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리스트, ITC에 특허침해 근거 삼성 메모리 수입금지 요청
삼성, 특허비침해 주장하며 넷리스트 측 계약위반 ‘맞불소송’
삼성-넷리스트 극한 대립…협력 관계서 업계 최대 앙숙으로
[편집자주] 서울와이어는 비즈앤로(Biz&Law) 코너를 통해 한국 기업이 전 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각종 비즈니스 소송을 심도 깊은 취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생소한 해외 법적 용어와 재판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내 국내 산업계가 마주한 글로벌 법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향후 전망까지 예측하고자 합니다.

[서울와이어=천성윤 기자] 삼성전자가 미국 팹리스 기업 넷리스트(Netlist, INC.)로부터 반도체 설계 기술 관련 여러 건의 특허침해로 피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번엔 삼성전자 측이 넷리스트에 반격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는 특허를 침해한 적이 없다며 비침해 판결을 구함과 동시에 넷리스트가 권리 남용 및 표준특허 계약위반을 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 9월 넷리스트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삼성전자 메모리 모듈 수입금지를 요청하자 이에 대한 정면 대응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 넷리스트 ITC 제소에 강경 대응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주(州) 연방지방법원에 삼성전자, 삼성전자 아메리카, 삼성 반도체(Samsung Semiconductor, INC.)는 넷리스트를 상대로 ▲특허 무효 및 권리남용 ▲JEDEC(Joint Electron Device Engineering Council,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 표준특허 계약 위반을 주장하는 소송장을 제출했다. 미국 특허 9,824,035(이하 035)에 대한 삼성전자의 비침해 확인 판결도 함께 요청했다. 035 특허는 메모리 모듈 안에서 신호가 제때 잘 도착하도록 타이밍을 맞추는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소장에서 “넷리스트는 삼성 측에 035 특허를 포함한 넷리스트 특허들에 대한 라이선스를 부여한 계약을 일방적으로 종료하려 시도한 후, 삼성을 상대로 반복적으로 특허권을 주장해 왔다”며 “2021년부터 넷리스트 삼성에 대해 다수의 법원 및 기관에서 특허침해 소송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고 배경을 밝혔다.
이어 “최근 넷리스트는 ITC에 삼성이 035 특허를 포함한 여러 특허를 침해하였다고 주장하며 특정 메모리 모듈 제품들의 수입금지명령을 구하고 있다”며 “이에 삼성은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고, 035 특허는 부정행위 및 ‘불결한 손(unclean hands)’ 때문에 집행불능(unenforceable)이라는 확인을 구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불결한 손’의 의미는 만약 원고가 소송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부분에서 비양심적인 행위를 했다면, 남에게 양심을 지키라고 할 수 없다는 법리 용어다. 삼성전자 측은 넷리스트가 JEDEC 회의에서 인텔 등 다른 회사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035 특허를 만들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또 특허심사관에게 JEDEC 자료들을 일부러 숨기고 특허를 출원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035 특허는 애초에 집행불능이라는 점을 연계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넷리스트가 ‘035 특허가 JEDEC 표준을 구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기술(표준필수특허, SEP)’이라고 스스로 주장해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만약 035가 SEP라면, JEDEC 규정에 따라 누구에게나 합리적·비차별적 조건(RAND)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넷리스트는 삼성전자에 RAND를 지키지 않았다는 논리다.
◆협력관계에서 틀어진 후 다수의 소송 진행

