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리스트 일부 특허 권리 스스로 포기
양사 메모리 기술 놓고 여러건 특허 분쟁
최근 HBM 관련 소송도 제기…악연 이어져

[편집자주] 서울와이어는 비즈앤로(Biz&Law) 코너를 통해 한국 기업이 전 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각종 비즈니스 소송을 심도 깊은 취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생소한 해외 법적 용어와 재판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내 국내 산업계가 마주한 글로벌 법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향후 전망까지 예측하고자 합니다.

삼성전자 아메리카.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아메리카. 사진=삼성전자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미국 전자 기술 기업 넷리스트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진행하는 메모리 반도체 특허소송이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분쟁 특허 청구항(claim)이 특허무효심판(IPR)에 의해 무효 처리됐다. 그간 삼성전자를 상대로 강공 드라이브를 걸던 넷리스트가 이번엔 스스로 특허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현지시간) 미국 특허청(USPTO) 산하 특허심판원(PTAB) 노만 H. 비머(Norman H. Beamer), 쉬일라 F. 맥셰인(Sheila F. McShane), 카라 L. 스폰도스키(Kara L. Szpondowski) 행정 특허 판사는 미국 특허번호 11,386,024(이하 024), 11,880,319(이하 319) 등 두 개 특허의 IPR에서 넷리스트의 권리 포기를 인용했다. 

024·319 특허는 ‘오픈 드레인’이라는 디지털 회로 기법을 사용하는 메모리 모듈에 관한 내용이다. 더블데이터레이트(DDR)와 같은 D램 표준에서 메모리 모듈과 컨트롤러 인터페이스를 최적화하는 기술이 담겼다. 이 특허를 사용하면 하드웨어 단순화, 비용 절감, 시스템 호환성 강화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지난 5월 15일, PTAB는 024·319 특허에 대해 특허무효심판(IPR)을 개시한다고 선언했다. 양측의 구두변론은 2025년 2월 17일로 예정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8월 6일, 특허권자인 넷리스트는 특허를 구성하는 청구항 전부에 대해 법정 포기서를 제출했다.

다음날 넷리스트는 재판부에 ‘불리한 판결 요청’(Request for Adverse Judgment)을 제출하며 사실상 자신 패소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대해 IPR 청구인인 삼성전자 측은 반대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다.

IPR 판결문 1면. 사진=미국 특허청
IPR 판결문 1면. 사진=미국 특허청

여기서 미국의 특허 구조는 특허 번호(특허증)가 최상위에 존재하고 그 하위에 특허 청구항이 있다. 이 청구항이란 일종의 특허 설명서로, 이것을 침해했느냐 아니냐로 특허 소송이 진행된다. 넷리스트는 이번 IPR에서 024특허 의 청구항 1~20번, 319 특허의 청구항 1~20번을 각각 포기했다.

즉, 이 청구항들로는 앞으로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로 인해 특허증 자체가 취소·말소 되거나 넷리스트의 특허 소유권이 없어지지는 않지만, 포기한 청구항에 대해서 특허 침해 주장은 앞으로 어렵게 된다.

이날 비머 판사는 “연방규정 제37편, 42.73조 b항에 따르면 소송 당사자는 언제든지 자기에게 불리한 판결을 요청할 수 있다”며 “넷리스트는 024·319 특허의 모든 청구항을 포기했고 이에 자진 패소 판결을 요청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심판원은 넷리스트의 요청을 받아들여 IPR을 종료되며 모든 재판 기일, 구두변론은 취소된다”고 밝혔다. 

이번에 넷리스트가 스스로 IPR을 포기함에 따라 024·319 특허에 대한 침해 소송은 사실상 삼성전자의 승소로 끝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양사 간 계류 중인 분쟁이 다수 있어 소송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홍춘기 넷리스트 대표. 사진=넷리스트
홍춘기 넷리스트 대표. 사진=넷리스트

한편, 넷리스트는 LG반도체 출신 홍춘기 대표가 지난 2000년 설립한 전자 기술 기업이다. 통상 특허 관리형 업체(NPE)로 분류되기도 한다. 삼성전자와 넷리스트는 10년 전 만 해도 우호적 협력 관계였다. 삼성전자는 2015년 11월 넷리스트에 2300만달러를 투자하며 메모리 반도체 ‘공동 개발 및 라이센싱 계약(JDLA)’을 맺은 바 있다. 

JDLA에 따라 삼성전자는 넷리스트가 메모리 모듈 개발을 할 수 있도록 D램과 낸드플래시 등을 공급하고, 넷리스트는 개발한 모듈 공급과 관련 특허 180여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2020년 5월 넷리스트는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지방법원에 삼성전자가 JDLA의 주요 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관계가 틀어졌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패키지의 원재료인 D램 공급을 중단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넷리스트는 최근 삼성전자의 핵심 먹거리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DDR5 듀얼인라인메모리모듈(DIMM) 관련 특허소송도 제기하며 공세를 강화했다. 첫 배심원 재판은 2027년 3월로 예정돼 있어 양사 간 감정의 골은 쉽사리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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