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원, "공소시효 만료로 송환 불가"
법무부 측 제시한 모든 주장 기각해
법리 허술 대응에 커지는 법무부 책임론
리, 판결 직후 자택 연금 해제 신청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으로 17년 간 끌어온 론스타 펀드 사태가 사실상 막대한 혈세 유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윤석열 정부가 야심차게 소송과 주범인 스티븐 리(한국명: 이정환) 송환을 추진했지만, 이를 미국 법원이 막으면서다. 이 같은 상태에서 정권은 바뀌었고, 수천억대에 달하는 배상금은 새 정부에 떠넘겨졌다. 키맨 체포와 이후 미국 법정에서 나온 정부의 논리와 실책을 면밀히 분석해본다. [편집자주]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황대영·천성윤·정윤식·박동인 기자] 미국 사법부가 스티븐 리의 한국 송환을 최종 불허했다. 그의 주요 혐의인 횡령죄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에 대해 한국 측이 제대로 해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스티븐 리를 한국으로 불러올 방법이 사실상 없어지며 대한민국 ‘금융주권’을 송두리째 뒤흔든 론스타 사태가 끝내 정의를 세우지 못하고 막을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

◆美 법원 “송환 대상 아니다”…충격 판결

지난 8월 6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州) 지방법원 캐시 L. 왈도(Cathy L. Waldor) 치안판사(Magistrate Judge)는 한국 정부의 스티븐 리 송환 청구 사건에 대해 “한미 간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스티븐 리는 송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기각 판결을 내렸다.

왈도 치안판사는 법리 검토 결과 송환이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가장 큰 이유는 공소시효 만료다. 국제 범죄인인도조약은 어떠한 범죄에 대해 송환을 요청 받은 국가(미국)에서 시효 만료로 기소나 재판이 불가능하다면 인도를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스티븐 리의 핵심 죄목인 횡령죄 공소시효는 미국에서 5년, 한국에서 7년이다. 한국 정부는 스티븐 리가 ▲2000년 12월 ▲2003년 11월 ▲2004년 10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론스타 펀드 공금을 차명 계좌로 이체시키는 방법으로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횡령죄 공소시효는 미국에서 5년, 한국에서 7년"이라고 명시했다. 사진=미국 뉴저지주 지방법원
재판부는 "횡령죄 공소시효는 미국에서 5년, 한국에서 7년"이라고 명시했다. 사진=미국 뉴저지주 지방법원

하지만 재판부는 스티븐 리의 범행 시점이 이미 20년 이상 지난 2000년 12월에서 2004년 10월이기 때문에 양국에서 모두 시효가 만료됐다고 반박했다.

또 한국 측은 부차적 논리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06년 7월 16일, 2011년 11월 21일, 2019년 10월 29일 등 총 세 차례 체포영장을 발부해 시효가 만료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했지만, 왈도 치안판사는 “한국 사법 당국이 체포영장을 발부·재발부한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며 요소로 보지 않았다. 

여기에 한국 법무부의 “스티븐 리가 ‘도피 목적’으로 출국했기 때문에 시효가 정지됐다”는 의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왈도 치안판사는 “스티븐 리는 미국 태생 시민권자로, 2005년 이후 뉴저지에서 거주해 왔다”며 “그는 1999년부터 2005년 사이 론스타 펀드의 임원으로 재직할 당시 한국을 드나들며 사업을 관리 했을 뿐, 2005년 5월 이후 뉴저지주 마운틴사이드에 계속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의 한국 체류는 단순히 업무 목적이었으며, 수사·조사에도 적극 협조해 은닉이나 회피 행위는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며 “이미 수사에 협조한 스티븐 리는 도피 중인 범죄인으로 볼 수 없고, 시효가 정지됐다는 한국 측 주장도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가 법원에 승인 요청한 스티븐 리의 송환 청구를 기각한다”며 “뉴저지 연방검찰청은 이 결정문과 2024년 4월 10일 진행한 심리 녹취록, 제출된 증거 일체를 미국 국무장관에게 송부하라”고 판시하며 송환 사건을 종료했다.

◆법무부 법리 허술했나…치안판사 선에서 기각

뉴저지주 지방법원이 확고한 논리로 한국 측 주장을 전면 기각하면서 법무부의 법리 검토가 허술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가 내세운 논리가 깨진 결정적 부분은 ‘해외 도피 시 공소시효 정지’ 규정이다. 판결을 내린 왈도 치안판사는 이 의견이 증거 불충분이라고 일갈했다.