이번 삼성전자의 소송 제기는 넷리스트가 ITC에 청구한 수입금지명령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9월 30일 넷리스트는 ITC에 “삼성의 듀얼 인라인 메모리 모듈(DIMM, D램의 일종)에 관련된 035 특허를 포함한 6개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를 제기했다. 넷리스트가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제품 설계를 통해 035 특허를 침해했다고 밝혔다. ITC는 아직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하지 않았다.
과거 삼성전자와 넷리스트는 2015년 11월 12일 공동개발 및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협력 관계에 있었다. 계약에 따라 삼성전자는 넷리스트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적법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0년 7월 15일 넷리스트가 삼성전자에 계약위반을 주장하며 라이선스 효력 종료를 통보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당시 넷리스트의 최고 라이선싱 책임자는 “삼성이 계약 기간 동안 넷리스트의 낸드(NAND) 및 D램 제품 공급을 반복적으로 이행하지 않았고, 원천징수세를 잘못 공제해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양사 간 협력 계약 중에는 삼성전자가 넷리스트에 낸드와 D램 제품을 공급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삼성전자는 넷리스트가 특허 라이선스 효력 종료를 선언한 것은 일방적이라는 입장이다. 이후 넷리스트는 삼성전자에 대규모 특허침해 소송을 진행했다. 현재 텍사스주 동부 연방지방법원에서 진행되는 소송만 네 건이다. 독일에서도 동일한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가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넷리스트는 침해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을 빌미로 특허 포트폴리오의 두 번째 라이선스를 취득할 것을 삼성전자에 반복적으로 요구해 왔다. 2022년 6월 7일 넷리스트는 삼성전자에 보낸 서신에서 JEDEC 표준을 구현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다수의 넷리스트 특허들을 열거했다. 이 특허 포트폴리오에 대해 (두 번째)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2023년 6월 4일 넷리스트는 다시금 삼성전자에 연락해 자사의 방대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강조하면서, 아직 삼성전자에 대해 법적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메모리 기술 관련 특허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떤 법적 조치도 포기하지 않는다(reserving all rights and remedies)”는 경고성 발언과 함께 전체 특허 포트폴리오에 대한 라이선스를 취득을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향후 손해배상 및 각종 제재에 노출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 삼성전자 측 주장이다.
또 삼성전자는 현재 첫 번째 라이선스를 놓고 특허침해 분쟁을 하는 와중에 두 번째 라이선스 취득 요청은 ‘이중 수취’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넷리스트는 “삼성과 그 자회사가 제3자의 지식재산권을 존중해야 한다”며 “공식적인 라이선스 협상”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
◆삼성전자, 넷리스트 측 주장 모순 지적

삼성전자가 이번 소송에서 주장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035 특허가 JEDEC 표준 필수인지 여부다. 넷리스트는 035가 표준 필수라고 주장하고 있고, 만약 이것이 맞다면 JEDEC 규정에 맞는 라이선스 계약(RAND)이 이뤄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넷리스트는 앞서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Micron)에 제기한 035 특허침해 소송 과정에서 035 특허는 JEDEC 표준에 필수적이라고 밝혔고 이에 대한 증거도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자사가 035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도, 만약 035 특허가 JEDEC 표중에 필수적이라면 넷리스트는 해당 특허를 RAND 조건으로 라이선스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말했다.
RAND를 규정으로 강제하는 JEDEC는 반도체 협회이자 표준화 기구로 삼성전자와 넷리스트 모두 회원사로 등록돼 있다. JEDEC 회원사는 표준 제정 과정에 참여해 기술 제안서 논의와 투표를 통해 표준을 정한다. 이때 표준에 포함되는 특허를 가진 기업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기업이 표준을 사용하는 업체에 과도한 로열티를 부과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JEDEC는 RAND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하도록 요구한다.
넷리스트가 스스로 주장대로 035 특허가 JEDEC 표준이라면, 삼성전자에 RAND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넷리스트는 JEDEC 회원사로서, 자신이 특허를 보유한다고 주장하는 기술들을 JEDEC 표준에 포함시키도록 유도하여 그 이익을 누렸다”며 “반면 자발적으로 RAND 조건 라이선스를 제공하기로 약속해 놓고도, 삼성에 대해서는 그 약속을 위반하는 라이선스 요구를 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히 넷리스트는 다수의 손해배상 소송과 함께 035 특허를 근거로 ITC에서 삼성 제품에 대한 수입금지명령까지 요구하고 있다”며 “만약 035 특허가 넷리스트가 주장하듯 SEP라면, 수입금지명령 및 과도한 보상 요구는 RAND 의무 위반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법원에 ▲035 특허 비침해 확인 ▲RAND 계약위반과 이에 따른 피해보상 ▲불결한 손 이론에 따른 035 특허 집행불능 확인 등의 판결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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