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점은 ‘ICSID 충격’…외교·사법 투트랙 17년 난제에 손댔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으로 17년 간 끌어온 론스타 펀드 사태가 사실상 막대한 혈세 유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윤석열 정부가 야심차게 소송과 주범인 스티븐 리(한국명: 이정환) 송환을 추진했지만, 이를 미국 법원이 막으면서다. 이 같은 상태에서 정권은 바뀌었고, 수천억대에 달하는 배상금은 새 정부에 떠넘겨졌다. 키맨 체포와 이후 미국 법정에서 나온 정부의 논리와 실책을 면밀히 분석해본다. [편집자주]

론스타 펀드. 사진=연합뉴스
론스타 펀드.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황대영·천성윤·정윤식·박동인 기자] ‘론스타 사태’는 10여 년 넘게 한국 사회의 미완 과제로 남아 있었다. 2022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한국 정부에 약 2억1650만 달러(약 3000억원) 배상을 명한 판정은 싸움을 국제무대로 재점화했고, 국내 여론은 “국부 유출” 우려와 책임 규명 요구로 들끓었다.

정부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며 판정 취소 절차를 검토했지만, 결정적 반전의 실마리는 국내 형사책임 주체의 신병 확보에서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곧 목표는 명확해졌다. 사건의 핵심 인물 ‘스티븐 리(한국명: 이정환)’였다.

스티븐 리는 론스타코리아 전 대표로, 2000~2004년 론스타 자금 약 340만 달러 횡령 혐의 등으로 수사 대상이었다. 또 한국에서 종합소득세 78억원 소송에서 패소했으며, 외환은행 인수·매각 관련 의혹도 제기됐다. 정부는 스티븐 리를 한국 법정에 세워 증언을 얻어낸 후, 국제투자중재(ISDS)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아낼 계획을 세웠다.

전략의 전환, ‘외교+사법’ 동시 가동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론스타 펀드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론스타 펀드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 수뇌부는 외교·사법 투트랙 전략으로 접근했다. 핵심은 두 가지였다. 바로 외교 라인 정비와 사법 공조 강화다. 정부는 미국 법무부(DOJ)와 정례·수시 채널을 복원하고, 고위급 접촉을 통해 범죄인 인도 절차의 우선순위 설정을 요청한다.

또 한국 측 수사·정보 라인이 미국 현지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고, 체포·인도 청구에 필요한 서류·증거 포맷을 미국 실무 기준에 맞춰 정비한다. 이 구상은 상징적 장면으로 구체화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 전면에 나서 미국 당국과의 공조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특히 이노공 차관은 지난 2023년 2월 아시아·태평양 형사사법 포럼을 계기로 미 법무부 고위 관계자들과 양자 면담을 진행, 스티븐 리 인도 절차의 신속 처리를 직접 요청했다. 한국 측은 그동안 파편화돼 있던 미국 내 거주·재산·이동 정황 자료를 취합·정제해 현지 기준에 맞춘 팩트 패키지로 제공하며 “체포 가능성”을 높였다.

행정과 수사의 접점, ‘체포 설계’에 맞춘 기술적 준비

이노공 법무부 차관. 사진=연합뉴스
이노공 법무부 차관. 사진=연합뉴스

스티븐 리 체포를 가능하게 하려면 ▲신원과 소재 확인 ▲체포 명분의 법적 정합성 ▲현지 사법당국이 수용할 서류 체계가 삼박자로 맞아야 한다. 이에 정부는 단발성 제보가 아니라 장기 거주 패턴·출입·거래 등 행태 데이터를 축으로 ‘확률 높은 포착 지점’을 특정하는 한편, 범죄인 인도조약 요건 중 ‘쌍방가벌성’에 부합하는 구성을 강조했다.

또한 체포 후 인도 재판으로 넘어갈 프로세스 로드맵을 미국 측과 공유하는 한편, 한국식 공문서·수사보고서가 미국 법원·검찰 실무에서 요구하는 정형성·증거능 요건을 충족하도록 번역·정리했다. 예컨대 사건 요지·죄명 구성·피의자 특정·증거목록·체포·인도 청구서식의 일치성 확보 등이다.

이 과정에서 관건은 ‘미국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었다. 물리력은 현지 사법당국이 행사하므로, 미 연방검찰이 설득될 만큼 서류가 깔끔하고 사실관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체포 직후 보석 심리를 염두에 두고 도주 우려·증거인멸 위험 등 커뮤니케이션 포인트도 준비됐다.

골든타임 포착, 2023년 3월 2일 뉴저지에서 전격 체포

론스타 코리아 지사장 스티븐 리. 사진=연합뉴스
론스타 코리아 지사장 스티븐 리. 사진=연합뉴스

교차 검증된 소재 정보와 공조 라인이 현장 동원 가능상태로 전환된 것은 2023년 3월 초다. 현지시간 3월 2일 미 연방검찰은 뉴저지주(州) 관할에서 스티븐 리를 전격 체포했다. 2006년 한국 검찰이 처음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한 지 17년 만이었다.

체포 직후 법무부는 “미국 측과 긴밀히 공조해 신속한 인도 재판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고, 실무 라인은 인도 청구서 보완, 증거목록 업데이트, 보석 심리 대비 의견서 등 후속 준비에 돌입했다.

스티븐 리 체포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정책 우선순위의 변화가 있었다. 과거 분산돼 있던 사안이 ICSID 판정을 계기로 국익 문제로 재정렬되면서, 범정부 차원의 리소스 투입과 책임 라인 명확화가 이루어졌다. 상층부의 정치적 의지 표명은 외교 채널의 문을 열었고, 수사·정보 라인의 테크니컬 준비는 미국 실무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켰다.

하지만 체포가 끝이 아니라 송환까지 완성해야 하는 미국 법정에서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통상적인 미국 내 인도 절차는 ▲초기 구금 및 보석 심리 ▲인도 심리(조약 요건 충족 여부) ▲행정부 최종 결정 등 입체적 관문을 거친다. 각 단계마다 피의자 방어권이 강하게 보장되고, 시간 요인이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 결과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글 시점 요약 타임라인>

2022.8: ICSID, 한국 정부에 약 2억1650만 달러 배상 판정→정부 “수용 곤란”·판정 취소 검토.

2022~2023.초: 법무부 장·차관 전면 배치, 미 법무부 협의 채널 가동.

2023.2: 이노공 법무부 차관, APAC 형사사법 포럼 계기로 미 DOJ와 양자 접촉, 인도 절차 신속화 요청.

2023.3.2(현지): 미 연방검찰, 뉴저지에서 스티븐 리 전격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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