특히 이번 판단은 사실상 송환 실패를 의미하는 최종 결정이어서 한국 입장에서 매우 뼈아프다. 게다가 연방 판사가 관여하는 본 재판이 아닌 예비 심리를 맡는 치안판사 단계에서 기각돼 애초에 법무부의 준비가 부실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판결문에 따르면 왈도 판사는 ‘시효가 정지된 증거’가 없다고 밝혔는데, 이 부분에서 법무부가 ‘도피에 따른 시효 정지’에 대한 설득 논리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스티븐 리가 2005년 5월 14일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출국한 시점부터 ‘도주’로 간주 돼 공소시효가 정지됐고, 2023년 3월 2일 뉴저지에서 체포된 이후부터 다시 공소시효가 시작된다고 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재판부는 "기록상 도피의 증거는 없으며, 스티븐 리가 결과를 회피하기 위해 은닉하거나 은밀한 활동을 했다는 증거도 없다"며 한국 법무부의 주장을 전면 기각했다. 사진=미국 뉴저지주 지방법원
재판부는 "기록상 도피의 증거는 없으며, 스티븐 리가 결과를 회피하기 위해 은닉하거나 은밀한 활동을 했다는 증거도 없다"며 한국 법무부의 주장을 전면 기각했다. 사진=미국 뉴저지주 지방법원

재판부는 앞서 스티븐 리의 보석을 허가했을 때 스티븐 리의 소재지가 17년간 공개된 상태에서 살았다며 한국 정부의 뒤늦은 대응을 지적하기도 했는데, 왈도 판사는 이날 판결에서 이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또 지난 2011년 11월 21일 발부한 체포영장은 윤석열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가 직접 요청한 만큼 윤 전 대통령이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후 집권 당시 선명한 체포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번 송환 거부 판결의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스티븐 리는 2019년 10월 29일 서울중앙지법 김용신 판사가 발부한 체포영장을 시작으로 한미 공조를 거쳐 어렵사리 체포했다. 그러나 송환 재판에서 완패하며 아예 법의 심판대에 세우지조차 못할 공산이 커졌다.

◆스티븐 리, 즉시 가택 연금 해제 요청…‘자유의 몸’

스티븐 리는 송환 불허 판결이 내려지자 바로 그 다음날인 지난 8월 7일 즉시 보석 해제 요청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는 요청서에서 “2023년 3월 보석 석방됐지만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며 의료 예약, 변호사 상담, 교회 참석 등 제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약 2년 반 동안 자택을 벗어날 수 없었다”며 “보석금 1000만달러의 담보로 뉴저지 소재 부동산 1건, 뉴욕시 소재 부동산 1건, 일부 미술품까지 제출했다”고 강조했다.

스티븐 리는 불송환 결정 바로 다음날 가택 연금을 해제해달라고 왈도 치안판사에게 요청했다. 사진=미국 뉴저지주 지방법원
스티븐 리는 불송환 결정 바로 다음날 가택 연금을 해제해달라고 왈도 치안판사에게 요청했다. 사진=미국 뉴저지주 지방법원

그는 송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이 나온 만큼 사실상 사건이 마무리 됐으므로 부동산, 미술품, 여권 등을 돌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불송환 결정에 대해 미 연방 선행심사국(Pretrial Services)과 협의했으며, 해당 기관은 이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다만 선행심사국이 절차적 명확성을 위해 법원을 통해 공식 요청해 달라고 해 이렇게 요청서를 제출한다“고 덧붙였다.  

스티븐 리의 가택 연금 해제 요청은 아직 판결이 나지 않고 법원이 검토하고 있지만, 만약 승인이 이뤄진다면 그는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법무부는 스티븐 리 송환 건에 대해 대변인실을 통해 ”법률과 협약 등에 따라 해외로 도주한 범죄인들을 국내로 송환하기 위해, 외국 기관과의 실무협의, 현지출장 등을 포함하여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윈 혼버클(Wyn Hornbuckle) 미국 법무부 공보 부국장은 스티븐 리 재송환 가능 여부에 관한 본지 질의에 “미국은 스티븐 리의 한국 송환을 인증받기 위해 관련 절차를 진행했으나, 뉴저지 치안판사가 지난 8월 그 요청을 기각했다”며 송환 절차가 종료됐다고 답했다. 

<글 시점 요약 타임라인>

2025.08.06: 법원, 스티븐 리 한국 송환 불허 판결.

2025.08.07: 스티븐 리 변호인단, 법원에 가택 연금 해제 및 보석 조건으로 제공한 여권·부동산·미술품 반환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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