, 더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정부는 “이 금액도 근거가 약하다”고 보고 판정 취소를 검토했다.
ICSID 규정상 판정문을 받은 뒤 120일 이내에 취소 신청을 할 수 있고, 취소 절차를 밟는 동안에는 미국 국채금리 수준의 이자가 붙는다. 패소 시 원금에 이자가 더해지는 부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거액의 소송비용이 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 고민거리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2023년 8월,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주도로 판정 취소를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판정 뒤집은 정부 전략… ‘전부 취소’의 의미와 파장
ICSID 협약에 따르면 중재 판정이 취소되는 사유는 중재판정부 구성의 하자, 판정부의 명백한 권한유월(월권), 중재인의 부패, 절차규칙의 심각한 위반, 판정 이유 불기재 등 다섯 가지다. 정부는 이 가운데 ▲중재판정부의 명백한 월권 ▲중재판정 이유 불기재 ▲심각한 절차 규칙 위반 등 세 가지를 취소 사유로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법무부가 특히 집중한 것은 ‘절차규칙의 심각한 위반’, 즉 국제법상 적법절차 원칙이 무너졌다는 점이었다.
핵심은 하나금융지주와 론스타 사이의 별도 분쟁이었다. 론스타 사건을 다룬 원 중재판정부는 2019년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의 판정문을 증거로 채택했는데, 이 절차에서 한국 정부가 충분한 자료 제출이나 증인 진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정부는 당사자로 참여하지도 않은 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주요 증거로 사용하면서 우리 측 변론권과 반대신문권을 박탈했고, 이를 근거로 국내 금융당국의 위법행위와 국가책임, 손해를 인정한 것은 절차 규칙의 심각한 위반이라고 강조해 왔다.
실제 중재 절차를 대리한 김갑유 법무법인 피터앤김 대표 변호사는 “대한민국 정부에 자료 제출이나 증인 진술 등 기회를 주지 않고 ICC 판정에 있는 내용을 근거로 판단했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참여하지 않은 절차를 근거로 책임을 인정한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도 “ISDS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하려면 국가의 위법 행위와 손해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ICC 판정문만을 채택해 국가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 후속 인과관계, 손해 상정 모두 연쇄 취소된 것”이라고 말했다.
ICSID 취소위원회는 약 2년4개월에 걸친 공방 끝에 정부의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법무부·국무조정실·기획재정부·외교부·금융위원회·국세청 등 관계부처는 합동 보도자료에서 “취소위원회를 설득한 끝에 정부의 취소 신청은 모두 인용되고 론스타 측 취소 신청은 전부 기각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2022년 원 판정에서 정부가 이미 이겼던 부분은 그대로 확정되고, 패소해 배상을 해야 했던 약 4000억원 규모의 의무는 소급해 전부 사라졌다. 우리 정부의 소송 비용 약 73억원도 론스타로부터 회수할 수 있게 됐다.
ICSID 협약상 판정 취소는 애초 인정 요건이 매우 엄격해 취소 사례 자체가 많지 않고, 일부 취소가 아닌 ‘전부 취소’는 1.6%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이번 사례가 “ISDS 취소 절차에서 우리 정부의 배상 책임이 취소된 첫 사례”라며 “정부의 치밀한 법리 검토와 전략적 사건 대응이 국제무대에서 입증된 만큼 향후 다른 ISDS 사건 대응에도 의미 있는 선례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국제법상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된 증거는 국가책임 인정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원칙을 명확히 한 의미 있는 사례”라며, 론스타 사건을 계기로 적법절차 원칙의 중요성이 재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정부 후속 대응과 론스타의 반발, 그리고 최종 결론
정부는 앞으로도 관계부처와 외부 전문가, 국내외 정부 대리 로펌 등과 긴밀히 협업해 후속 조치에도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ISDS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정보공개법 등 관련 법령과 취소위원회의 절차 명령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론스타 측과 협의해 취소 결정문 등 사건 관련 정보를 최대한 공개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론스타는 이번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론스타는 대변인 성명에서 “취소위원회의 결정이 실망스럽다”고 밝히면서 “사건을 다시 새로운 재판부에 제기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취소위원회가 ‘절차적 근거’를 들어 기존 판정을 취소했을 뿐, “외환은행 지분 매각을 한국 규제기관이 막아서고 부당하게 간섭했다는 근본적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론스타는 “새로운 재판부도 한국의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론스타에 손해액 전액을 배상해 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최악의 경우 한국 정부는 론스타에 6조3000억원까지 손해배상을 해줄 뻔했다. 국제분쟁에 제소되면서 배상액은 2925억원 수준으로 줄었고, 여기에 다시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해 이 금액 전액과 3년간의 이자, 소송 변호사 비용까지 돌려받는 결과를 만들었다. 긴 시간 돌고 돌아, 우리 정부가 “배상금 0원”과 “소송비 회수”라는 결론을 끌어낸 것이다. 오랜만에 국제 분쟁 무대에서 긍정적 성과로 평가될 만한 사례라는 점에서, 20년에 가까운 론스타–외환은행–ISDS의 긴 이야기는 이렇게 하나의 챕터를 마무리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